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집 아줌마와 미국제품 불매운동

미국제품 불매운동 반대자들의 뒷통수를 후려치며

등록 2003.02.12 09:08수정 2003.02.1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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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중국음식점의 외관. 진짜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조금은 촌스러운 건물이 눈에 띈다.

중국음식점의 외관. 진짜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조금은 촌스러운 건물이 눈에 띈다. ⓒ 장우식


미국제품 불매운동을 할 때 너무나 열심히 도와주시던 아주머니께서 경영하고 계시는 중국음식점이다. 3월 12일, 명동에서 벌어진 미국제품 불매운동을 한 방송국에서 편파적으로 다루어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미국제품 쓰지 말자고 하는 전단지를 시민들이 밟고 지나가는 장면, 미국계 회사 점포 주인들(맥도날드, 베니건스) 이런 사람들이 매출에 지장없다구 하는 장면들, 그리고 시민들이 미제불매운동에 관한 부정적인 의견들만 보여준 인터뷰 컷.

그때 나와 같이 미제불매운동을 하고 있던 여러 학생들이 열이 받아서
그때부터 그 방송프로그램의 게시판을 뻗게 만들었다. 지금도 한두 개씩 사과하라는 글이 올라온다. 그런 것들에 열받아서 그 게시판에 글을 올리다가 나와 만나게 된 아주머니이다.

a 주방 근처의 모습

주방 근처의 모습 ⓒ 장우식


a 이자리에 앉아서 자장면 곱배기를 먹었다.

이자리에 앉아서 자장면 곱배기를 먹었다. ⓒ 장우식

오늘 오랜만에 들러서 짜장면곱배기를 주문해놓고 "요즘 온라인 활동이 좀 뜸하시네요"라고 하니까 하시는 말씀이 "예전에 그 방송보도 보구 열받았거든. 어린 학생들이 우리나라 자존심 살리자구 그렇게 몸부림을 치는데 내가 조금만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했는데 요즘은 내가 안나서도 다들 너무 잘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라고 하시고는 웃으신다.

그리고는 나오는 자장면을 보니 근래 들어 보기 힘든 오이채와 계란 반쪽도 아니고 계란 하나가 통째로 올려져 있는 것이다. 감동받았다. 그러고도 돈을 받지 않으셨다. 돈 없는 거 뻔히 아는데 내가 촛불시위에 나서지는 못하지만 이런 거라도 도와주어야 하겠다구 하시면서
극구 음식값을 받지 않으셨다. 이 지면을 빌어서 정말로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도 미제불매운동에 대한 토론을 할라치면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이런 거다. 미국에서 통상압력이 들어오고 미국에서 한국제 불매운동을 벌인다면 우리만 손해다. 쉽게 하는 말로 국익 생각하자는 말이다. 그리고 미제불매운동하면 마소창문(MS Windows)은 왜 쓰냐구 하는 놈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미제불매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먹거리만은 미국것을 안 먹을 수밖에 없다. 왜냐구?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은 습관이 되었다. 생활 속의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미제 불매 홍보집회를 할 때마다 어른들의 관심없는 눈초리, 맥도날드 점장의 제지, 그리고 집에 가서 공부나 하라는 어르신들의 제지. 그 모든 것 앞에서 그 반응들을 온몸으로 느껴가면서 몇 번이나 감정을 추스려가면서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차마 미국 것을 먹을 수가, 아니 사 쓸 수가 없다.


여자아이 하나는 노점상 주인에게서 "이봐, 거리 더러워지잖아! 집에 가서 공부나 해 공부나!"라는 소리 듣고는 울어버렸다. 그 여자아이 얼굴을 똑바로 마주할 수가 없다.

그 동안의 행동들이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이 되어 머리를 짓누르기 때문이다. 저 애들이 거리에 나와서 저렇게 면박을 받을 때까지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하였는가 하는...

지금도 내가 활동하고 있는 미제불매 사이트 게시판에는 친구가 맥도날드 가자는 거 롯데리아로 선회시켰다는 경험담, 콜라를 화장실 세제로 잘 쓰고 있다는 말들(저도 해봤는데 잘 닦입니다). 무궁화 씨를 구해서 심었는데 잘 자라고 있다는 글들, 그리고 홍보집회를 할 때 너무나 고맙게 전단지를 꼼꼼히 읽어 보는 어른들의 이야기.

그 모든 게 너무 이쁘게만 느껴진다. 솔직히 입맛은 순한국산이라는 나도 한동안 콜라 금단현상에 한동안 시달렸다. 청소년들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가 빼앗긴 자존심을 자기네들이 맥도날드를 끊어서라도 조금이나마 갚아보겠다는 생각. 너무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미국이라서 용서되는 건 없다는 생각들. 잘못된 짓을 하는 놈들은 처벌받아야 한다는 생각들.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대한민국을 같은 책상위에 올려놓고 비교할 수 있는, 그런 생각을 우리 학생들이 가지고 있다.

열등감에 찬, 한에 맺힌 미국반대가 아닌, 상식의 선에서 유쾌하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부터 미국을 건너뛰어버리는 그네들의 생각들이 우리나라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다.

1세대 반미가 네거티브였다면 새로운 세대의 반미는 포지티브이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하고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속해 있는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다치게 한다면 미국이라도 용서를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자기사랑, 나라사랑에서 출발하는 반미, 아니 탈미의 세상. 사정이 허락한다면 200년쯤 살고 싶다. 그런 세상이 그때쯤이면 완전하게 올 거같기에... 그리고 청소년들이 주축이 되고 있는 미국제품 불매운동을 평가절하하는 말들이 많다. 국익을 생각해라, 이런 시답잖은 말들.

한 달에 한 번씩 시민들에게 미국제품 불매운동 홍보집회를 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 자리에 가서 그들이 전단지를 나눠주며 할 일 없는 짓한다는 무관심한 눈초리와 맥도날드 점장의 제지에 상처받고, 관심을 가져주는 어른들의 마음씀씀이에 해맑게 웃고 감동받는 모습들을 단 한번이라도 마주해라. 과연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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