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최초의 키스>의 김상호(좌), 오달수(우)한상언
- 동년배의 연출가 중 눈여겨 볼만한 사람이 있다면.
"역시 박근형 형이다. 사람들이 박근형과 김광보를 많이 비교한다. 연극적 태생은 두 사람이 비슷하다. 앞서 말씀드린 것 같이 혈연, 학연, 지연에 관계없이 자유로운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고졸 출신의 대통령이 되었지만 아직 학력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나와 근형이 형은 연극판에서 드문 고졸출신의 연출자이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을 많은 사람들이 독특하게 본다.
연극적 배경과 태생은 비슷한데 연극의 결과물은 판이하게 다르다. 아무리 내가 일상성을 무대 위에서 펼친다고 하더라도 내 연극은 다분히 연극적이다. 그런 반면에 박근형 형은 일상성을 무대 위에 펼치는데 그야말로 일상을 무대 위에서 그대로 보여준다. 그것이 박근형 형과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어차피 비슷한 동년배의 세대, 같은 386세대이다 보니 이야기하는 주제적 측면은 비슷하다. 근형이 형은 극사실의 일상성을 통해 인간을 표현해 낸다."
- 박근형씨 같은 경우 극작을 병행한다. 극작도 같이 할 생각은 없는가?
"극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된다. 98년도에 극작은 아니고 각색을 했었다. 박상륭 선생의 소설 <뙤약볕>을 가지고 연극을 했다. 그때 제가 깨달은 것이 극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 사실은 자기 고백이다. 그런데 지금 극작가들 중에는 섣불리 글을 쓰는 사람이 많다. 나는 아직도 창피하게 기억하는 것이 <뙤약볕>을 각색해서 첫 번째 대본을 배우들에게 내 놓았을 때의 가슴 두근거렸던 기억이다. 내 고백을 다른 사람이 읽는다는 것이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연출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는데도 정말 발가벗겨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 글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고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내공의 깊이가 아직까지 덜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얘기하고 싶은 주제를 내가 써서 내가 연출해보고 싶다는 욕망은 끊임없이 가지고 있다."
- 연출작 대부분 창작극이다. 세계 명작을 무대화 할 생각은 없는가?
"본의 아니게 창작극을 많이 했다. 이것이 한국연극의 문제점이다. 한국연극의 지원체계 자체가 창작극 우선순위이다. 문예진흥기금을 신청해도 그렇고, 문광부특별지원금을 신청해도 그렇고, 공연창작활성화지원기금을 신청해도 모든 것 다 1순위가 창작극이다. 아직까지 연극적 환경 자체가 미천하다보니 지원금을 받지 않으면 연극을 올리기 힘들다. 한편의 연극을 올리기 위해선 문예진흥기금이라든지 여타의 지원금을 받아야지 연극을 할 수 있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렇다 보니 본의 아니게 창작극을 많이 하게 됐다.
사실 세계명작을 해보고 싶다. <헨리4세>를 서울시극단에서 해봤지만, 셰익스피어도 해보고 싶고, 베케트도 해보고 싶다. 여러 가지 욕심은 많다. 그런데 창작극 아니면 지원금을 안 주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창작극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레파토리 개발이 힘들다. 지원금 체제라는 것이 창작극 위주, 초연 위주란 말이다. <인류최초의 키스> 같은 경우 두 번째 공연인데 한 공연을 하고 재 공연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다. 한국연극의 현실 자체가 그러다보니 좋은 작품 하나를 계속 다듬어서 명작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불가능하다.
그런 측면에서 창작극이 활성화 되었는데 80년대, 90년대 초까지는 당위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제도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