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41

난 말 도둑이 아니야.(1)

등록 2003.02.07 13:54수정 2003.02.0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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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으…! 허억! 여, 여긴…? 으으으윽!"

오랜 혼절에서 간신히 깨어난 이회옥은 자리에서 일어서려다가 비명을 질렀다. 허리 아래가 아예 떨어져 나가는 듯한 엄청난 통증이 느껴진 때문이다.


"으으! 그러고 보니…? 으으으윽!"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는 마지막 기억은 허공으로 한껏 치켜 올라갔다가 섬전의 속도로 내리 꽂히는 곤장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실직고하라면서 연신 불호령을 내리는 판관의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여긴…? 으으, 내가 말 도둑으로 몰리다니… 이, 이건 말도 안 돼! 난 말 도둑이 아니야. 난 아니라고…!"

희미한 어둠 속이지만 이곳이 관아의 뇌옥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굵은 쇠창살이 박혀 있었고, 손발에 수갑과 족쇄가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난 말 도둑이 아니란 말이야! 밖에 누구 없소? 어서 날 풀어 주시오. 난 말 도둑이 아니오."


힘껏 소리친다고 소리쳤지만 이회옥의 음성은 뇌옥 밖에서 순라를 도는 관졸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삼십여 대의 곤장을 맞으면서 계속하여 말 도둑이 아니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목이 완전히 쉬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흐흑! 난 말 도둑이 아니라고… 흐흑! 비룡은 내 말이야. 나쁜 놈들! 내가 말 도둑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너무도 억울하여 한 줄기 눈물을 흘리던 그는 말 도둑이 아니라고 증언해 줄 것이라 믿었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모른다고 한 것이 매우 야속하게 느껴졌다.

"흐흑! 여기서 어서 나가야 해. 으으윽!"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이회옥은 또 다시 느껴지는 엄청난 통증에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손으로 더듬어 본 결과 둔부에는 딱지가 잔뜩 앉아 있었다.

엉덩이 살이 터지면서 적지 않은 양의 선혈이 나왔고, 이것이 하의를 완전히 적신 후 그대로 굳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현재 둔부와 하의는 완전히 붙어 있었다. 거대한 피딱지가 앉은 것이다.

"으으으! 나쁜 놈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회옥은 손목과 발목에 채워진 굵은 쇠사슬이 꿈만 같았다. 이곳 산해관에 온 이후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건만 도둑 누명을 쓰고 갇혀 있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으으으! 어서 여기에서 나가야 해. 으으으윽! 끄으응!"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이회옥은 비명과 함께 혼절의 나락으로 떨어져 내렸다. 엉덩이가 무엇엔가 부딪치면서 엄청난 통증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었다.

"이놈! 어서 일어나라."
"으으으! 누, 누구시오? 으읏!"

대략 한 달쯤 뇌옥에 갇혀 있던 이회옥은 한참 꿀 같은 잠에 빠져있다 화들짝 놀랐다.

"이놈! 게으름 피우지 말고 어서 일어서. 일어나란 말이야!"
"으으윽! 아, 알았어요. 이, 일어날게요. 에이, 그만 차세요."

옥졸이 둔부를 걷어찰 때마다 통증이 전해졌기에 이회옥은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둔부에 있던 피딱지가 떨어져 나갔지만 아직 덜 아물었던 것이다. 그것은 장독(杖毒) 때문이었다.

"흐흐흐! 짜식, 어서 따라와!"
"따라와요? 어, 어디로요?"

"이 자식이…? 네놈이 그건 알아서 뭐해? 따라오기만 해."
"아, 알았어요."

잠시 후 이회옥은 두꺼운 철판으로 만든 마차에 갇혔다. 손가락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만한 구멍 몇 개 외에는 사방이 꽉 막힌 그것에는 두 사람이 더 있었다.

하나는 산해관 인근에서 연쇄적인 살인 행각을 벌여 한동안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던 살인범 냉혈살마(冷血殺魔) 안선중(安詵重)이 분명하였다.

그는 머리털이 하나도 없는 대머리인 데다가 한 쪽 눈에 안대를 한 특이한 인상이었다. 그의 거처를 알려주는 자에게는 은자 삼백 냥을 현상금으로 주겠다는 방이 사방에 붙어 있었기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곁에 있는 자 역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분명 수없이 많은 여인들의 청백을 더럽힌 희대의 색한(色漢)인 비접나한(飛蝶拿漢) 손해구(孫海九)였다.

십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당한 여인의 숫자만 삼백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것은 알려진 숫자만 그렇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말하길 당하고도 말하지 않은 여인들의 수효까지 합치면 엄청날 것이라 하였다.

