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공포자에서 예술치료사가 된 아줌마

등록 2003.01.26 15:47수정 2003.01.2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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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높아지는 이혼율 속에 흔들리는 가정이 많아지고 있다. 그 와중에 제일 큰 피해자는 아이들. 부부 갈등 속에서 가족의 해체를 막고 건강한 가정으로 변화시킬 방법은 없을까? 결혼생활의 갈등으로 생긴 폐쇄공포증을 예술치료로 이긴 박경희(가명. 여 48세)씨를 만나
20여 년 동안의 힘든 상황과 극복과정을 들어보았다.

예술치료와의 만남

최근에 그가 쓴 '중년기 여성들을 위한 집단 예술심리치료'라는 책을 보면 예술치료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4명의 여성이 나온다. 음악치료, 미술치료와 예술치료는 어떻게 다른 지 궁금했다. "비언어적 치료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예술치료는 춤, 음악, 드라마, 시, 미술이라는 통합적 수단을 통해 그 사람의 잠재된 무의식을 드러내게 하고 치유하는 심리치료라고 할 수 있죠."

말이라는 것은 남을 의식하게되고 내면의 깊은 곳까지 다 드러내기가 힘든데 비해, 예술은 무의식까지 드러낼 수 있어 자신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되고, 문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억압을 표출하게 되어 '참 자기'를 찾게 되고 마음의 병과 육체의 건강까지도 찾을 수 있게 된다는 것.

예술치료는 아직 낯선 영역인데, 불문과를 전공했다는 그이가 이런 일을 하게된 무슨 특별한 동기가 있었을까? "그 때는 그 체험이 예술치료인줄 몰랐죠. 결혼생활이 너무 고통스러워 도망치려고 궁리를 해보니 경제력이 있어야죠. 고민을 하고 있는데 오스트리아에서 피아
노 초급과정 단기 연수코스가 있다고 해요. 이것만 마치면 방 한 칸이라도 얻어 혼자 살 수 있겠다 싶어 약간 있던 돈을 털어 유럽으로 갔는데, 거기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 거예요."

오스트리아에 도착한 직후 그 첫 느낌을 피아노로 쳐보라는 지도 교수의 말에 그저 느낀대로 정신없이 쳤는데 모두들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바로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이론, 조성, 화성 다 무시하고 칠 때 '나'가 표현되는 기쁨을 느꼈단다.

그리고 얼마 후에 어느 성당에 갔는데 문지가 할아버지가 동양인들을 위한 특별한 선물이라면서 바하곡을 파이프오르간으로 연주해 주었는데, 일행이 나간 줄도 모르고 울고 있었다고 한다. 버리고 온 세 살 난 딸이 갑자기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되고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 뿐, 그토록 오고 싶었던 유럽이었는데도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그 때 비로소 내 자리가 어디인지 깨닫게 되었던 것도 예술치료의 효과였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인생의 고비에서 만난 첫 번째 가이드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상황은 예전 그대로였다. 매일 밤마다 술 먹고 아파트 계단에서 소리지르는 등 남편의 고약한 술버릇과 상습적인 폭력도 여전했고, 이혼한 시부모와의 갈등, 특히 자신의 존재를 무시하는 시어머니와의 반목의 나날들도 여전했다. 달라진 이는 그녀뿐
이었다. "알콜환자인 남편은 내가 안 산다고 하면 무조건 힘으로 억눌렀어요. 나를 붙잡는 이유가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한 가족 해체라는 쓰라린 경험이 가정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일 거예요."

이런 방법밖에 몰랐던 남편

힘이 없으니 이혼이라는 현실도피로 가려던 그에게 유럽에서의 체험은 큰 전환점이 된다. 그러면서 남편의 아픔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원인까지도.

"이웃에 천주교 신자가 있었는데 그녀도 시댁의 구박과 남편의 외도라는 고통을 겪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이혼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어떻게, 무슨 힘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일까. 신앙의 힘으로이길 수 있다면서 종교를 적극 권하더라고. 그리고 시할머니의 유산인 성경책과 찬송가를 받으면서, 인생의 첫 가이드를 만났다는 생각을 했었단다. 이 때부터 조용히 내부의 힘을 기르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면 고백성사로 위안을 받고 심리학책을 추천 받아 읽으며 그 속에서 길을 찾아 나갔다. 성경공부, 참인간공부, 집단상담도 큰 힘이 되주었다.

내면의 힘이 길러지니까 모든 게 다시 보였다. 정체감을 처음으로 느낀 시기였다. "어느 날 시장을 보는데 너무 즐거운 거예요. 밥하는 것, 하찮은 것도 모두다 예술로 느껴지는 거예요. 음악, 성경공부 하면서 유럽의 역사를 배우게 되고, 그러면서 나와 우리 집의 역사가 떠오르면서 그 때 비로소 나와 우리가정이 가진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문제를 풀어가면서 내가 치유되고, 공통적인 문제를 가진 타인을 만나고 체험하면서 내 경험이 타인을 치유하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는 의식을 갖게 되고, 예술치료라는 전문적인 과정을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폐쇄공포증을 이기고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을 겪는 병, 엘리베이터나 지하철, 택시를 탈 수 없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어렵게 하는 폐쇄공포증은 심한 스트레스나 격심한 불안뒤에 올 수 있
다고 한다. 그녀가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두렵고 공포에 휩싸였던 그 때부터 이 병과의 끈질긴 싸움의 나날이었다.

이제는 전철도 타게 됐고 지난여름에는 처음으로 가족동반 일본여행을 다녀왔는데 비행기안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고. 그들 모습에서 자신의 과거를 보는 것 같아 애정이 간다는 정신병원에서의 봉사활동. "폐쇄병동 성인 예술치료봉사를 하고 있어요. 이 곳에 수용돼있는 사람들은 나약해서 현실을 뚫고 나가는 힘이 없고 그래서 병이 든 거죠."

음악에 맟춰 동작하기, 음악 감상, 노래하기, 그림 그리기, 긴장 이완 체조 등을 지도하고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공부, 사고하기 등 입력만 하게 되고 감정 표출하기 등 출력을 하지 않아, 무의식에 문제가 잠재되어 있다가 중년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늙으면 치매에 걸리게 된다고 한다. 자신의 의사와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건강한 삶이고, 그래서 심리치료에서는 지금여기에서 푼다는 용어인 'Here and Now'를 쓴다고 한다.

이제는 남편도 내면의 힘이 생기고, 그녀 자신이 가족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어 있는 등 어느 정도는 안정이 되어 있다는 그이. 고통이 있었기에 문제를 볼 수 있었고, 결혼의 위기를 통해 비로소 자신을 찾게 되었다는 그녀. 불행속에 내면의 업그레이드라는 보물이 숨어 있
었고 그 경험이 같은 고통속에 있는 아줌마들에게 다리가 되는 쓰임에 보람은 느끼게 된다고 했다.

중년 여성들을 위한 논문쓰기라는 어려운 숙제가 남아 있지만 역동적인 삶이 활력이 된다는 그녀. 식탁 위에 걸려있는 안정된 모습의 커다란 가족사진이 그들 가정의 지금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당뇨합병증으로 입원중이라는 시아버지. 병원으로 딸과 함께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이의 모습에서 아직도 가야할 길이 남아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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