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 속에 숨쉬고 있는 '농민약국'

10년 넘게 '농민속으로'…매주 무료순회진료와 건강교실

등록 2003.02.13 14:23수정 2003.02.1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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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4월 '농민에 의한 농민을 위한, 농민의 약국'을 표방하며 전남 나주에서 문을 연 농민약국은 의료소비자인 농민이 직접 성금을 걷어 마련한 최초의 사례다.

당시만 하더라도 전국민의료보험이 실시되기 전이라 농촌은 병·의원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만만치 않은 경비로 인해 병원의 문턱은 그만큼 높았다. 시골 면 단위 지역으로 가면 의료의 사각지대라 불릴 만큼 철저히 의료혜택으로부터 소외되고 있었다.

a 농민약국을 찾은 할머니들

농민약국을 찾은 할머니들 ⓒ 이국언

농민약국에 대한 보건의료인과 농민들의 관심만큼 초창기 이들은 정부의 갖은 탄압과 방해에 시달려야 했다. 농민회의 자금줄이라 생각한 정보당국이 제약회사와 약품 도매업회를 통해 약품공급을 차단한 것이다. 약을 팔아야하는 이들은 봉고차로 서울로 경기도로 군산으로 1년 8개월 동안 약을 사러 다녀야 했다.

농민약국은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주에 이어 95년 해남과 97년 화순에도 약국을 개설해 현재 이들 지역에 13명의 약사들이 일하고 있다. 95년에는 농민약국에 이어 농민치과도 개원 농민들 곁에 한발 더 다가섰다.

농민약국은 개국부터 지금까지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매주 구석구석 마을을 찾아다니며 무료 순회진료와 건강교육을 펼치고 있다. 순회진료는 농민회와 농민약국 농민치과의 모든 역량을 동원한 가장 중요한 활동이다. 농민회는 순회진료를 통해 농민들과 자연스럽게 만나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되고 농민약국 약사들은 현장을 통해 농민들의 건강문제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순회 진료팀을 맞이한다고 마을잔치 삼아 돼지를 삶아놓고 진료도 하기 전 이미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있어, 진료는 포기한 채 마을 주민들과 어우러지는 수도 있었다. 순회진료가 끝나면 어르신들은 어김없이 이들 손에 고추나 호박을 쥐어주곤 했다.

이들은 틈틈이 농부증·하우스병 등 농민들에게 나타나는 직업병이나 보건의료 문제에 대한 조사작업을 통해 정책을 내놓고 있다.


농민치과에서 실시한 2001년 나주지역 65세 이상 노인 484명의 구강보건 실태조사 틀니가 필요한 사람은 203명(42%)인데 그중 의료보호대상자의 78% 의료보호대상자이면서 독거노인의 84%가 경제적 이유 때문에 틀니를 장착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육체노동에 찌들리면서도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영양섭취가 불가능한 실상이 알려지면서 정부는 뒤늦게 10개년 계획으로 70세 이상의 의료보호대상자에게 틀니장착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a 농민약국은 현장의 문제를 찾기위한 연구 조사활동에도 관심을 쏟고있다.

농민약국은 현장의 문제를 찾기위한 연구 조사활동에도 관심을 쏟고있다. ⓒ 이국언

작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농약중독에 대한 설문조사는 현재 400여명의 설문조사가 끝난 상태다. 경기지역 등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가 활발한데 비해 농민연대는 빈약한 편이서 이들이 현장에서 발로 뛰며 조사한 자료는 농민의 실태를 이해하는 소중한 지표로 쓰이고 있다.


이들은 지난 대통령 선거 후보들에게 농촌지역의 보건의료 정책에 대한 요구안을 건네기도 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김은하 회장은 "10년 넘게 순회활동과 조사를 통해 끊임없이 축적한 연구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광주전남 보건복지포럼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와 보건의료노조 등 보건의료 7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지역민들 곁에서 참 실천의 길을 찾는 보건의료인들의 활동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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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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