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46

지옥으로 가는 길 (1)

등록 2003.02.12 14:06수정 2003.02.1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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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옥으로 가는 길

철컥, 철컥! 츠라라라라랏! 덜컹!
"크으, 냄새…! 에이, 더러운 놈들… 뭐해? 어서 내려!"


자물쇠 풀리는 소리와 쇠사슬 풀려나가는 소리, 그리고 석 달 동안이나 잠겨 있던 출입구가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눈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회옥을 비롯한 냉혈살마과 비접나한은 너무도 찬란한 태양광에 눈이 멀 듯하자 황급히 손으로 가렸다.

"뭐해? 빨리 안 내리라는 말이 안 들려? 이놈들이…?"
쐐에에에에엑! 촤아아악!
"아아악!"

가장 바깥쪽에 앉아 있던 비접나한은 어깨와 가슴으로부터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에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지옥의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무림지옥갱의 옥졸이 휘두른 채찍이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빨리 내리란 말이야! 이 빌어먹을 놈들아!"


쐐에에에엑! 챠아아악!
"크으으으으윽!"

"어쭈, 이놈들이…? 좋아, 한동안 매를 안 맞아서 정신을 못 차리는 모양이지? 크흐흐! 이런 놈들은 매를 맞아 봐야 정신을 차리지. 어디 한번 맞아봐라. 야압!"


쇄에에에엑! 챠아악!
"크으으으으윽!"

쉬이이이이이익! 촤아아악!
"크으으윽!"

불과 반각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회옥을 비롯한 냉혈살마과 비접나한의 전신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채찍이 작렬하였다. 그것은 정확하고, 신랄했으며, 강했다.

"지금부터 반의 반의 반의 반각 안에 내린다. 실시!"
"조, 존명!"

워낙 눈이 부셔 눈을 뜰 수 없었지만 셋은 황급히 지옥거 밖으로 구르듯이 내려갔다. 그 와중에 누군가의 입에서 복창소리가 났다. 음성으로 미루어 비접나한인 듯 싶었다.

"어쭈! 동작 봐라…? 이놈들이 굼벵이를 삶아 먹었나? 뒈지고 싶어? 아니면 한번 더 맞아야 정신 차리겠어?"
"아, 아닙니다."

"크흐흐! 역시 짐승만도 못한 놈들에게는 매가 약이지. 좋아, 본좌를 따라와라!"
"조, 존명!"

이번에도 비접나한의 입에서 복창소리가 터져 나왔다. 옥졸은 그런 그를 힐끔 바라보고서는 희미한 조소를 베어 물었다.

"크흐흐!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이 제일 빨리 적응하는군. 좋아, 앞으로도 그렇게 해! 알았지?"
"조, 존명!"

지옥거를 타고 오는 내내 느긋하던 비접나한이었다. 무림지옥갱이 분명 지독한 곳이라고는 상상되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아 있는 곳이니 진짜 지옥보다는 조금은 나을 것이라는 것을 위안 삼던 그였다.

그러면서 계집은 없는지 모르겠다며 웃기도 하였다. 하지만 매 앞에서 장사가 없는 법이다. 살이 온통 찢겨나가는 듯한 통증에 덜컥 겁이 난 비접나한이 저도 모르게 복창을 한 것이다.

사실 채찍의 끝에는 묵직한 납덩이가 들어 있었다. 그렇기에 살 속을 파고 들 때마다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던 것이다.

이회옥 역시 채찍에 맞았지만 그가 느끼는 통증은 비접나한이나 냉혈살마가 느끼는 고통의 십 분지 일도 채 되지 않았다. 속에 청룡갑을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는 동안 마차 밖에서 들리는 정의수호대원들의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 얼마후면 지옥갱에 당도한다는 것을 알고 냉혈살마가 일부러 걸치게 하였던 것이다. 만일 이회옥의 단전이 파괴되면 지옥갱을 탈출하려는 희망조차 영영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츠라랑! 츠라랑!

발목에 찬 차꼬가 바닥과 마찰하면서 괴이한 소리를 내는 동안 피처럼 붉은 혈삼(血衫)을 걸친 옥졸의 입이 열렸다.

"크흐흐흐! 너희가 강호에서 뭐로 불렸던 오늘부터 너희 세 놈의 이름과 외호는 없다. 대신 삼천이십오견(犬)과 삼천이십육견, 그리고 삼천이십칠견이라 부른다. 알겠느냐?"
"존명!"