그녀들은 뼈와 살이 타는 듯한 황홀한 방중술(房中術)에 완전히 녹아서 언젠가 다시 한번 자신을 찾아줄 것을 바랬기에 말하지 않아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비접나한은 적어도 방중술에 있어서 만큼은 천하제일이었던 것이다.

정의수호대에 잡혀 온 이후 고문을 당하는 동안 봉두난발이 된 머리를 꼼꼼하게 손질하는 그는 비록 여기저기 흙먼지가 묻었지만 꽃무늬가 화려한 화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 역시 여기저기 나붙어 있던 방 덕분이었다.

"크흐흐! 지옥으로 가는 지옥거(地獄車)에 웬 애송이지?"
"후후! 그러게 말입니다. 뭔가 착오가 있었나 보군요."
"으윽! 지, 지옥거요? 이, 이게 지옥거란 말이에요?"

냉혈살마와 비접나한의 말에 이회옥의 안색은 더 이상 창백해질 수 없을 정도로 창백해졌다.

악인들에게 있어 공포의 대명사인 지옥거는 대체 무엇이던가?

무림천자성에서 만든 그것은 정의에 어긋나는 짓을 하는 자들 가운데 죄질이 지극히 나쁘다고 판단되는 중죄인들을 호송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냉혈살마와 같은 희대의 살인마나 비접나한 같은 색마 등 무림공적들을 호송할 때 주로 사용된다.

지옥거가 가는 곳은 철광석을 캐는 대규모 광산이다. 물론 무림천자성 소유이다. 하지만 세인들은 그곳을 무림지옥갱(武林地獄坑)이라고 불렀다. 이곳에 잡혀든 죄수는 살아서는 다시는 세상의 빛을 볼 수 없다. 그렇기에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지옥거를 타기 전에 모든 죄수는 내공을 사용할 수 없도록 단전이 파괴된다. 그렇기에 반항이나 탈출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갱도의 입구에는 천여 명의 정의수호대원들이 혹시 있을지 모르는 탈출에 대비하여 삼엄한 경계망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껏 지옥거를 탄 자 가운데 살아서 세상의 빛을 본 자는 단 하나도 없다고 한다.

아무튼 일단 지옥갱에 수감된 죄수들은 죽을 때까지 중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그러다 지쳐 쓰러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죽은 뒤에야 갱도 밖으로 나와 공동묘지에 묻히는 것이다.

이미 모든 내공을 잃은 냉혈살마와 비접나한은 탈출을 전혀 꿈꾸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크흐흐!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지옥거를 탔느냐?"
"후후! 그러게 말입니다. 보아하니 아직 애송이인 듯한데…"
"……!"

냉혈살마와 비접나한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이회옥은 말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지옥거에 타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공포의 대명사인 냉혈살마와 같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새삼 겁에 질린 탓이다.

"어쭈, 이 녀석이? 본좌의 말이 말 같지 않다는 것이냐?"
"야, 이 녀석아! 어서 대답해. 안 그러면 형님께서…"

보아하니 어울리지는 않지만 냉혈살마와 비접나한은 잡혀 온 뒤 의형제라도 맺은 모양이었다.

"예? 아, 예. 소, 소생은 마, 말 도둑…!"
"뭐? 말 도둑? 으하하하하! 마, 말 도둑이래. 우하하하하!"

"크크크! 대체 몇 마리나 훔쳤기에 지옥거를 탄 거냐? 한 백만 마리쯤 훔쳤냐? 아니면 황제의 어마(御馬)라도 훔쳤어?"
"아, 아니에요. 소, 소생은 말을 훔친 적이 어, 없어요."

"크크크! 이 녀석, 정말 웃기는 녀석이군. 뭐, 훔친 적이 없다고? 그런데 왜 잡혀 왔냐? 하긴 미친놈더러 미쳤냐고 물어보면 미쳤다고 하는 놈은 하나도 없지. 안 그러냐?"
"크크! 맞습니다. 형님! 이놈, 지옥거는 아무나 타는 건지 알아? 어서 말해! 대체 몇 마리나 훔쳤어? 엉? 대체 몇 마리나 훔쳤길래 지옥거에 탄 거야?"

"아, 아니에요. 저, 저는 정말로 말을 훔친 적이 없어요. 저는 누명을 쓴 거라고요. 정말이에요. 믿어 주세요."
"뭐야? 믿어 달라고? 네 말을 믿으라고? 이 녀석이…? 지금 누구 데리고 놀아? 어디서 감히…?"

"크크크! 형님, 아무래도 이 녀석은 어디가 어떻게 된 녀석 아니면 맛이 살짝 간 녀석인 모양입니다."
"에라! 이 녀석아!"
"아야! 아야야! 저, 정말이라니까요. 아야! 믿어 주세요."

머리통을 쥐어 박힌 이회옥은 머리를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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