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밭에 들어가면 그윽한 죽향이 풍겨

<만나고 싶은 우리 꽃과 나무 2> 60년 만에 꽃 한 번 피우고 죽는 대나무

등록 2003.02.13 13:58수정 2003.02.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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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밭에 햇볕

대밭에 햇볕 ⓒ 김규환


휠지언정 꺾이지 않는 절개로 통하는 대나무. 대나무는 어떤 까닭인지 눈이 한길 쌓여도 꺾이는 법이 없다. 그 대나무 밭에 들어가면 그윽한 죽향(竹香)이 풍긴다. 한 번 발을 잘못 디뎠다가는 신발을 뚫고 들어와 발을 가만두지 않아 아무나 대밭에 들어갈 수도 없거니와 막상 들어가봐야 도시 사람 기준으로 맡으려 하면 다가오지 않는다.


나무도 아닌 것을 나무라 부르는데 익숙해져 있는 대나무. ‘매란국죽’(梅蘭菊竹), ‘사군자’(四君子) 중 난초와 대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다. 양반네들 눈요기감으로 제격인 난초(蘭草)와는 달리 대나무는 뿌리가 벼(벼과 식물의 일종)여서 그런지 서민처럼 눈에 잘 띈다. 우뚝 솟은 저 민초의 기개를 보라!

이 대나무는 모심을 때가 되면 뭐가 궁금했던지 세상구경 하려고 죽순이 한 번 “빼꼼” 뾰족하게 얼굴을 내미는데, “요놈 참 신기하게 생겼네!”하며 보고 와서 한 숨 눈 붙이고 이튿날 가보면 봄비 한 번 추적추적 맞아 벌써 어른 키 보다 크게 자라 있다.

열흘도 안되어 평생 자랄 높이는 모두 확보한 다음 마음을 살찌워 간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 했던가? 우리에게도 꿈이 비온 뒤 죽순처럼 한두 개도 아니고 수백 수천 개가 “죽죽~쭉쭉~” 커 가면 얼마나 좋을까?

a 죽순과 대나무

죽순과 대나무 ⓒ 담양군


대나무 밭을 ‘금(金)밭’이라 했던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대밭 한 마지기 300평(坪)만 있으면 대와 죽순(竹筍), 죽세공품 제작으로 돈을 벌고, 자잘한 가지는 대빗자루를 만들고 댓잎은 먹는데 쓰는 등 그냥 버릴 게 없는 효자 농사꾼이었기 때문이다.

벼농사나 보리농사, 밀농사, 고추농사처럼 해마다 땅을 갈고 씨앗 뿌리고, 퇴비 뿌려줄 필요도 없이 한 번 몇 뿌리만 캐다가 드문드문 잘 심어 놓으면 묘지고 밭이고 간에 쭉쭉 뻗어가 금방 대밭을 만들어 송아지 보다 귀한 알짜배기 노릇을 했다.


발 디딜 작은 틈만 있으면 빼곡이 들어서 2~3년 묵은 것과 올해 나온 새 대가 어우러져 오밀조밀 사이 좋게 지내며 서로를 자라게 돕는다. 절대 새 것이라고 깔보지 않고 생육 환경을 허락하는 넉넉한 마음을 가졌다. 죽순이 피어 자신이 자랄 만큼 부쩍 커도 바람에 넘어졌다는 얘기는 없었다. 오밀조밀 붙어있기 때문에 넘어지면 잡아준다. 햇볕도 나눠 가진다.

a 창평향교 우측 대밭

창평향교 우측 대밭 ⓒ 김규환


또한, 당해 년도 것은 줄기가 푸른 기운이 많아 쉬 분별할 수 있으며 해가 지난 것은 누런 빛을 띠어 구분이 된다. 묵은 대로 대금, 소금, 단소, 피리를 만들고 평상에 깔개로 쓰고 대자리를 엮어 여름 시원함을 즐겼다.


대나무는 좀체 꽃을 피우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나무 꽃이 피지 않는다고까지 말한다. 꽃 피는 걸 보지 못했으므로 속단을 내리는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일생을 살면서 대꽃 한 번 보지 못하는 수도 있다. 피어 봐야 화려하지도 않다. 그냥 푸석푸석한 몽우리가 그 높은 곳에 몇 개 달라 붙어있을 따름이다.

대 줄기와 댓잎, 대꽃이 함께 말라 죽기 때문에 여간 힘들여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서는 시든 꽃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은 대꽃이 50~60년 만에 한 번 피는 걸로 정했다.

한 대(代)를 잇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보기에 과장된 이런 몸짓은 살모사(殺母蛇)와 두꺼비를 닮았다. 자신의 온몸을 내놓고 마는 그 희생 정신에 나는 치가 떨린다. 벼과식물이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나면 어김없이 생을 마감하는 것을 닮아 ‘대꽃’은 생육환경이 급격히 나빠지면 시들시들 말라 비틀어지면서 꽃을 피우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친다. 이 때 대밭은 키 큰 억새밭 같이 볼품 없어진다. 대가 말라 비틀어 죽는 걸 보고 선조들은 그 해 농사짓기 힘든 징조라고 미리 짐작하고 더 정성을 기울여 농사를 지었다.

a 뭔가에 그을린 듯한 오죽

뭔가에 그을린 듯한 오죽 ⓒ 강릉시


대나무 종류도 왕대, 섬대, 맹종죽(孟宗竹), 오죽(烏竹), 시누대, 산죽(山竹)으로 다양하다. 맹종죽은 중국에서 들어와 최근 심기 시작한 크기가 어른 팔뚝 만한 가장 큰 것이며, 왕대는 화순, 담양, 곡성에서 시작하여 구례, 광양을 거쳐 섬진강을 넘고 하동, 진주를 달려 거제도에 이르기 까지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대나무다.

