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제니 오버렌드의 동화 <아가야, 안녕?>

등록 2003.02.14 22:33수정 2003.02.15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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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민이가 태어난지 벌써 사흘이 지났다. '결혼을 하더라도 아기가 없으면 죽을 때까지 아빠 엄마가 되지는 못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이제야 어른이 된 게 아닐까. 나이든 분들은 웃을지 모르지만, 곰실거리는 아가의 천진스런 모습을 가만 보노라면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의 깊이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산통이 한창 진행될 때까지 가족들 중에 누구도 도착하지 않았고, 순전히 나 혼자 아내 곁에서 안타깝게 지켜보아야 했다. 아기가 태어나기 수분 전에 비로소 장모님이 도착하셨으나 그때까지 말 그대로 피 말리던 시간은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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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 부부 몸을 통해 신의 선물이 왔다. 아기가 태어나는 장면을 직접 보고 싶었는데, 간호사는 애기 아빠는 분만실에 들어오지 못한다며 막았다. 내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왜 볼 수 없느냐고 항의하고 싶었으나, 이 복스런 날을 망치기 싫어서 그냥 참기로 하였다.

고통의 순간들이 지나고 분만실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가냘프게 들려왔을 때,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혹시 다른 아기 울음을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닌가 하며 주위를 확인할 정도였다. 계속 이어지는 아기의 울음이 내 아기인 것이 분명해지자 갑자기 울컥한 감격이 밀려들어 눈물이 나올 뻔했다. 나중에 이 때의 감격을 주위 아는 분들에게 전했더니 이제 시작이라면서 그때 느꼈던 감동을 잘 간직하라는 말씀들을 하신다.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에게도 벌써 소문이 나서 녀석들은 아기를 언제 보여줄 거냐면서 날마다 나를 다그치고 있다. 아예 데모를 해대는 녀석들까지 생겼다. "창민이를 내놔라!! 창민이는 우리 것!!" 마침 오신 *동화엄마는 이런 아이들 마음을 알아 채셨는지 그림 책 가운데 이 책을 꺼내서 아이들에게 읽어 주셨다.

어른들도 으레 아기를 예뻐하지만 초등학생 아이들이 아기를 신기해하고 보고 싶어하는 것은 정말 대단했다. 어린이일수록 생명에 더 가깝기 때문일까. 그림들을 설명해 주시면서 아이들에게 열심히 책을 읽어 주시는 동화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도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이렇게 멋진 그림책을 지금껏 모르고 있었다니..."

교사이자 작가며 네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자는 아기를 병원에서 데려오는 줄로만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눠주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작품 내용을 보면 병원이 아닌 그냥 가정집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는 날을 꼬박 기다려온 가족들은 마치 귀한 손님이라도 맞이하려는 듯 준비에 부산하다. 이부자리를 펴고 아기 옷을 준비하고 혹시 필요할지도 모를 산소 호흡기까지 준비해 둔다.


단지 한 가족만이 법석대는 것은 아니다. 온 동네 사람들도 한 아이가 태어나는 것에 관심을 갖고서 혹시 도울 일이 없는지 살펴보았고, 이웃집 아저씨는 방을 따뜻하게 하도록 땔감도 갖다 주셨다. 이처럼 이 책에서는 한 아기가 가족과 이웃 사람들의 따뜻한 사랑과 기쁨 속에서 태어나는 것으로 잘 그려냈다. 어떤 아기이든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나야함을 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엄마가 산통을 겪으며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온 마을에 들려 아기가 태어나고 있음을 마을 사람들이 모두 알아야 한다고 한 것이나, 전화가 왔을 때 화자인 "내"가 큰 소리로 "엄마가 아기를 낳고 있어요!"라고 외친 것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를 잘 살펴보면 아기는 애기(愛氣) 곧 "사랑 덩어리"임을 절로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는 장면을 큰누나, 작은 누나, 나, 이모까지 모두 지켜보았고 안나 아줌마가 아기를 받을 때 아빠는 엄마를 붙잡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기의 아빠에게까지도 볼 수 없도록 하는 출산 장면을,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우면서도 사랑스럽게 그려내고 있는가에 그저 놀라울 정도다.

태반과 탯줄 자르는 것까지도 누구나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 책은 잘 설명해 내고 있다. 이제 갓 태어난 아이와 함께 가족들이 행복하게 잠이 들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불과 수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집에서 아기 낳는 게 자연스러웠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는데, 이제 출산은 당연히 병원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 때문에 생명이 태어나는 신비와 경이를 그 만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 동화는 편리에 길들여져 정작 중요한 것들은 잃어버린 우리에게, 짧은 그림 동화이지만 가정출산의 과정을 통해 진한 감동과 생명 사랑을 새삼 일깨워 준다.

덧붙이는 글 | *동화엄마 - 여수 동화읽는 어른 모임에 소속된 회원으로 저희 솔샘 어린이 도서관에 오셔서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엄마 노릇을 해주시는 분들을 부르는 호칭입니다.

덧붙이는 글 *동화엄마 - 여수 동화읽는 어른 모임에 소속된 회원으로 저희 솔샘 어린이 도서관에 오셔서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엄마 노릇을 해주시는 분들을 부르는 호칭입니다.

아가야, 안녕?

제니 오버렌드 지음, 김장성 옮김, 줄리 비바스 그림,
사계절,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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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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