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쥬쿠에서 겨울 나는 노점상

액세서리 파는 이스라엘인과 꽃 파는 한국유학생

등록 2003.02.03 23:54수정 2003.02.0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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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도청에서 본 신쥬쿠의 고층빌딩군. 빌딩군 넘어 가부키쵸가 자리잡고 있다.
동경도청에서 본 신쥬쿠의 고층빌딩군. 빌딩군 넘어 가부키쵸가 자리잡고 있다.안호진
동경의 중심은 단연 신쥬쿠이다.

JR 신쥬쿠역을 기준으로 서쪽은 고층빌딩 숲이며, 동경도청을 비롯한 일본의 대기업 중심부가 신쥬쿠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은 백화점을 비롯한 유흥가 환락가가 빼곡하다.

신쥬쿠의 밤은 어둠을 거부한다.

밤이 깊어 가면서 신쥬쿠는 더욱 밝아 온다. 동경의 어느 구석에서 나오는지 역 주변은 사람들 물결이다. 다들 총총 걸음으로 서둘러 네온사인 불빚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환각제를 팔고 있는 일본인. 영어로 적법한 환각제라고 씌어 있다. 이것은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버섯을 가공한 환각제로서 일본 정부에서 마약지정 등 법적으로 대응 준비중이다.
환각제를 팔고 있는 일본인. 영어로 적법한 환각제라고 씌어 있다. 이것은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버섯을 가공한 환각제로서 일본 정부에서 마약지정 등 법적으로 대응 준비중이다.안호진
이런 신쥬쿠에 환락의 뒷자락에 매달려 장사들 하는 사람들이 있다. 넓은 신쥬쿠 바닥이지만 사실 좌판을 펴고 장사가 될 만한 곳은 얼마되지않는 것 같다.

신쥬쿠역을 중심으로 JR 신쥬쿠역 동쪽 출구에서 가부키쵸로 들어가는 길목만이 장사가 되는 곳인 것 같다. 그 얼마 안되는 길목엔 중고 만화장사, 꽃장수, 악세사리, 환각제, 구은떡, 심지어는 점쟁이들까지 환락가의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있다.

이들의 하루 영업의 시작은 신쥬쿠의 어둠이 밀려오면서부터이다. 오후 6시가 넘으면서 노점상들이 하나둘 나타나 자신들의 구역에서 장사 준비를 한다. 아마 본격적인 장사는 7시가 지나서부터인 모양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판매하는 좌판. 신쥬쿠역 부근에 약 10개 정도의 좌판이 있는 듯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판매하는 좌판. 신쥬쿠역 부근에 약 10개 정도의 좌판이 있는 듯하다.안호진
처음에 액세서리를 파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이곳 저곳에 좌판을 벌리고 발전기를 돌려 좌판 위에 백열등을 키기 시작한다. 이곳 저곳의 좌판 위에 백열등이 밝게 들어온다.

소형 발전기에서 나는 소리는 도시의 소음에 묻혀 귀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장사를 시작하려는 그들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으려하니 모두들 사진을 피한다. 그도 그럴 것이다. 가짜 시계니 가짜 액세서리가 그들의 주요 품목이기 때문이다. 무리인줄 알면서 들이댄 카메라에 그들이 적잖이 당황한다.

한 사람이 와서 나에게 겁먹은 듯 경찰 관계자냐고 묻는다. 나는 미안하다고 하며 나도 외국인이니 사진 찍는 것은 걱정할 필요없다고 말하나 그들은 사진을 찍지 말아 달라 부탁한다.

할수없이 그들에게 나도 같은 외국인으로 당신들과 같은 입장이라고 안심시킨다. 아직 일본어가 안되는 그들이지만 여러 차례 말하니 사진 촬영의 거부감은 없어진 것 같다.

옆에서 같이 장사하는 동료가 온다. 둘이서 알지 못하는 언어로 손짓을 하며 이야기를 한다. 옆에 동료가 돌아가자 한 사람이 한국사람이라 안심을 했는지 나에게 말을 건다.

지금 우리들이 한 언어는 히브라이어라고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그럼 이 부근에 비슷한 좌판을 깔고 액세서리를 파는 사람들은 전부 이스라엘 사람이냐고 물으니 웃으면서 그렇다고 한다.

어떻게 그 먼 이스라엘에서 와서 장사를 하냐고 물으니 그는 이스라엘이나 아랍은 재미가 없다고 한다. 말 나온 김에 무슨 비자를 가지고있냐 물으니 3개월 관광 비자라고 한다.

그럼 이 나라 저 나라 오가며 장사를 하냐하니 그렇노라 한다. 액세서리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전부 이스라엘 사람들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

악세사리와 가짜 이미테이션 시계, 반지 목걸이등을 팔고 있다. 시계는 중국제이며 목걸이 등은 타이제라고 한다.
악세사리와 가짜 이미테이션 시계, 반지 목걸이등을 팔고 있다. 시계는 중국제이며 목걸이 등은 타이제라고 한다.안호진
이역만리 떨어진 외국의 환락가 입구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외에도 남미계 사람들도 있었다. 옷이나 모자를 파는 아프리카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외국인들 가운데 한국 사람 역씨 신쥬쿠 바닥의 한 켠을 차지하고 다부지게 꽃 장사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액세서리 장사를 하는데 비해 한국인들은 전부 꽃 장사를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길거리 좌판에서 장사한다면 한국사람들은 이동이 가능한 소형트럭 위에 꽃을 진열해 환락가로 빨려 들어가는 사람들을 부른다.

