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지역에 경륜장이라니요"

대전 월평 싸이클경기장 경륜장 건설에 주민반발 거세

등록 2003.01.22 09:30수정 2003.01.2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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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파트 단지 건너편으로 고등학교 건설 현장(왼쪽)이 보이고,  그 아래쪽 산등성이에 월평 싸이클경기장이 위치해 있다.

아파트 단지 건너편으로 고등학교 건설 현장(왼쪽)이 보이고, 그 아래쪽 산등성이에 월평 싸이클경기장이 위치해 있다. ⓒ 정세연

롯데아파트부터 시작해 갈마아파트까지 대규모로 조성되어 있는 대전 서구 내동의 아파트 단지. 길 건너에는 서부초등학교와 내동중학교가 자리하고 있고, 언덕을 따라 조금 올라가다 보니 서붕고등학교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이 동네는 주변이 뺑 둘러 학교에요. 게임방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교육환경이 잘 돼 있구요. 또 보다시피 아파트 단지들이 빼곡한 주거지역인데... 이런 곳에 경륜장이라니. 다들 난리죠. 말도 안된다고.”

내동 롯데아파트 단지 내에서 만난 김숙희(40) 주부. 김씨는 대전시가 월평 싸이클경기장에 경륜장 건설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보도되고 나서 아파트 분위기가 아주 안좋다고 전했다.

“우리 아이야 아직 학교를 안 다녀서 그렇다지만 학교 다니는 자식 둔 부모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이제 고등학교까지 들어온다고 하는데 큰일이죠. 경륜장 들어서면 유흥시설도 따라올테고, 교통은 얼마나 복잡해지겠어요.”

실제 서붕고등학교 건설 현장과 월평 싸이클경기장은 불과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김병수(45, 교사)씨는 “철저한 주거지역에 사행산업의 대표격인 경륜장이 건설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월평 싸이클경기장에 경륜장이 들어선다면 이 동네는 슬럼화될 것이다. ‘님비’ 차원에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쓰레기소각장이 들어온다면 유해물질을 최대한 걸러내는 등 방법이 있을 지 모르지만 경륜장과 같은 사행산업은 도박을 하러 오는 사람, 주변의 유흥시설 등 모든 것이 유해인자이고, 규제할 방법도 없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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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연

“뿐만 아니죠. 경륜장은 주민들의 사행심리를 조장하게 됩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옆에 있으면 한 번이라도 가보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공동대책위원회에서 경륜장 건립 반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저도 할 수 있는 만큼 함께 할 계획입니다.”


지난해 롯데아파트 주민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80%에 달하는 주민들이 월평 싸이클경기장에 경륜장이 건설되는 것을 반대했다.

롯데, 서우, 신성, 코오롱아파트 등의 입주자 대표회의로 구성된 월평 싸이클경기장 경륜장반대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번 주 중으로 경륜장 건립 반대 캠페인과 서명운동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대위는 “대전시의 경륜장 입지로 꼽히는 월평 싸이클경기장은 인근에 고등학교가 들어설 예정이고 주변에 1만여 가구의 아파트와 주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용역보고서에는 ‘주택단지와 격리되어 민원 소지가 없는 지역’으로 돼 있다”며 “잘못된 보고서에 의해 경륜장이 우리 지역에 들어오게 된다면 지역주민들은 깨끗한 자연환경을 잃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대전시가 주민 여론에 따라 경륜장의 시행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으나 주민들이 반대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우리 지역에 경륜장이 들어올 수 있다”며 반대의견을 명확히 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에만 도박 중독환자가 300만 명에 이르고 있는 가운데 월평 싸이클경기장에 경륜장이 건설되면 주변 주거환경 악화는 불가피하다”며 “유흥시설 난립으로 생활환경이 파괴되는 것은 물론 교통 혼잡과 불법 주차 등으로 주거환경이 크게 악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소장 서천범)가 발표한 ‘2002년 사행산업 현황’에 따르면 경마, 경륜, 경정, 강원랜드 카지노 등 지난해 사행산업의 시장규모는 11조 3178억원으로, 2000년(5조 9381억원)에 비해 91%, 2001년(8조 6358억원)보다는 31.1%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사행산업이 전체 레저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 2000년 38.9%(레저시장규모 15조 2703억원)에서 2001년 55.4%, 2002년 66.6%로 높아졌다. 게임이 가능한 20세 이상 국민(작년 3444만명) 1인당 연간 33만원 정도를 사행산업에 쓴 셈이다.

a 월평 싸이클경기장 경륜장반대 공동대책위원회가 아파트 내에 붙여놓은 홍보물

월평 싸이클경기장 경륜장반대 공동대책위원회가 아파트 내에 붙여놓은 홍보물 ⓒ 정세연

이에 비해 일본 사행산업의 시장규모(2000년 기준)는 6조 8220억 엔으로 일본 레저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3.3%에 불과하고, 95년보다는 9.6% 포인트 낮아졌다.

참여자치시민연대 금홍섭 시민사업국장은 “민자유치를 규제하는 것 이외에는 사행성 레저산업에 대한 법적 규제가 없고, 오히려 행정기관에서 지방재정 확충 등을 들어 경륜장 건립에 혈안이 돼 있다”면서 “전체 레저산업 중 사행산업이 50%를 넘어서고 있는 실정에서 보다 강력한 법적인 규제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 국장은 이어 “대전에 경륜장이 들어서게 되면 앞으로 경마장, 경정장, 카지노 등 사행성 산업이 속속들이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대전시는 지난해 ‘주5일 근무제 실시에 따른 새로운 여가문화에 대비하고 지방재정 확충 등을 위해’ 대전경륜장 건립을 추진해왔다. 대전시는 경륜장 건립으로 운영 3년 후면 연간 800억원 이상의 세외수입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으나 시민사회의 반발에 부딪혀 재검토 입장을 밝힌 바 있으며, 다음달 중순 경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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