입사 5년만에 총수된 30대 오너아들
대기업 세습·족벌 경영은 영원한가

정지선 현대백화점 부회장, 대기업 총수 '초고속 등극' 논란

등록 2003.01.18 18:32수정 2003.01.2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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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너무 나이가 어려 경영은 거의 모른다. 정 부회장은 아직까지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솔직히 그룹 오너 입장에서 자신의 회사를 남에게 주기는 아깝지 않았겠나."

현대백화점 정지선 부회장
현대백화점 정지선 부회장현대백화점
지난 14일 현대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30살의 나이에 자산 3조3000억 원, 계열사만도 9개를 거느린 대기업의 총수로 등극한 정지선(31) 현대백화점 부회장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경영능력은 없지만 오너 아들이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정 부회장은 연세대 사회학과를 막 졸업한 1997년 25살의 나이에 경영관리팀 과장으로 입사한 후, 미국에서 유학 2년. 2000년 기획실 차장을 거쳐 2001년 1월 기획실장(이사)으로 승진한 후 2002년 1월 기획 및 관리담당 부사장. 그리고 2002년 12월 그룹총괄 부회장으로 승격했다.

이보다 빠를 수 있을까? 초고속 승진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의 빠르기다. 그룹 총수에 이르기까지 약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미국 하버드 대학원에서 공부했다는 2년을 빼면 그 기간은 3년으로 줄어든다.

"나이가 어리다고 경영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잘 나가는 벤처 중에는 고등학생 사장도 있지 않나. 그리고 정 부회장은 계열사 사장들이 각자 책임경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각 계열사 간 협력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조정의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현대백화점의 또 다른 관계자는 오너 아들의 경영권 승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다. 어차피 물려받게 될 오너의 장남으로 남들 보다 조금 일찍 받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는 거다. 또 정 부회장은 오너로서 경영보다는 계열사간의 조정에 국한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능력만 검증된다면 나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재계 안팎에서는 정지선 부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경영에 적극 개입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그룹 총수로서 모든 주요 현안은 정 부회장을 거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정 부회장이 지난해 1월 부사장으로 승격한 이후 의욕적으로 벌인 사업들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기만 하다.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된 'SO'인수

2002년 1월 정지선 부사장이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나서면서 의욕적으로 시도한 것은 지역유선방송사업자(SO) 인수사업이었다.


당시 업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백화점 부문에서는 롯데가, 할인점 부문에서는 신세계가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는 반면 현대백화점은 어느 것 하나 잘 나가는 것이 없다보니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홈쇼핑에 주력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겠냐고 내다봤다.

그러나 홈쇼핑 부문에 있어서도 LG홈쇼핑이나 CJ39쇼핑 등 경쟁업체들에 비해 매출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홈쇼핑부문의 강화를 위해서는 지역유선방송사업자(SO) 사업자들의 측면 지원이 절실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실제로 SO들은 채널 선택권이 있어 홈쇼핑업체 등 방송공급업체(PP)들에 대해 우월적인 위치에 있다"며 "최근 홈쇼핑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새로 생기는 것을 볼 때 지역유선방송망을 장악한 SO의 역할과 중요성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어찌됐든 이러한 흐름을 반영이나 하듯 현대백화점은 정 부사장이 기획실장을 겸하고 있던 지난 2002년 3월 19일 서둘러 (주)대호로부터 DCC를 비롯해 서초종합유선방송, 부산케이블방송 등 7개 케이블TV방송을 1122억 원에 인수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문제는 현대백화점이 자회사인 현대DSF를 통해 지상파 방송인 울산방송의 지분 30%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SO 인수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는 것이다. 현행 방송법을 보면 '지상파방송 사업자와 종합유선방송 사업자는 상호 겸영하거나 그 주식 또는 지분을 소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17일 삼성 이재용 '상무보'에서 '상무'로
창업주 3세, 경영전면에 나서

▲ 삼성 이재용 상무
최근 일부 대기업들은 임원인사를 통해 30대 초반의 창업주 3세들을 대거 경영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 12월 현대백화점 정몽근 회장의 장남인 정지선(31) 부사장이 그룹 총괄부회장에 선임된 것을 시작으로, 지난 3일에는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정의선(33)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또 정 회장의 동생인 고 몽우씨의 장남 정일선(33) 비엔지스틸 전무도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정몽구 회장의 '후계 체제'를 마무리했다.