아르바이트로 꽂을 파는 한국 유학생들 가부키쵸 입구근처에서 가부키쵸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꽂을 판다.
아르바이트로 꽂을 파는 한국 유학생들 가부키쵸 입구근처에서 가부키쵸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꽂을 판다.안호진
가부키쵸 입구인 야스쿠니거리에서 꽂을 팔고 있다. 꽂파는 사람들은 불과 수십 미터 안에서 꽂을 팔고 있다.
가부키쵸 입구인 야스쿠니거리에서 꽂을 팔고 있다. 꽂파는 사람들은 불과 수십 미터 안에서 꽂을 팔고 있다.안호진
자동차에서 꽂을 파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유학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인 것 같다. 나름대로 애로가 많은 것 같았다.

좌판 장사와는 달리 반복되는 경찰의 도로단속에 물어야 하는 벌금은 장사에 지장을 줄 정도이며 결국은 반복되는 벌금으로 운전면허가 정지되어 장사를 못하게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좌판 장사야 경찰이 뜨면 좌판을 접어 자리를 옮기면 되지만 도로 위에서의 트럭으론 그럴 수도 없어 꼼짝없이 벌금을 물어야 하는 것이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일 것이다.

신쥬쿠역에서 가부키쵸로 들어가는 길목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악세사리 좌판이 10여 개 정도 보인다. 그리고 한국 사람 꽃장수는 3곳 정도로 보인다.

그외엔 타코야끼(문어 토막이 들어간 구운빵으로 천안호도과자처럼 생겼다), 김말이 구운떡, 타이야키(붕어빵 같은 것)의 포장마차가 장사를 한다.

일본떡을 구워서 팔고 있다. 한국의 널찍한 기계떡 같은 것을 구워 김에 말아서 팔고 있다. 한국인에게는 도저히 맛이 안 맞는 것같다. 떡을 김에 싸서 먹는 일본인의 습관
일본떡을 구워서 팔고 있다. 한국의 널찍한 기계떡 같은 것을 구워 김에 말아서 팔고 있다. 한국인에게는 도저히 맛이 안 맞는 것같다. 떡을 김에 싸서 먹는 일본인의 습관안호진

한국의 붕어빵이다. 타이는 한국어로 `도미`이다. 이것은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1개 100엔이나 하니 손이 쉽게 안간다.
한국의 붕어빵이다. 타이는 한국어로 `도미`이다. 이것은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1개 100엔이나 하니 손이 쉽게 안간다.안호진

문어 토막이 들어가 있는 구운빵 같은 것인데 생기기는 천안호두과자 모양으로 생겼다. 한국사람들 중에서 좋아하는 사람은 엄청 좋아한다. 아마 한국에서도 팔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문어 토막이 들어가 있는 구운빵 같은 것인데 생기기는 천안호두과자 모양으로 생겼다. 한국사람들 중에서 좋아하는 사람은 엄청 좋아한다. 아마 한국에서도 팔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안호진
먹는 장사는 거의 일본인이다. 같은 장소에서 동업종은 하나밖에 없다. 야쿠자의 지역 지정인지 자연스레 한 업종만 하는 것인지는 알 수는 없다.

먹는장사에서 외국인이 하는 것은 소고기를 훈제하여 칼로 베어내 파는 장사가 있다. 남아메리카계인 듯한 사람이 자동차 안에서 팔고 있다. 먹는 장사 입는 장사 보는 장사 등 여러 장사가 있지만 신쥬쿠 노점상들 중에 재미있는 것은 점쟁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들 점쟁이들도 최근 5-6년에 걸쳐 급격히 늘어난 것 같다. 경기가 침체되고 사회가 불안정하여 그런지 눈에 띄게 늘어난 것 같다. 신쥬쿠역의 서쪽 출구 주변에는 거의 다닥다닥 붙어서 점을 봐주고 있다.

운명감정이라 씌어있다. 한국말로는 점쟁이나 사주팔자를 보는 사람이다. 한 10년도 전에 후배가 입학 시험결과를 보려고 본 적이 있는데 그때도 한 30분 정도 보고 3000엔이었다.
운명감정이라 씌어있다. 한국말로는 점쟁이나 사주팔자를 보는 사람이다. 한 10년도 전에 후배가 입학 시험결과를 보려고 본 적이 있는데 그때도 한 30분 정도 보고 3000엔이었다.안호진
점쟁이들(사주 팔자 보는 사람들) 나이가 대체로 젊은 것이 흥미롭다. 간혹 나이든 점쟁이도 있긴 하다. 그러나 대부분이 20대 초반에서 40대 초반 나이다. 남자만이 아니고 여자 점쟁이도 많다. 여자에게 다가가 웃으며 가격을 물으니 3000엔을 달라고 한다. 10년 전이나 똑같다. 그녀는 날이 추워 무릎 위에 올려놓은 담요로 두 손을 다시 묻는다.

붉은 네온사인과 젊은이의 열기가 넘쳐 나지만 신쥬쿠의 겨울은 역시 춥다. 액세서리를 파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다가가 좀 팔리느냐 물어 본다. 그는 겨드랑이에 손을 끼우고 웃으며 고개만 옆으로 몇 번이고 돌린다.

그는 "일본사람은 돈도 많으면서 깍쟁이다"라고 한다. "백화점에서 비싼 것은 사면서 자신들이 파는 싼 반지나 액세서리는 안산다"고 투덜거린다.

꽃을 파는 한국 유학생에게 가서 팔리는가 물어 본다. 웃으면서 "그냥 나오는거지요" 라고 하면서 꽃을 다듬는다. 타코야끼와 타이야끼를 파는 포장마차엔 일본 손님들이 간혹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붉은 네온사인에 휩사인 신쥬쿠의 밤은 그들 노점상인들에겐 추워 보인다. 그러나 영원히 추울 것만 같은 신쥬쿠의 을씨년스런 이 겨울도 조만간 초봄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리고 이윽고 여름을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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