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 증후군을 아시나요

농민들 각종 질병에 시달려…건강실태 조사 방치되고 있어

등록 2003.02.09 23:12수정 2003.02.1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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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에서 농사 짓고 있는 김종만(63)씨는 무릎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무릎관절이 닳아 뼈끼리 부딪치는 골다공증 증세 때문이다. 침도 맞아 봤지만 신통치 않자 최근에는 1회에 3만원 하는 주사치료로 방법을 옮겼다. 김씨는 미국에서 수입한 것이어서 보험도 안 되는 주사치료가 이번이 5회째다. 김씨는 무릎 말고도 어깨결림 증세로도 고통을 받고 있다. 지난 여름철 잡초를 베느라 제초기를 무리하게 사용한 것이 탈이라고 한다.

문재숙(45·여·나주세지)씨는 동네에서는 젊은 축에 속하면서도 허리 때문에 고역을 치르고 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하다 허리를 삐끗했으나 일 때문에 곧장 병원에 가지 못한 것이다. 나중에는 신경협착증으로 수술치료까지 해야 했다. 500평 정도의 비닐하우스에 8년째 메론을 재배하면서 장시간 쪼그려 앉아 일한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a 농한기가 없는 비닐하우스 농사는 더위때문에 작업조건이 더 열악한 편이다.

농한기가 없는 비닐하우스 농사는 더위때문에 작업조건이 더 열악한 편이다. ⓒ 이국언

지난달 28일 광주전남지역 보건의료단체가 주최한 보건복지포럼에서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농민들의 '비닐하우스증후군' 에 대한 한 설문조사 사례가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이 조사는 비닐하우스 작업과 농민건강과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14명의 '농민약국' 약사들이 지난 98년 10월부터 비닐하우스 단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실시한 것으로 대상지역은 전남 나주, 화순, 해남, 구례 등 4개군 200여명이다. 그동안 비닐하우스증후군에 관한 보고가 빈약한 점에 비춰 이번 조사는 방치되다시피 한 농민들의 건강실태를 추적하는데 소중한 시도로 평가되고 있다.

농민들 '골병'에 시달려

'비닐하우스증후군'이란 비닐하우스에서 일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여러 증상들을 통틀어 말하는 것으로 비닐하우스 재배를 하는 농민에게 국한되어 생기는 직업적 질환으로 볼 수 있다.

농민들은 하우스 작업중 가장 어려운 경우로 복수응답자 232명중 110명(47.4%)이 비닐하우스 작업 중 더위가 가장 힘겹다고 꼽았고, 다음이 하우스 안에서의 장시간 작업(51명 21.9%)과 농약 칠 때(35명 15.1%) 순 이었다.


건강상 가장 불편을 느끼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복수응답자 314명중 118명(37.6%)이 흔히 '골병'이라고 부르는 근골격계 질환을 가장 고통스럽게 느끼고 있었는데, 장시간 쪼그려 앉거나 구부린 자세가 많은 하우스 일의 특성상 근골격계 질환은 여자가(40.5%) 남자에(33.8%) 비해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근골격계 다음으로는 감기나 호흡기 등의 면역기능 저하(66명 21.0%), 체력저하와 빈혈(64명 20.4%) 순으로 고통을 호소하였고 농약중독 증상도 10.5%(33명)나 되었다. 한편 근골격계 질환은 남녀 모두 년령대가 높아질수록 가장 고통스러워 하는 질병으로 꼽았다.


한달에 4일 이하 휴식이 82%

비닐하우스는 겨울철 바깥과의 기온차가 무려 섭씨 16∼23도에 이르고 봄철 내부온도는 최고 50℃까지 상승하고 습도는 90%가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농민들은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땀을 많이 흘려 탈수상태가 되기 쉬운데다 갑자기 차가운 외부환경과 만나면 감기에 걸리기 쉬운 것은 물론 생리적 균형에 이상이 생겨 여러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농약살포시 밀폐상태인데다 더위로 인해 농민들이 방독면 등 보호장비도 없이 작업에 나서기 때문에 농약중독의 피해도 그만큼 크다. 또한 좁은 하우스 실내에서 쪼그리거나 허리를 많이 구부린 자세에서 일하게 돼 대부분 요통이나 관절통을 앓는 것으로 알려졌다.

좌경신경통으로 약국을 찾은 문영환(71·나주)씨는 "더울 때는 땀으로 신발이 철벅철벅 할 때도 있다"며 "아무리 잘 먹어도 땀을 많이 흘리다보니 살로 안 간다"고 말했다.

a 가격보장이 안돼 농사에 회의가 느껴질때가 많다는 농민 강근수씨

가격보장이 안돼 농사에 회의가 느껴질때가 많다는 농민 강근수씨 ⓒ 이국언

시설채소를 재배해오다 하우스 농사를 더 하자는 남편을 뿌리치고 젖소사육으로 전환한 문재숙(45·여)씨는 "하우스 일에 하도 질려 더 하려면 나 끌어들이지 말고 당신이나 하라"고 했다며 "하우스에 비하면 젖 짜는 일이 더 수월하다"고 말했다.