17일에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남 재용씨가 '상무보'에서 '상무'로 한 단계 승진했다.

이를 두고 각계에서 '세습·족벌경영 체제 구축'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지만 이들 기업 총수들의 대물림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3세 경영진 탄생 움직임은 중견그룹에서 먼저 시작됐다.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조양래 회장의 장남 조현식(33)씨가 전략기획담당 상무로, 차남 현범(31)씨가 상무보로 각각 승진했다. 또 한일시멘트 그룹도 지난해 12월 말 인사에서 허정섭 회장의 장남인 허기호(37) 전무를 한일시멘트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3세 경영에 시동을 걸었다. / 공희정 기자
방송법을 위반하게 된 현대백화점은 계열사인 울산방송과 새로 인수한 SO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결국 (주)대호와 계약을 체결한 지 석 달이 흐른 지난 2002년 6월 10일 현대백화점은 울산방송 지분 30%(180만주)을 121억9680만원에 전량 처분하게 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백화점이 만약 자회사인 울산방송을 고수하고 대신 대호와 계약한 케이블 방송국인수를 철회할 경우 위약금으로 150억~200억 원 정도를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며 "당시 백화점 업무의 기획과 관리 담당이었던 정 부사장도 이러한 경영 혼선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현대백화점은 그나마 서둘러 판 울산방송을 인수한 곳도 사촌기업이라 할 수 있는 KCC(금강고려화학)이었기 때문에, '친족 기업 봐주기'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KCC 입장에서 봤을 때 울산방송 인수는 사업구조상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고 투자이익도 크지 않은 사업에 진출함으로써 잉여자금의 남용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현대백화점의 한 고위 관계자는 "SO인수 계획은 2001년 현대백화점이 홈쇼핑 사업권을 획득했을 때부터 진행한 장기 플랜이었다"면서 "단지 그 당시 기획실장이었다는 이유만으로 SO인수가 정지선 부회장의 실책으로 전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음해"라고 해명했다.

"아버지와 다른 경영능력을 보여주려는 '콤플렉스'가 모기업을 망하게 해"

그러나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재벌 3세들의 경영권 대물림에 대한 각계 전문가들의 시각은 싸늘하기만 하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능력이 검증돼 경영권을 승계 한다면 문제가 될 수 없지만 아들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재계 24위 대기업의 경영권을 거머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경영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서구 선진국 경우 이 같은 일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2002년 개점한 현대백화점 목동점
2002년 개점한 현대백화점 목동점

그는 이어 "족벌체제는 경영의 투명성을 해칠 뿐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소유와 경영은 하루빨리 분리되어야 한다"고 덧 붙였다.

또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 소장(한성대)은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경영권 대물림은 IMF 전후로 망한 쌍용·진로·동아·한일 등이 증명해주고 있다"면서 "이들 망한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이들 기업 상당수가 2세에 의해 경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특히 "창업주의 2세나 3세들은 아버지와는 다른 자신의 경영능력을 보여주려고 하는 콤플렉스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면서 "이러한 콤플렉스는 부채를 무리하게 끌어들여 신규사업에 진출해 모 기업을 망하게 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어 "삼성그룹의 이재용 씨가 E삼성에 투자했다가 철수한 사례라든지 현대백화점 정지선 씨의 홈쇼핑 강화 등은 이러한 실례"라고 말했다.

또 '함께하는시민행동'의 오관영 국장은 "경영의 대물림은 재벌이라고 불리는 왜곡된 형태의 기업의 유산이며 오너의 잘못된 가치관의 산물"이라며 "기업이 생산한 부는 사회활동을 통해 이루어진 만큼 일정부분 사회로 환원되어야 하기 때문에 개인의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2년전 삼성 이건희 회장의 아들 재용씨에 대한 편법 상속문제를 거론했던 윤종훈 회계사는 "한국은 IMF를 거치면서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영권을 승계 받아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뼈저리게 경험했다"면서 "그 예로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주변에서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산업에 뛰어들어 한국 경제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쳤느냐"고 말했다.

윤 회계사는 또 "기업의 대물림은 단순히 개인의 재산을 물려준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인 만큼 하루빨리 상속·증여세법에 과세 포괄주의 도입하고, 위장계열사를 통한 편법 상속·증여를 막기 위해 부당 내부거래 조사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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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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