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게 역사적 현장 보여주고 싶어"
"여자친구와 데이트 코스로 좋을 듯"

'내가 대통령 취임식에 참가하려는 이유'...인수위 홈페이지

등록 2003.02.09 03:30수정 2003.02.09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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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 하나를 키우면서 살고 있는 50대의 여약사입니다. 아이의 아버지와 이혼하고 어렵게 딸애를 키우면서 알게 모르게 느껴져오는 이웃들의 불편한 시선에 어쩐지 늘 주눅들어 있는 듯한 아이를 보면서, 우리사회에서 이혼한 여자들에 대한 편견과 편부모의 자녀로 살아야하는 아이들이 겪는 어쩔 수 없는 마음의 상처 역시 공정치 못한 사회적 반칙의 산물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 저의 생각은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를 열어가겠다'는 당선자님의 공약과 연설을 접하면서, 사회적 약자의 개념이 꼭 경제적 약자만이 아니라 낡은 규범과 제도로 인해 핍박받고 소외된 약자도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게되었습니다.

아빠가 있는 아이들도 쉽게 얻을 수 없는 영광의 순간, 대통령의 취임식이라는 역사적 현장에 참여했었다는 빛나는 추억으로, 제 딸애의 비어있는 마음 한쪽을 채워줄 수 있게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난 2월 2일 서울 성동구에 사는 한 여성은 인수위 홈페이지(www.knowhow.or.kr)에 위 사연과 함께 취임식 참가 신청을 했다.

이 글을 접한 취임행사실행준비위원회는 주인공인 열세살 딸아이 이아무개(금옥초등학교 6학년) 양에게 줄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취임준비위는 오는 2월 25일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에 이양을 단상 위 초청인사로 유력하게 검토중이다.

대통령 취임식 단상 위 초청인사는 약 4만5000명의 취임식 초청자 중에서도 850명만 올라갈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자리'다.

백무현 화백
인터넷에 쏟아지는 갖가지 사연


인수위 홈페이지에 '내가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왜 참석하고자 하는가'하는 갖가지 사연이 쏟아지고 있다.

얼마전까지 식품 대리점을 하다가 불황 탓에 실직했다는 충북 청주시의 배아무개(46)씨는 "다시 도전할 기회에 많은 보탬이 될 것 같아" 참가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아무개(43)씨는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습니다. 부모님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깨달았습니다. 대통령님을 보구요. 열심히 살면, 아니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을요."

재미있는 사연도 많다. 경기 안산에 사는 부아무개(30)씨는 "평생동안 국회의사당이나 청와대나 가까이 가본 적이 없는 촌놈이라 이번에 구경 좀 실컷 하고 싶다"며 신청했다. 경북 영천의 김아무개(42)씨는 "저희 부부 결혼기념일이 2월 25일입니다. 1989년 2월 25일이지요"라며 "결혼기념일과 취임식이 같은 날 저희 부부가 초청된다면 평생 잊지 못할 그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에게 역사적인 현장을 보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반면,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고양시 화정에 사는 최아무개씨는 할아버지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를 대신 입력한 후 "유난히 저와 쌍둥이 동생을 사람해주시는 우리 할아버지를 위해서 설날 선물을 고민했는데, 할아버지께서 TV를 보시다가 '대통령 취임식에 가보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동생과 저는 할아버지 선물로 신청을 하게 됐다"고 적었다.

빼놓을 수 없는 사연이 '데이트'다. 대학생인 충북 청주 이아무개(26)씨는 "여자친구와의 데이트 코스로도 매우 좋다고 생각하여 신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충북대에 다니는 문아무개(24)씨 역시 "이번 대통령 취임식을 여자친구와 함께 참석해서 여자친구를 깜짝 놀라게 하고 싶은데…"하면서 "젊은 청년에게 꿈과 희망을 실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단상 위 '국민대표' 40여명 초청 방침

취임준비위는 대통령 취임식 수용인원 4만5000명 중 과반수 이상을 일반 국민들의 몫으로 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지난달 29일부터 2월 9일까지 인터넷, 행자부 전화(3703-3200), 전국 읍·면·동 사무소를 통해 신청을 받고 있다. 7일까지 신청자는 약 3만여명.

취임준비위는 국민의 호응이 좋고 특히 인터넷을 통해 갖가지 사연이 쏟아지자, 단상위 초청인사 850명중 약 40여명을 평범한 '국민대표'로 할 방침이다.

대통령 취임식의 단상 위는 최고 VIP 자리로서, 지난 97년 15대 취임식에는 당선자와 함께 전현직 대통령·3부요인 및 헌법재판소장·정당대표·장관 등이 앉았다.

취임준비위 관계자는 "단상위 초청인사는 사연을 중심으로 뽑을 계획"이라며 "간소하고 담백한, 일반 국민과의 거리감이 줄어드는 대통령취임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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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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