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6일, 금속연맹법률원으로 서울지방법원의 판결문이 날아왔다. 지난 12월에 한국시그네틱스의 모기업 영풍에서 신청한 '영풍 본사 및 석포제련소에서의 집회금지 가처분'을 인정하는 판결문이었다.
영풍은 우리나라 재계 25위 그룹으로 우리에겐 '건전지 알카바'나 '영풍문고'로 알려져 있는 기업이다. 집회금지 가처분 장소 중 하나인 석포제련소는 아연제련을 하는 영풍의 주력기업이다.
지난 해 11월 27일에는 영풍 계열사 노조 금속노조 시그네틱스지회뿐 아니라, 영풍의 주력 기업인 석포제련소(아연 제련업체)에서 발생하는 직업병과 환경파괴 등을 개선하기 위해 '영풍 석포제련소 환경, 주민건강 개선과 노동기본권 실현을 위한 공동대책위(준)-이하 영풍공대위(준)'가 발족되었다.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영풍공대위(준)는 2003년 1월 7일 '이는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을 겨냥한 탄압과 더불어 영풍공대위의 정당한 활동을 왜곡하고,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려는 비열한 음모이기에 이에 대해 강력히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배달호씨의 분신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손배·가압류 문제처럼 우리나라의 법원이 지나치게 사용자 편을 들고 노동자의 파업권을 침해한다는 각계의 비판에서도 볼 수 있듯이, 법원의 판결은 영풍의 요구를 거의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이번 가처분 판결은 영풍본사와 석포제련소에서 집회를 할 때마다 5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한편, 영풍은 이를 위해 지난해에는 3천만원, 이번에는 5천만원의 공탁금을 걸어 놓았다.
영풍공대위(준) 관계자는 "석포제련소 노동자들은 '회사가 일하는 공장 안에서 먹을 물도 안준다'며 비참한 노동현실을 하소연하는데, 돈 걸고 가처분 신청하고, 집회하려면 돈 내고 하라니! 해도 너무한다"며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오늘로 벌써 파업 565일째를 맞는 계열사 한국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은 지난 2001년부터 '영풍의 무노조 정책이 시그네틱스 노동자를 내몰았다'면서 두해를 넘기며 아직도 길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앞으로 영풍본사 옆에서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집회에 참여하려는 분이 있다면 주머니에 몇만원쯤은 넣고 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유전무죄, 무전유죄 라는 말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여지없이 실감이 나는 상황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 것인지.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이 수백일을 길거리에서 싸우면서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런 세상을 물려주지 말아야죠"라고 해맑게 웃으며 단단한 각오를 보이는 것처럼, 무조건 돈으로 노동자들의 요구를 가로막으려는 기업이나,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묵인해주는 법원의 모습을 우리 아이들에게는 제발 물려주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최근 한국시그네틱스는 98년에 이어 제2의 부도가 났고, 노동자들은 '부실 경영주 영풍은 퇴진하고, 양수제 사장을 구속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한 영풍은 석포제련소 인근 주민으로부터 불법 유독 폐기물 매립 혐의로 최근 안동지검에 고발조치를 당한 바 있다.
-이 기사는 <민중의소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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