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기사 더보기 황지우 시인은 그의 <눈보라>라는 시에서 "눈보라여, 오류 없이 깨달음 없듯, 지나온 길을 / 뒤돌아보는 사람은 지금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단언하면서 "무등산 전경을 뿌옇게 좀먹는 저녁 눈보라여,/ 나는 벌받으러 이 산에 들어왔다"라고 쓸쓸히 고백한다. 비단 산에 오르는 일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세상사는 일은 모두 다 벌받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오늘 삶이 주는 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 산에 들어왔다. 큰사진보기 ▲ 유일사로 가는 언덕받이 아래서 위를 향하여 맨 처음 앵글을 맞췄다. 모든 일의 시작은 만만하다. 그렇다면 끝도 만만할까. 하여간에 겨울 태백으로 오르는 길은 만만하다. 1500M가 넘는 고봉이라 하여 지레 겁먹지 않아도 된다. 저 태양도 그렇게 사뿐히 고개마루에 올라서고 있지 않은가. 큰사진보기 ▲ 세상 식물이 모두 "예"라고 말할 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서슬퍼른 식물 산죽(山竹). 저렇게 살고 싶었는데, 저렇게 살았어야 했는데, 끝내 저렇게 살지 못할 못 말리는 중생인 나. 오규원 시인은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라는 詩에서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 악마 같은 밤이나를 속인다"라고 썼지만 그의 시는 내게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한다. 큰사진보기 ▲ 소월은 그의 시 <팔베개의 노래>에서 "첫날에 길동무 / 만나기 쉬운가요 / 가다가 만나서 / 길동무되지요"라고 했지만 난 이 두 사람을 첫날에 만났다. 왼쪽이 자칭 '황병기'씨, 오른 쪽이 안경도 선생이다. 자신의 말을 들어보면 그는 풍물에 많은 애착을 가진 듯이 보인다. 그의 혈통은 아무래도 황병기 선생 쪽이 아니라 '황구라' 황석영에 가깝지 않을까 싶을 만큼 이야기꾼이다. 큰사진보기 ▲ 천하의 정법(正法)은 두 가지가 없음이여. 아마도 그래서 유일사라는 이름이 붙었나 보다. 하얀 색은 본래 모든 것을 반사해 버린다. 거부한다. 그래서 눈 쌓인 유일사엔 소리가 없었다. 풍경을 흔드는 바람 소리도 없었다. 절은 絶이다. 시방 이 가람은 심한 자폐증을 앓고 있는 중인가 보다. 저 무생물도 이 겨울 한 석달 앓고 나면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큰사진보기 ▲ 무량수전 뒤로 난 계단을 다 오르고 나서 가만히 유일사를 내려다본다. 무심(無心)하다. 저 무량수전의 더운피는 누가 앗아가길래 저리도 싸늘히 식어버렸을까. 난 일생 동안 저 무량수전 같이 되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었다. 피가 식어버린 걸 삶이라 값매김할 수 있을까. 큰사진보기 ▲ 태백산 천제단 가는 길 7부 능선쯤에서 바라본 높이 1573 m의 함백산. 저 산 북서쪽에는 신라 고찰 정암사(淨巖寺)가 있다. 길은 구절양장(九折羊腸)으로 이어지고 문득 계곡이 끊긴다. 그리고 내 마음이 그 계곡에 잠긴다. 깊고 그윽하다. 큰사진보기 ▲ 저 쭉 뻗은 가지 위에 얼마나 많은 새와 바람과 햇빛과 눈발이 머물다가 갔을까. 이제 내 마음도 잠시 저 가지 위에 싣는다. 태백산 주목은 제 몸에 엊힌 억만 시름의 무게를 어이 견디어낼까. 큰사진보기 ▲ 이 주목의 줄기에는 작은 쪽문이 달려 있다. 바람과 맞부딪치지 않고 통과시킴으로써 자신의 생을 지탱해내는 것이다. 해탈(解脫)이란 게 별건가. 어떤 바람도 통과시킬 수 있는 문 하나 내는 일 아녀? 큰사진보기 ▲ 떡갈나무였던가? 수종(樹種)은 생각나지 않지만 목화송이 같은 눈꽃을 달고 있는 가지 사이로 눈에 어리는 하늘의 쪽빛이 황홀할 만큼 청청하다. 수치와 모멸로 점철된 내 생애에서 저 푸르름은 늘 잔인한 꿈으로 서성거리곤 했다. 큰사진보기 ▲ 장군봉에서 바라본 건너편 산자락의 눈꽃이 잔잔하여 곱다. 이 태백산 저 작은 나무들은 눈보라에 제 몸을 빌려줌으로써 꽃을 피우는 법을 안다. 잔잔하게 물결을 이루며 흘러오는 것, 그게 바로 사랑 아닌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추천 댓글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구독다음 채널구독 글 안병기 (smreoquf) 내방 구독하기 이 기자의 최신기사 '영국사'야, 무사해서 고맙다! 영상뉴스 전체보기 추천 영상뉴스 [단독] 윤석열 모교 서울대에 "아내에만 충성하는 대통령, 퇴진하라" [단독] 김태열 "이준석 행사 참석 대가, 명태균이 다 썼다" [단독] 김태열 "명태균이 대표 만든 이준석,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AD AD AD 인기기사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3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4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5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 공유하기 닫기 서슬푸른 산죽처럼 살고 싶었는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메일 URL복사 닫기 닫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숨기기 인기기사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사다리 타고 올라간 동료의 죽음, 그녀는 도망치듯 시골로 갔다 팔순잔치 쓰레기 어쩔 거야? 시골 어르신들의 '다툼' 수렁에 빠진 삼성전자 구하기... 의외로 쉽고 간단한 방법 윤석열·심우정·이원석의 세금도둑질, 그냥 둘 건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도 똑같은 '법의 잣대'를 맨위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 ohmynews 닫기 검색어 입력폼 검색 삭제 로그인 하기 (로그인 후, 내방을 이용하세요) 전체기사 HOT인기기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미디어 민족·국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특별면 만평·만화 카드뉴스 그래픽뉴스 뉴스지도 영상뉴스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생나무 페이스북오마이뉴스페이스북 페이스북피클페이스북 시리즈 논쟁 오마이팩트 그룹 지역뉴스펼치기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강원제주 대구경북 인천경기 서울 오마이포토펼치기 뉴스갤러리 스타갤러리 전체갤러리 페이스북오마이포토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포토트위터 오마이TV펼치기 전체영상 프로그램 쏙쏙뉴스 영상뉴스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오마이TV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TV트위터 오마이스타펼치기 스페셜 갤러리 스포츠 전체기사 페이스북오마이스타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스타트위터 카카오스토리오마이스타카카오스토리 10만인클럽펼치기 후원/증액하기 리포트 특강 열린편집국 페이스북10만인클럽페이스북 트위터10만인클럽트위터 오마이뉴스앱오마이뉴스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