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기
유가사 일주문에서 올려다본 비슬산. 비슬이란 비파와 거문고를 이름이다.
내 얼마나 비슬산에 가고 싶었던가. 심진 스님의 음반을 손에 넣게 된 1990년대 초 이래 비슬산 산행은 내 오랜 바램이었다.<그대를 위한 詩>라는 심진 스님의 애조 띤 목소리로 듣는 <비슬산 가는 길>은 꿈꾸지 않은지 오래된 내 발의 무의식적 본능을 자극해오곤 했다.
비슬산 굽이 길을 스님 돌아 가는 걸까
나무들 세월 벗고 구름 비껴 섰는 골
푸드득 하늘 가르며 까투리가 나는 걸까.
거문고 줄 아니어도 밟고 가면 韻 들릴까
끊일 듯 이어진 길 이어질 듯 끊인 연을
싸락눈 매운 향기가 옷자락에 지는 걸까.
절은 또 먹물 입고 눈을 감고 앉았을까
만첩첩 두루 적막 비워 둬도 좋을 것을
지금쯤 멧새 한 마리 깃 떨구고 가는 걸까.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바랑하나 등에 걸치고 구비구비 만경을 걸어가는 노스님의 그림자에 묻어 언젠가 그 길을 걸어가고 있을 내 모습을 그려보곤 했다. 그렇게 걸어서 짙고 옅은 먹빛 속에 잠든 옛 절에 들리라. 그리하여 유정란을 낳는 암탉처럼 고즈넉한 그 절간에 들어앉아 무정란 같이 시들어버린 내 삶을 구원받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