이번에도 역시 비접나한이 가장 먼저 복창을 했다. 잠시 후 그의 입가에는 자괴감이 섞인 냉소가 어려 있었다. 하긴 사람더러 개라 부르는데 기분 좋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좋아! 이제부터 너희들에게 신분증을 만들어 주겠다. 잠시 기다리도록!"
"……?"

신분증이라는 말에 어리둥절하던 셋은 멀지 않은 곳에서 다가오는 또 다른 옥졸을 보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의 손에 들린 것 때문이었다. 시뻘건 숯불 속에는 여러 개의 인두들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크크크! 너, 앞으로 나와!"
"저, 저요?"

"그래! 너, 기생오라비처럼 생겨 재수 없어 보이는 놈! 지금부터 본좌가 친히 네놈의 신분증을 만들어주지."
"여, 여기서 지내려면 시, 신분증이 꼭 있어야 하나요? 소, 소인은 신분증 없어도 되는데…"

무엇을 어찌 하려는지 몰라도 달궈진 인두를 보며 잔뜩 겁에 질린 비접나한은 비칠거리며 물러섰다.

"크흐흐흐! 지금부터 셋을 쉴 때까지 앞으로 안 나오면…"
"허억! 나, 나갑니다. 나갑니다요."

팔목에 감겨 있던 채찍을 푸는 옥졸의 모습을 본 비접나한은 기겁을 하며 황급히 앞으로 튀어 나갔다.

"크크크! 진작 그래야지. 본좌가 신분증을 만들어 준다는데…"
"허억! 혀, 혈도는 왜…?"

말을 하던 옥졸이 느닷없이 마혈을 제압하자 비접나한의 안색은 더 이상 창백해질 수 없을 만큼 창백해졌다. 곁에 있던 옥졸이 불에 달궈진 인두 하나를 집어들었기 때문이다.

"크흐흐흐! 조금 아프겠지만 참아라."

인두를 받아든 옥졸은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이 몹시 즐겁다는 듯 입가에 괴소를 베어 물고 있었다. 같은 순간 비접나한의 하의는 축축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극심한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소변을 지려버린 것이다.

"아, 안 돼! 가까이 오지마! 아, 안 돼! 오, 오지 말란 말이야!"
"크흐흐! 오지 말라고? 그건 안 되지."

바들바들 떨고 있는 비접나한을 본 옥졸은 비릿한 조소를 베어 문 채 시뻘겋게 달궈진 인두로 그의 이마를 지긋이 눌렀다.

지직! 지지지지지직!
"으아아아아아악!"

이마 앞으로 흘러내려 있던 머리카락들이 오그라듦과 동시에 노릿한 살 타는 냄새와 더불어 희뿌연 연기가 솟았다.

"크흐흐흐! 겨우 하나 가지고 뭘 그래? 네놈은 삼천이십오견이니까 아직 네 글자를 더 새겨야 하는데… 크흐흐흐! 자, 삼(三)자는 새겼으니 이제 천(千)자를 새길 차례지?"

지지지지지직!
"크아아아아아아악!"

반쯤 실신 상태인 비접나한의 이마에서는 또 다시 연기가 솟았다. 지독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마혈을 제압 당한 이상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기에 목이 터지라고 비명을 지르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잠시 후 그의 이마에 이(二)자가 새겨지는 순간 비접나한은 혼절의 나락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는 냉혈살마와 이회옥의 안색 역시 더 이상 창백해질 수 없을 정도로 창백해져 있었다. 자신들 역시 같은 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 각 정도 후, 비접나한의 이마에는 삼천이십오(三千二十五) 라는 글자가 명확하게 새겨져 있었다. 혼절한 상태였지만 한 자, 한 자 새겨질 때마다 꿈틀거리는 것으로 보아 얼마나 지독한 통증인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잠시 후 냉혈살마의 이마에는 삼천이십육(三千二十六)이라 새겨졌고, 이회옥의 이마에도 삼천이십칠(三千二十七)이라 새겨졌다.

이회옥은 처음부터 혼절해버렸기에 차라리 나은 편이었다. 어금니를 깨물며 고통을 참던 냉혈살마는 생똥까지 쌌다. 그러는 동안 평생토록 사라지지 않을 흔적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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