강릉 오죽헌(烏竹軒)과 남원 광한루에 가면 까맣고 가느다란 대를 만날 수 있는데 이것이 오죽이다. 오죽 까마귀처럼 검었으면 오죽이라고 했을까. 대체로 대나무는 차령산맥 이남지역이라야 자랄 수 있다.

a 시누대

시누대 ⓒ 김규환


대라고 하기에는 좀 머쓱한 시누대와 산죽도 있다. 둘 다 집 근처 보다는 산에 있다. 야산에 있는 것이 시누대라면 조릿대는 깊은 산중에 있다. 시누대는 산죽보다 훨씬 두껍고 키도 서너 배나 크다. 잘 자라는 곳에 가면 키가 사람 두 배를 넘는다. 산죽은 복조리를 만든다 해서 ‘조릿대’라고 많이 부른다. 쓰임새만 놓고 봤을 때 시누대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므로 산죽을 더 아낄 수밖에 없다.

a 눈밭 조릿대-산죽

눈밭 조릿대-산죽 ⓒ 김규환


어렸을 적 그 침침한 대나무밭은 내 놀이터였다. 숨바꼭질 하면 무서움도 잊고 몰래 숨어 들어 가 잘도 피해다녔던 곳이요, 소대장 ‘나시찬’ 아저씨가 용맹하게 적들을 물리치는 ‘전우’ 놀이를 즐길 때도 거리낌 없이 들어갔던 곳이다. 대밭 가에는 해마다 분홍 ‘메꽃’이 넝쿨져 있어 그 긴 뿌리를 내놓으면 캐서 불에 구워 먹곤 했다.

깊은 밤 대밭은 가축들의 포식자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살쾡이, 족제비, 고양이가 눈에 빨간불을 켜고 진을 치고 있다가 자시(子時)를 넘겨 활동하기 시작하여 인시(寅時)까지 사냥을 마친다. “꼬끼오~” 새벽 첫 닭이 울면 슬슬 자취를 감추던 곳이 대밭이다.

겨울 대밭 소리는 을씨년스럽다. 조금 난 문구멍으로 들려오는 그 소리는 승냥이 울음을 닮았다. 씽씽 찬 바람이 불면 잎끼리 부딪혀 소스라치게 놀라는 소리가 바람타고 들려오다 이내 잎과 가지도 건드리지 않고 줄기 사이를 무사 통과해 “쒸-익~” “쎄~”라고 가냘프게 울었다 그쳤다를 되풀이 한다. 이불이 있어서 다행이지 잠 못 이룰 뻔한 기억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a 눈을 이기지 못하고 휜 대나무

눈을 이기지 못하고 휜 대나무 ⓒ 김규환


선생님은 낭창낭창한 대뿌리를 하나 캐서 보기 좋게 다듬어서 불에 살짝 구워 멋을 내고는 휘둘러 가며 자랑 삼아 들고 다니다가 우리들 매 타작하는데 요긴하게 썼다. 뿔자보다 더 마디마디 파고드는 그 아픔을 아는 자 누구도 그 매가 아름답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맹종죽 설화는 심금을 울리고도 남는다. “옛날 중국에 ‘맹종(孟宗)’이라는 사람이 병든 노모를 모시고 살았는데 한 겨울에 죽순을 먹고 싶다고 하신다. 이에 맹종은 맹목적이라 할 지경으로 대밭에 가서 치성을 드리고 대뿌리에 오줌을 누었단다. 이 사람의 효성에 감복한 하늘이 어느날 오줌 눈 자리에 죽순을 내렸다”는 이야기다.

a 창평향교에 어둠이 깔릴 때 댓잎

창평향교에 어둠이 깔릴 때 댓잎 ⓒ 김규환


5월 남도에는 죽순이 넘친다. 대중화된 일본과 중국에 비해 우리나라 죽순요리는 일천하기 그지 없다. 죽순 꺾는 것을 달가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순요리로는 죽순회와 죽순 매운탕을 들 수 있다. 철 지나서도 맛 볼 생각이면 죽순 통조림을 사먹으면 된다. 죽순은 신선도가 중요하여 바로 그날 삶아서 독기를 빼기 위해 몇 시간을 물에 담가 놓고 껍질을 벗겨 물에 깨끗이 씻는다. 벗기면서 손에 만져지는 그 야들야들한 보드라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담양 소쇄원이든, 금성산성이든, 창평향교든, 미암일기든 대밭 구경 한 번 떠나볼까? 담양죽물박물관도 구경하고 오던 길에 광주에 들러 ‘죽초액 포크’ 맛도 한 번 보려면 1박 2일은 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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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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