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44

난 말 도둑이 아니야 (4)

등록 2003.02.10 15:38수정 2003.02.10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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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의 조건은 간단하다. 무공을 가르쳐 줄 테니 무림지옥갱에서 우리 둘을 꺼내달라는 것이다."
"무, 무림지옥갱에서 탈출을…? 세상에! 그건 말이 안 되요. 지옥갱에서 어떻게 탈출을 해요? 제겐 그런 능력이 없어요."

"크크! 그 능력은 노부가 만들어 주지. 그러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리고 난 뒤, 넌 우릴 꺼내주기만 하면 돼!"
"그, 그래도… 무림지옥갱이 생긴 이래 탈출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건 불가능해요."


"후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이다. 지옥갱에 들어갈 수 있다면 나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안 그래?"
"핫핫! 맞습니다. 자고로 형님처럼 낙천적으로 살아야 무병장수(無病長壽)한다고 했습니다. 지옥갱이 제아무리 험악한 곳이라 할지라도 분명 솟아날 구멍이 있을 겁니다."

"지옥갱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키고 있다는데…"
"크크! 무림천자성의 떨거지들이 많이 지키고 있지. 만일 노부가 내공을 잃지 않았다면 죽어서 지옥에 간다 할지라도 빠져나올 자신이 있다. 하지만 보다시피 단전이 이렇게 되었으니…"
"……!"

이회옥은 냉혈살마의 단전이 있는 부위의 살들이 시커멓게 죽어 있는 것을 보고 입을 열 수 없었다. 청룡갑이 없었다면 자신도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끔찍하게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냉혈살마의 말이 이어졌다.

"휴우…! 이래서 내공을 모을 수 없지. 탈출을 하려면 근력만으로는 안 될 때가 있을 것이야. 그때 네가 도와주기만 하면 돼."
"……!"

이회옥은 냉혈살마나 비접나한의 눈에서 희망의 빛이 번뜩이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여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때 비접나한의 입이 열렸다.


"형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네 능력 밖의 일이 아니야. 그러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알았지?"

"그, 그래요? 알았어요. 그렇게 할 게요."
"크크크! 좋아, 그럼 계약을 맺은 거다."


"핫핫핫! 형님, 감축드립니다. 저 녀석 덕분에 지옥갱에서 탈출한 최초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하하하!"
"좋아, 당장 지금부터 무공 전수를 시작하지. 자, 지금부터 노부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무공에는 내공과 외공이 있는데…"

냉혈살마는 사실 무림의 고수는 아니었다.

많은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가 죽인 자들은 저잣거리에서 상인들을 상대로 주먹이나 휘두르는 무뢰배들이거나 건달들이었다.

어린 시절 객잔 점소이 생활을 하던 그는 무림인인 듯한 사람이 맡긴 봇짐을 보관한 적이 있었다. 며칠 후에 온다던 그는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호기심이 솟은 그는 봇짐을 풀었다가 한 권의 무공비급을 발견하였다. 현현기서(玄玄奇書)라는 그것에는 도해와 함께 내공구결이 쓰여 있었다.

날마다 그것에 쓰여진 대로 운기조식하면서 무림인들이 후원에서 비무하는 것을 유심히 살피면서 각종 초식을 익혔다.

다시 말해 냉혈살마가 내공은 제법 괜찮았으나 초식만은 잡다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거리의 불량배들을 황천으로 보내는 데에는 조금의 불편함과 모자람이 없었다.

사실 냉혈살마가 많은 살행을 저질렀지만 그가 죽인 자들 대부분은 선량한 사람들을 등치던 악한들이었다. 그러다가 무림인을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한쪽 눈을 잃은 애꾸가 된 것이다.

아무튼 냉혈살마의 설명은 이어지고 있었다.

"태어났을 때에는 들숨과 날숨의 길이가 같다. 그러나 차츰 차츰 날숨이 들숨에 비하여 짧아지게 된다. 후후! 못 믿겠으면 네 숨을 스스로 느껴봐라. 들숨은 길고 날숨은 짧지?"
"……!"

이회옥은 냉혈살마의 말대로 들이키는 숨보다 내쉬는 숨이 짧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세상에 태어난 이후 십오 년 동안 단 한번도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일이다.

"사람은 숨을 안 쉬면 못 살지? 그렇지?"
"그, 그래요."

"그럼 안 먹고 살 수 있냐?"
"아뇨. 굶으면 죽지요."

"그럼 살아 있다는 것은 무언가를 먹었다는 거지? 그런데 먹기만 하고 싸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

이회옥은 또 대답을 못했다. 이번의 말 또한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허허! 녀석, 뭘 그리 생각하느냐? 먹었는데 안 싸면 죽지! 뱃속에 똥만 가득 차면 죽지 안 죽겠느냐? 숨도 마찬가지이다. 들이마시기만 하고 내쉬지 않으면 죽는다. 따라서 들숨과 날숨의 길이가 항상 같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
"자, 이걸 한번 잡아봐라."

이회옥은 자그마한 막대를 받아들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어린아이 팔목 정도 되는 굵기였다.

"그걸 숨을 들이키면서 부러뜨려봐라."

이회옥은 숨을 들이키면서 막대를 부러뜨리려 하였으나 힘이 전혀 주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절로 숨이 멈춰지면서 힘이 들어가자 조금 전과는 달리 쉽게 부러졌다.

"후우―! 에이이잇!"
뚝―!

"하하! 녀석, 그것을 부러뜨리려니까 절로 숨이 멈춰지지? 그리고 쉽게 부러진다는 느낌이고."
"그, 그래요!"

