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김규환
그런데도 유독 두 아이는 여름이 되어도 그 때를 벗지 못하고 산다. A라는 남자 친구와 B라는 여자친구다. A나 B나 공부는 잘했다. 둘 다 가난하기론 나보다 더했던 그들은 얼굴도 마치 흑인소년소녀 가장처럼 ‘부르터스’ 였다. 그 때 생각난 것이 ‘저러다 두 친구 정말 영원히 얼굴 피부가 바뀌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할 정도였으니 그 심각함은 대단했다.
여기에 방학이면 겨우내 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산에 가서 ‘물거리’(생나무로 물기가 전혀 빠지지 않은 대단히 무거운 잎 하나 붙지 않은 활엽수 가지를 모은 나무)를 하느라 ‘청미래덩굴’, ‘찬바람가시’, 찔레와 실랑이를 해야 하는 아이들은 더 고역이었다. 그렇다고 어른들께 “나, 일 못해라우~” 했다가는 그 날 밥 먹기는 글렀거나 집안에서 쫓겨나기 쉬운지라 두 말 않고 노동에 동참해야 했다.
일을 마치고는 갈라진 손을 제아무리 아침저녁으로 쇠죽 쑤던 솥단지에 양재기 대야를 넣어 물을 덮여 ‘따순물’에 지푸라기를 오무려 손을 씻고 ‘콜드크림’을 발라줘도 소용없었다.
발도 학대받는 건 마찬가지다. 미끈미끈한 나일론 양말에 다 헤진 운동화나 고무신을 닳고, 닳을 때까지 신고 다녀 발가락이 다 드러남에 따라 양말이 온전할 리 없다. 딱딱하게 굳은 살이 나무 등걸에 찢겨 헝겊을 대고 신발을 꿰매는 경우가 허다했다. 두껍기는 하지만 보온이라곤 아무짝에 도움 안 되는 나일론 양말은 사람 몸과 따로 놀기 때문에 몇 걸음 옮기면 벗겨지고 만다. 산에 가서 밑창이 떨어지거나 나무‘끌텅’에 찢기는 날이면 갖고 갔던 새끼줄이나 칡넝쿨을 떠서 칭칭 감고 그 먼 산길을 내려와야 했으니 오죽했겠는가?
머리를 보면 더 가관이다.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져 까치집인지 쥐새끼 집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머리 감은 지는 한 달이 다 된 듯 하다. 비듬 하얗게 끼어 있으면 양반 축에 든다. 푹 눌러 쓴 빵모자 덕에 감지 않은 기름기와 어울려 철석 달라붙어 있다. 비듬은 의례 있는 걸로 치고 우리 동무들의 머리에 기생하는 친구들 덕에 골칫거리다.
머리를 살짝 들추면 서까래가 하얗게 알을 까놓고 본격 부화를 꿈꾼다. 대로 만든 올 고운 ‘참빗’으로 제 아무리 빗고 빗어봐도 서까래 씨를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며칠만 방치했다가는 온몸에 ‘이’라는 흡혈귀가 드글드글 끓어댄다.
이 때는 집안에서 체면이고 뭐고 없이 잿빛 내복을 벗고 호롱불 앞으로 다가가서는 이 잡기에 몰두해야 한다. 이놈 이는 그늘과 밤에는 얼마나 날쌘지 주위에 있던 이불을 멀찌감치 밀쳐 놔야 한다. 언제 그리 옮겨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은 보리쌀만큼 큰 것이 있는데 이놈 한마리 잡아 손톱으로 “쿡” 눌러주면 “툭-!’하고 터져 빨아먹었던 까만 피를 흘리고 뒈져 버린다.
먼저 수십마리 이를 잡고 나서 내복 바느질 땀을 따라 덕지덕지 서까래를 호롱불에 태우면 “타닥, 탁” 요란한 소리를 내며 검게 탄다. 한꺼번에 수 백 마리를 제거 할 수 있다. 이렇게 한다 손치더라도 다 없어지는 건 결코 아니다. 한두 마리 남거나 집안에, 또는 친구들 한 명에만 있어도 교실 전체로, 온 동네로 퍼지는 게 ‘이’였다.
한편, 이 잡기 위해 골마리를 까고 와 웃통을 벗어 던지면 제일 먼저 묵은 쌀에 검붉은 집게벌레 같은 좁쌀 만한 것이 후다닥 튀어 어디론지 사라진다. 툭툭 튀는 솜씨가 메뚜기는 상대도 안된다. 이 놈은‘벼룩’이라는 놈이다. 벼룩이 한 번 튀었다 하면 방 구석구석을 튀어 다니다가 어딘지 모르게 숨는 통에 초반에 튈 것을 예상하고 덤비지 않으면 놓치기 일쑤다.
이러니 맹독성 ‘이’ 약은 집안 상비품이었다. 볼그스름하고 투명한 맑은 물약으로 자그마한 병에 들어 있는 그 약을 어른들이 5일 장에 가시면 잊지 않고 사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