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와 헹님 입던 옷만 입어야 하노"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46> 설날

등록 2003.01.29 11:10수정 2003.01.3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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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이고향
"니 요 앞에 나가서 퍼뜩 니 머리통 만한 돌멩이 하나 주워 온나."
"돌멩이는 와 예?"
"니 올 가실(가을)에 대추 많이 묵고 싶제?"
"하모 예. 그런데 그기 돌멩이하고 머슨 상관이 있습니꺼?"
"대추나무로 시집을 보내야 올 가실에 대추가 많이 열릴 꺼 아이가."


작은 설날이 되면 우리 마을 어머니들은 설을 쇨 준비를 하느라 진종일 부엌과 장독대를 들락날락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마을 전체에서 큰 잔치라도 벌어질 것만 같았다.

소죽을 끓이던 시커먼 가마솥에서는 하얀 찹쌀이 달착지근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고 있었고, 장독대 옆에 임시로 만든 아궁이에 거꾸로 걸린 솥뚜껑에는 여러 가지 찌짐(전)들이 찌지지지 소리를 내며 몸을 뒤집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맛있는 고구마전을 몇 개 주시면서 심부름을 시켰다. 우리는 달착지근한 그 고구마전을 입에 물고 마을 앞 꽁꽁 얼어붙은 시냇가로 나갔다.

시냇가에는 우리 머리통만한 돌멩이가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돌멩이를 일단 들어내기가 더 큰 문제였다. 우리 머리통만한 돌멩이는 물기가 있는 흙과 함께 꽁꽁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이겠는가. 그 돌멩이를 들고 가서 설날 아침에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끼워 대추나무를 시집 보내면 올 가을에 그 맛있는 대추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데. 그렇게 용을 쓰며 돌멩이를 하나 들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께서는 막 절구통에서 떡메로 치고 있는 쫄깃쫄깃한 찰떡을 조금씩 떼어내 우리들 한 입 가득 넣어 주었다.


"오늘은 밖에 나가서 놀아라. 거들친다(여기 저기 부딪친다)."
"그라모 고매전(고구마전) 한 개만 더~."
"어허~ 조상님께 제사 올릴 음식을 너거들이 먼저 맛 보모 안되제."
"그래도."
"아나."

분이네 대나무 숲에서는 찰떡 만한 참새들이 댓잎을 서걱이며 요란하게 날아다녔다. 눈 시린 새파란 하늘에선 금방이라도 하얀 찰떡이 펑펑펑 쏟아질 것만 같았다. 들마당으로 길게 뻗어 있는 골목길에서는 금방이라도 때때옷을 걸쳐 입은 아이들이 참새처럼 짹짹거리며 마구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집집마다 허연 김이 피어오르는 절구통 속으로 떡메를 치는 마을 아버지들의 힘찬 모습들, 찌짐(전)을 부치고 시루떡을 찌느라 바쁘게 돌아다니는 마을 어머니들의 모습들. 그날, 탱자나무로 만든 튼튼한 새총을 들고 앞산가새에 올라가다가 우리 마을을 바라보면 우리 마을의 초가지붕들은 마치 시퍼런 안개 속을 떠다니는 조각배 같았다.


"올 설에는 오것나?"
"누가?"
"집 나간 점순이 말이다."
"모르지. 저거 아버지 말로는 점순이는 인자 저거 자식이 아이라 카던데?"
"그래도 우짤끼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 안카더나."

설날은 한 해가 처음 시작되는 날이다. 예로부터 설날은 추석과 더불어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이 날은 원단(元旦) 또는 정초(正初)라고도 불리며, 남녀노소 모두 새 옷으로 갈아 입고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낸다. 우리 마을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 마을 어머니들도 설날 아침이면 아이들에게 새옷을 입혔다.

"내는 그 옷 안 입을끼다."
"와? 이 옷이 어때서?"
"헹님은 맨날 새옷만 입고 나는 와 맨날 헹님 입던 옷만 입어야 하노?"
"야가요. 조용히 안하나. 정초부터 그라모 못 쓴다."
"그래도 내는 그 옷 안 입을란다."
"그라모 그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차례로 지낼끼다 이 말이가?"
"내는 오늘 차례도 안 지낼끼다."

해마다 설날 아침이면 우리들은 늘 옷투정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설날이 되어도 지금까지 한번도 새옷을 입어보지 못했다. 늘 형님이 입던 옷을 물려받아 입었다. 그래서 설날 아침이 되면 옷 때문에 마구 투정을 부리다가 혼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설날 아침부터 그렇게 눈물을 쥐어짠 뒤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께 세배를 하면 형님보다 더 두둑한 세뱃돈을 얻을 수가 있었다.

"니 올(오늘) 떡국을 몇 그릇째 먹노?"
"내 나이만큼 묵는다 와?"
"꾸껀지 숫자로 니 나이를 세어서 먹어야지, 떡국 그릇으로 니 나이로 세서 묵다가 짜구(배탈) 나모 우짤라꼬 그라노?"
"내사(나야) 나이로 우째 세든 니는 상관하지 마라."
"에라이~ 놀부 밥주걱 겉은 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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