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4288년 4월 29일, 강원도 사는 윤수병(尹受炳)이라는 청년은 최남선에게 보낸 편지에서 "선생의 거룩한 애족·애족 정신으로 지도해 달라"며 "지도만 해주신다면 저는 목숨을 걸고 지도에 응하겠다"고 쓰고 있다. 단기 4288년은 서기 1955년으로 남북간 대결이 한창일 때로, 젊은이가 최남선을 민족지도자로 생각한 것을 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권기봉
한편 서울시의 서울시문화재 지정 대상 탈락의 이유와 관련해서도 시원치 않은 점이 눈에 띤다. 서울시는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로 (1) 최남선이 41년부터 52년까지 이 집에 살면서 강연과 신문 논설을 통해 조선 청년들에게 참전(參戰)을 적극적으로 독려했던 장소이고, (2) 올해로 이 집이 지어진 지 65년(1939년 5월 29일 건설)째로 이미 원형이 훼손돼 보존할 가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한 논거가 합당하다면 일제의 조선침략 냄새가 그대로 남아 있는
<동아일보>의 일민미술관(一民美術館)이나 일제시대의 '세종문화회관'격인 부민관(府民館)이 있던 현 서울시의회 건물, 한국은행과 맞은편의 신세계백화점 건물 및 제일은행 빌딩, 전북 고창의 김성수(金性洙) 생가 등도 철거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2003년 1월 현재 벌어지지 않고 있지 않은가. 일관성 있는 문화재 보존 정책이 아쉬운 대목이다.
"왜 지금 와서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가?"
마지막으로 드는 의문은 "왜 이렇게 늦게 관심을 보이는가?"하는 점이다. 이미 최남선 옛집 보존 여부에 대한 논의는 지난해 말부터 시작되었으나, <동아일보>만이 지난 해 11월 이런 논란을 간략하게나마 다뤘을 뿐 당시 관심을 갖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뿐만 아니라 1월 26일 현재 최남선 옛집은 이미 헐려 폐허로 방문객을 맞고 있을 뿐이다.
특히 지난 23일(목) [문화유산답사51] "집 헐리기 전, 자료라도 수습하라"라는 기사가 보도된 후 기자는 적지 않은 전화와 전자우편을 받아야만 했다.
연락을 취해온 이들 중에는 친일 문제를 연구하는 학술단체에서부터, 친일 관련 역사 연구가, 모 대학 박물관 학예사, 종합 일간지의 문화부 기자 등 이미 한번쯤은 직접 가봤어야 했을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왜 이들은 대표적인 친일 현장에 미리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