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토론토, 10만명 반전 시위

캐나다 30만, 역사상 최대 인원 운집

등록 2003.02.17 08:54수정 2003.02.1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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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미국 영사관 쪽으로 행진을 시작하는 반전 평화 시위대

미국 영사관 쪽으로 행진을 시작하는 반전 평화 시위대 ⓒ 이보영


영하 21도의 강추위도 전쟁반대의 마음을 얼릴 수는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천만이 넘는 시위대가 이크전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 가운데 이날 캐나다에서는 70여개 도시에서 30만명이 참가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인파가 모였다.

캐나다의 가장 큰 도시인 토론토에 10만, 몬트리얼에 10만, 오타와 2만, 벤쿠버 2만, 에드먼튼 1만2천명 등 만명이상 모인 도시만 해도 5개에 달했다. 다른 중소도시인 퀘벡에 3천명, 할리팩스는 영하 30도의 날씨에도 1천5백명이 모였으며 전체 인구가 5천명 밖에 되지 않는사스퀘천의 미도우 호수 주변 마을에는 45명이 모여 반전 시위를 진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a 14일, 오타와 미국 대사관 앞에서 농성 중인 반전시위대, 영하 30도의 강추위에도 반전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14일, 오타와 미국 대사관 앞에서 농성 중인 반전시위대, 영하 30도의 강추위에도 반전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 Globe&Mail


토론토를 제외한 온타리오 주의 다른 중소도시인 해밀턴, 런던, 구엘프, 베리, 아작스 등에서도 각각 3백~5백여명에 이르는 시위대가 모였다. 이날 온타리오 주의 평균 기온은 영하 15도, 시속 22km의 강한 바람에 더해 체감온도는 영하 30도까지 떨어졌다.

이에 앞서 하루 전날인 14일,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에서는 2백여명의 시위대가 캐나다 국방부 앞에서 반전 시위를 벌였다. 캐나다 정부의 전쟁 지지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이 시위에는 어린 아이부터 할머니까지 영하 30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마치 노숙자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캐나다 각 신문과 방송을 통해 크게 보도되었고 캐나다인들의 반전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a 던다스 스퀘어에서 넘쳐난 시위대들이 주변 도로에서 자신들의 내용을 알리는 모습

던다스 스퀘어에서 넘쳐난 시위대들이 주변 도로에서 자신들의 내용을 알리는 모습 ⓒ 이보영


오후 12시부터 토론토 다운타운의 가장 번화가 던다스 스퀘어에 모이기 시작한 시위대는 광장이 비좁아 길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토론토의 종로 격인 '영'길에 사람들이 자리잡고 인파의 뒤편에서는 무대가 보이지 않고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가득 찼다.

a 성조기에 거짓말이라고 쓴 피켓을 든 참가자들

성조기에 거짓말이라고 쓴 피켓을 든 참가자들 ⓒ 이보영


"George Bush is a terrorist"
"No war on Iraq!"

커다란 미국 국기에 'Please don't!'를 붙이고 시위에 참가한 76세의 고든 윈치(Gordon Winch)씨는 시위대의 맨 뒤편에서 연사들의 연설을 경청하고 있었다.


"유엔 무기 사찰단에게 그들의 임무를 수행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인 공격이다. 미국은 실수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곧이어 사회자가 세계 곳곳의 시위를 보고하며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천만에 가까운 시위대가 모였다"며 우리를 포함에 천만이 될 것"이라고 말하자 시위대는 우렁참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이 보고에서 600개의 큰 도시들 마다 시위가 진행되었으며 바르셀로나에 13만명, 도쿄에 5천명, 시드니에 10만명 등이 모였다고 차례차례로 소개되었고 영국의 런던에 30만명이 모였다고 소개하자 다시 한번 시위대의 우렁찬 함성이 시작됐다.


a 'He's back' 부시를 히틀러에 비유한 한 시위 참가자의 피켓

'He's back' 부시를 히틀러에 비유한 한 시위 참가자의 피켓 ⓒ 이보영


이날 시위는 캐나다 평화단체 연합인 Canadian Peace Alliance에 의해 주도되었다. CPA는 100개가 넘는 노동조합과 학생단체, 종교단체가 참가하고 있다.

이날 무대에 오른 이파크 바그다드 태생의 노파(Nofa Khadduri, 15세) 양은 "전쟁을 피해 토론토로 이주했다"며 "1991년 나는 4살이었다. 폭탄과 미사일이 마을에 떨어지고 마치 악몽과 같았다. 갑자기 전기가 나가고 촛불만이 유일한 불빛이었다. 지붕위로 미사일이 지나가는 그 순간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다음에 우리는 대피소로 이동했으며 거기에는 전기도 음식도 없었다. 고통과 신음만이 있었고 모든 이라크인들은 상처를 입었다. 나는 보았고 느꼈다. 나는 전장에서 아버지를 잃은 이웃의 친구와 함께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우리 마을은 천국이었고 행복으로 가득했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고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시위대도 눈에 띄었다.

이어 연사로 나온 신임 신민주당(New Democrats Party, NDP) 당수 잭 레이턴(Jack Layton)은 "나는 오타와에 있는 캐나다 정부는 전 세계인의 목소리를 듣기를 희망한다"며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뒤를 이어 캐나다 노동당(Canadian Labour Congress)의 당수 켄 조지티(Ken Georgetti)와 정치인 주디 레빅(Judy Rebick) 등 주최측 인사들의 연설이 있었다.

a 반전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는 한국인 참가자들

반전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는 한국인 참가자들 ⓒ 이보영


모든 식순이 끝나고 10만명의 시위대는 미국 영사관 앞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에는 상당수의 노년층들이 눈에 띠었으며, 이들은 하나같이 대부분 베트남전과 걸프전등을 기억하며 당시에도 반전운동을 펼쳤던 세대들로 이날 집회에도 주도적으로 참가했다. 추운 날씨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나온 부모들은 유모차를 2, 3중으로 막고 행진했으며, 다른 참가자 대부분도 입을 열지 못할 정도의 혹한에 구호를 외치는 것 조차 쉽지 않았으며 지난 달에 비해 조용하게 행진이 진행되었다.

a 미국 영사관 앞의 도로 4차선을 바리케이트로 막고 있는 토론토 경찰

미국 영사관 앞의 도로 4차선을 바리케이트로 막고 있는 토론토 경찰 ⓒ 이보영


미국영사관이 위치한 유니버시티길은 경찰병력이 8차선 중의 4차선을 완전히 바리케이트로 차단하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으나 별다른 마찰없이 시위대는 약속한 메트로홀로 향했다.

행진하는 길가에는 시위대를 격려하는 많은 시민들이 인도에 나와서 박수와 환호를 보냈으며 한 커피점에서는 무료로 따뜻한 커피를 나눠주기도 했다.

a 메트로홀까지 평화 행진을 마치고 정리집회 하는 시위대

메트로홀까지 평화 행진을 마치고 정리집회 하는 시위대 ⓒ 이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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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주 퇴촌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맨발로 땅을 딛고 걷는 날이 올까를 궁금해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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