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꽃 가지 하나 꺾어주모 안되것나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45>가래떡과 매화꽃

등록 2003.01.27 16:03수정 2003.01.2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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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남녘에선 벌써 매화가 몽오리를 송글송글 맺고 있다

남녘에선 벌써 매화가 몽오리를 송글송글 맺고 있다 ⓒ 우리꽃 자생화

"아나?"
"그기 뭐꼬?"
"니는 꾸껀지도 모르나?"
"우와! 이 맛있는 거로 내한테 다 주모 니는 우짜고?"
"나는 실컷 묵었다카이."
"니 이거 내가 다 묵어도 후회 안하제?"
"후회할 거 같으모 만다꼬(뭐한다고) 니한테 줄끼고."


설날을 며칠 앞둔 그날 오후, 매화가 마악 몽오리를 옹골차게 영글고 있는 좁은 골목길에서 그 가시나가 내게 내민 것은 가래떡이었다. 그 가래떡은 김이 나지는 않았지만 금방 뽑아낸 것인지 잡는 순간 몹시 물컹거렸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침이 꼴깍 하고 넘어갔다.

해마다 설날이 다가오면 우리 마을 곳곳에서는 시퍼런 연기가 하루종일 피어올랐다. 또한 그런 날은 하루종일 우리들 코를 자극하는 달콤한 밥 익은 내음 때문에 진종일 배가 고팠다. 그런데 하필 그날, 양지 바른 마을 담벼락에 앉아 햇살을 쬐고 있는 나를 발견한 그 가시나가 눈짓으로 나를 불러 그 맛있는 가래떡을 준 것이었다.

"맨날 니한테 얻어만 묵어서 쪼매 미안타."
"그라모 니 내 부탁 하나 들어줄 수 있것나?"
"뭔데? 뭐든지 다 이야기 해봐라. 니 부탁이라카모 내가 다 들어주께."
"음~ 있제?"
"뭔데? 빨리 말해뿌라카이."
"니 요기 있는 매화꽃 가지 하나 내한테 꺾어주모 안되것나?"
"그라다가 들키모 우짤라꼬?"
"그라이 니한테 부탁 안하나."

우리 마을 사람들은 모두 가래떡을 '국건지'라고 불렀다. 아마도 억센 발음 때문에 '국건지'가 '꾸껀지'로 변한 것 같았다. 그날 나는 그 가시나가 주는 물컹하고도 맛있는 그 국건지를 입에 물고 모험을 감행했다. 매화꽃 가지는 그 집 흙담 밖으로 가지가 일부 삐져나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폴짝거려도 키가 조금 모자랐다.

"내가 엎드릴 테니까 니가 살짝 꺾어뿌라 고마."
"나는 간이 떨리서 그리 못하것다. 내가 엎드릴 테니까 니가 내 등에 올라가 퍼뜩 꺽어주라."
"니 허리 뿔라모(다치면) 우짤라꼬 그라노? 내가 이래 뵈도 제법 무겁다이."
"괘않타. 자, 퍼뜩 올라가서 꺾으라. 누가 볼라."

그 가시나는 나보다 키가 조금 컸다. 그러나 나는 가시나의 등을 밟고 올라간다는 것이 조금은 이상했다. 하지만 나는 용감하게 그 가시나의 등을 딛고 올라 꽃망울이 송글송글한 그 매화꽃 가지 하나를 슬쩍 꺾었다. 그런데 그 순간 철퍼덕 하는 소리와 동시에 나는 매화꽃 가지 하나를 들고 그 가시나와 함께 골목길에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그 가시나가 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앞으로 그대로 엎어져 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그 가시나와 내가 그렇게 엉거주춤한 자세로 골목길에 엎어져 있는 그 모습을 하필이면 마을 아이들이 보았던 것이었다. 이내 마을 아이들은 그 가시나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마구 놀려대기 시작했다.

얼레꼴레리~ 얼레꼴레리~
누구하고~ 누구하고~
골목길에서~ 골목길에서~
응응응응~ 응응응응~
엄마 아빠~ 놀이했대요~


아이들이 그렇게 놀려도 그 가시나와 나는 얼른 일어서지를 못했다. 그 가시나와 내가 나동그라진 그 좁은 골목길에는 송글송글 맺힌 매화 꽃망울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가시나와 나는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한동안 그렇게 나동그라져 있었을 수밖에 없었다. 그 가시나는 턱에서, 나는 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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