한편 하우스 농가의 1일 노동시간은 조사대상 167명중 6시간 미만이 12명(0.7%), 6시간∼9시간이 62명(37.1%), 10시간∼12시간이 93명(55.6%)로 93%에 이르는 사람들이 하루 중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하우스에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휴식시간과 관련해 농민들이 한 달에 며칠이나 쉬는지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125명중 4일 이상 쉬는 경우가 23명(18.4%), 4일 이하 97명(77.6%), 경조사 등 특별한 날만 쉬는 경우 5명(4.0%)으로 대부분의 농민들이 충분한 휴식시간을 갖지 못한 채 거의 매일 일에 매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에 나선 농민약국은 "IMF이후 농자재 가격은 더욱 높아진 반면 턱없이 낮은 농산물 가격으로 인해 작업시간은 오히려 늘어나는 등 노동강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통참기 위해 술로 달래고 있다"

농촌진흥청 산하 농촌생활연구소가 지난 99년 전국 2000여 농민을 대상으로 농민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정신·신체적 증상인 '농부증'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28.5%가 항상 농부증으로 시달리고 있고 44.6%가 때때로 농부증의 증상을 호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인은 불과 27% 밖에 되지 않았다.

농부증 양성율은 연령이 증가할수록 또 남성보다 여성이 더 높은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여성·노령인구가 많은 농촌인구 구성을 감안한다면 농부증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농민들은 영농철에는 부족한 일손으로 적절한 휴식이나 치료를 받고 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임시방편으로 스테로이드 제재 등으로 임시 통증관리만 하게 되면서 항생제부작용이나 돌이킬 수 없는 질환으로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박농사를 짓고 있는 최충태(영암)씨는 "피로가 쌓여도 고통을 억지로 참기 위해 술로 달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김종만씨는 "보건진료소에서 약을 타고 있지만 그나마 바쁠 때는 그 틈도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농민들이 농사일과 관련한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으나 이에 대한 실태파악은 미흡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민과 관련된 건강 문제는 크게 농부증, 농약중독, 비닐하우스증후군, 농기계사고 등인데 이에 대한 전 영역을 체계적으로 조사한 자료는 아직 없어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조사자료를 통해 일부 단편적인 추측이 가능할 뿐이다. '농부병' '비닐하우스증후군'이란 용어도 일본에서 도입된 것인데 농약중독에 대한 자료 역시 우리와 상황이 다른 외국의 데이터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환경연구소 강태선 연구원은 "전후 50년대부터 농부증에 관심을 가져온 일본이나 10여개가 넘는 전문연구기관을 두고 대규모의 역학조사를 벌이고 있는 미국에 비하면 우리는 이제 첫 발을 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농민질환 산업재해 관점에서 바라봐야"

농민들의 각종질환은 농사일과 관련한 직업성 질환으로 나타나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아직 부족한 편이다. 강태선 연구원은 "외국에서는 농업이라는 직업적 변수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비해 우리는 도시에 비해 의료체계가 느리고 병원이 많지 않다든지 하는 지역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주 농민약국 이연임씨는 "정부는 직업병을 고용과 피고용의 관계에서만 보고 있다"며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생각할 때 일종의 산업재해 관점에서 농민 건강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농부증은 과도한 작업시간과 수면 및 휴식 부족으로 인한 피로누적, 부실한 영양상태 등이 주요한 원인이지만 농민을 수입개방, 농산물가격폭락, 농가부채 등 경제적 어려움으로 내 몬 정부의 농업정책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a 농민약국을 찾은 할머니들

농민약국을 찾은 할머니들 ⓒ 이국언

농민들의 건강을 위해서는 우선 정부기관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태선 연구원은 "전국에 산재한 농업기술센타 생활지도과의 역할을 농민들의 복지와 건강문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적 여건이 낙후한 70년대에 부엌개량이나 의식개선을 담당했던 생활지도과는 초창기의 역할을 바꿔 농민의 복지현실에 더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연임 약사는 "IMF로 통폐합 된 오지마을 보건진료소는 가깝고 저렴한 진료비로 노약자의 이용이 높다"며 "공공의료의 최전선인 보건진료소는 민간과 경쟁하는 질적 차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예방과 재활치료 독거노인 관리 등의 역할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아울러 "만성질환자와 노인인구가 많은 농촌의 현실을 감안해 방문치료 서비스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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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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