"자, 오늘의 숙제! 왜 숨을 들이킬 때보다 멈췄을 때 힘이 더 들어가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봐라."
"……!"

말을 마친 냉혈살마는 졸립다는 듯 눈을 감았고, 비접나한은 재미있다는 듯 미소만 짓고 있었다.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고 두리번거리던 이회옥은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지옥거는 쉬임 없이 굴러가는지 덜컹거리고 있었다.

무려 반나절이나 잠자는 척하면서도 실눈을 뜨고 있던 냉혈살마는 이회옥의 표정이 바뀌자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았느냐?"
"예, 숨을 멈춘 상태에서 힘을 주면 숨을 들이마실 때와는 달리 단전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단전에 힘을 주면서 괄약근에도 힘을 주면 그 힘이 배가(倍加)가 되는 것 같아요."

"호오! 괄약근까지…?"
"예! 그런 다음에 숨을 내쉬면 날숨이 길어지는 것 같고요."

"흐음…! 제법이다. 좋아, 그렇다면 이번엔 다음 문제! 숨을 쉴 때 아랫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한번 느껴봐라."
"예에…? 무슨 말씀이신지…?"

"똑바로 앉은 다음 숨을 들이쉴 때와 내쉴 때 아랫배가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한번 관찰해 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왕 관찰하는 김에 네 몸을 찬찬히 살펴보거라."
"……!"

자세를 바로 한 이회옥은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스스로를 면밀히 살폈다. 세상에 태어난 이래 스스로의 몸에 관심을 가져보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느껴지는 것이 제법 많았다.

대략 일각 가량이 지난 후 냉혈살마의 입이 다시 열렸다.

"어떻더냐?"
"예! 숨을 들이쉬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코와 입이 그거지요. 내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입으로만 숨을 들이쉬면 금방 목이 말라오지만 코는 안 그렇습니다. 내쉴 때는 문제가 없는 듯합니다."

"오냐! 좋은 것을 알아냈구나. 하늘의 뜻을 거슬려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사람의 몸은 소우주이다. 따라서 우주의 섭리에 역행하지 않는 것이 좋지. 숨을 들이 쉴 때에는 코로 들이쉬고 내쉴 때에는 입으로 내쉬거라. 자, 그 다음에 뭘 느꼈지?"
"예! 혀끝이 자연스럽게 입천장에 닿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후후! 그것도 괜찮은 발견이다. 이것 역시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우선 간단히 설명하마.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은 다른 혈맥들과는 달리 서로 이어져 있지 않다. 이것들이 맞닿는 곳이 바로 괄약근이 있는 항문과 입술이다."
"항문과 입술이요?"

"그래. 항문에서 시작하여 등줄기를 타고 올라 머리를 지나 입술까지 오는 것이 독맥이고, 입술에서 시작하여 가슴과 배를 타고 내려와 항문까지 가는 것이 임맥이다. 혈맥에는…"

임독양맥을 비롯한 생사현관(生死玄關)과 기경팔맥에 대한 냉혈살마의 설명은 이어졌다. 설명을 듣는 동안 이회옥은 조금 전 자신이 느꼈던 것이 왜 그런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또 느낀 것이 있느냐?"
"예! 숨을 들이쉴 때에는 배가 들어가고 내쉴 때에는 배가 나오는 것 같았어요."

"그래? 그럼 그것이 반대가 되도록 해봐. 들이 쉴 때에는 배가 불룩 나오도록 하고, 반대로 내쉴 때에는 쑥 들어가도록…!
"예! 알았어요."

이회옥은 냉혈살마의 말에 아무런 토도 달지 않고 즉각 그가 시키는대로 숨을 쉬었다. 내심 지금껏 쉬던 것을 반대로 하니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냉혈살마의 설명이 이어졌다.

숨을 들이쉴 때에는 등 뒤 명문혈(命門穴)을 통하여 우주의 뜨거운 기운이 들어오고, 숨을 내쉴 때에는 체내의 탁한 기운들이 빠져나간다는 느낌을 느껴 보라 하였다.

잠시 후, 또 다른 지시가 내려졌다.

"숨을 모두 들이쉬었으면 일단 멈춰봐. 연후에 괄약근에 힘을 주어 두어 번 쫑긋거리도록 해라. 옳지! 다음엔 숨을 내쉬고, 또 괄약근을 쫑긋거리도록! 좋아, 그렇게. 옳지! 그렇게. 자, 이젠 조금 더 천천히 들이쉬고 천천히 내뱉어."
"후우…! 쉬이…! 후우…! 쉬이…!"

"자, 이제부터는 가급적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멈춘 다음, 다시 내 쉬고, 또 멈추고. 옳지! 그렇게 숨을 쉬어봐라!"
"후우…! 쉬이…! 후우…! 쉬이…! 후우…! 휘이…! 으읍!"

"후후! 숨쉬기가 힘들었지?"
"후우…! 예! 억지로 참았다가 숨을 천천히 들이쉬는 것이 너무 어려워요. 저도 모르게…"
"후후! 이제 숨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았냐? 처음엔 세 번 이상 호흡하기가 어렵지. 차츰 노력을 하면 늘어나게 되니 조급한 생각일랑 품지 말고 꾸준히 수련해라. 아직 지옥갱에 도착하려면 멀었으니 시간은 충분하다."

"알겠습니다."
"좋아! 지금부터는 오로지 호흡에만 신경을 쓰도록!"
"예!"

잠시 후 이회옥은 결가부좌를 튼 채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숨을 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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