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어머니

등록 2003.01.23 17:46수정 2003.01.23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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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어머니를 뵙고 왔습니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그곳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일주일을 보내고 일반병실을 거쳐 정신병동에서 또 일 주일. 퇴원하던 날 기거하시던 둘째 오빠 집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는 매일 우십니다. 먼저 떠난 큰아들 생각에 울고, 자식들에게 서운하다고 또 우십니다. 어제 남편하고 다녀왔는데 또 울면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니 올케 없을 때 오너라" 해서 다녀왔습니다.

그렇게도 부지런하셨던 분이 다 귀찮다고, 이제 가야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애지중지 지니셨던 목걸이를 주시면서, 시집갈 때 아무 것도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또 우십니다.

어머니의 음독사건은 자식들인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 날 새벽에 병원에 모인 우리 육남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시체처럼 누워있는 저 분이 평소에 쩌렁쩌렁하게 호령하시던 분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언제나 당당하고 기개가 충천하신 분이었는데. 깔끔하게 목욕하고 흰 소복을 단정하게 입은 채 발견된 어머니. 여든 셋의 삶의 끈을 놓으려했던 어머니.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고 하신 어머니. 정신이 맑을 때 가고 싶다고 하셨던 어머니.

"깨끗하게 가고 싶었는데...너희들 맘 고생시키고 돈 없애…. 미안하구나."

동쪽으로 가자하면 서쪽으로 가고, 똑같은 말 두 번하면 밥상이 날라 가고, 당신이 아프면 사람을 들볶다가 마누라가 아프면 본척 만척 인정머리라고는 손톱만치도 없다고 아버지를 원망하시던 어머니. 요령부득인 남편만 믿다가는 자식들 배곯리고 공부도 못 시킨다며 추우나 더우나 캄캄한 새벽부터 고픈 배 움켜쥐고 왕복 이십리를 머리에 콩나물동이 이고 내달리던 어머니. 그렇게도 온갖 고생 정성으로 키운 자식들이었건만 당신의 성에 차지 않아 늘 불만이셨던 분. 칠남매에 대한서운함을 큰딸인 나에게 끊임없이 토하시던 분.

"맘에 안드는 건 못본 체하고 좋은 점만 보세요, 엄마." 수없이 했던 말. "제발 야단좀 그만 치시고 자식들에게 맡기세요"하는 내 말에 " 올바로 가르쳐주니까 이 정도지 아무 말도 안하면 집안이 엉망이 될거다"하며 내 입을 막던 분. 어떤 얘기도 들으려 하지 않고 당신 말
씀만 옳다고 우기시던 분. 나이 오십이 넘도록 지겹게 반복해서 듣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소리들. 수없이 되풀이되던 자식들에 대한 꾸중과 책망.

이 년 전 여름에 그 동안 꾹꾹 누르며 참았던 분노가 기어이 폭발하고야 말았다. 더 참았다가는 가슴이 터지고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더 이상 견딜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어머니의 잔소리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의례적인 만남 이외는 전화도 방문도 거의 하지 않고 지냈다.
그리고 이번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제는 알 것 같다. 그 몸짓이 처절한 외로움이었다는 것을. 자식을 향한 맹목적인 사랑이었다는 것을. 자식의 사랑을 갈구하는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 그토록 오랫동안의 애증의 세월을 흐르는 강물에 띄워 보내렵니다. 어쩌면 어머니를 보내드려야 하는 때가 빨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월은 기다리지 않는다고 하던가요. 부모는 자식의 효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말했던가요. 아마도 자식은 영원한 철부지이기에 생겨난 말이겠지요.

이제는 자식의 부모가 되어 불평을 듣는 처지가 되었어도, 부모는 무엇이고 자식은 또 무엇인지 풀지 못할 수수께끼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어머니의 남은 여생을 따뜻하게 껴안아 드리고 싶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좋아하시는 과일을 들고 가서 손 한 번 잡아보고 오는 걸로 자식의 도리를 한다고 자위하면서 말입니다.

어머니, 분노 일랑 다 내려놓으시고 서운함이랑 저 하늘로 다 날려보내시고 맘 편하게 지내주세요. 날마다 좋은 기억만 하늘 통장에 저금하시고요. 그리고 때가 되어 가실 때에는 늘 하시는 기도 제목대로, 늘 소원하신 대로 평화롭게 주무시듯이 그렇게 가세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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