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가 머물었던 자리에 남은 '석탑'

중앙정보부 시절 의릉(懿陵)으로 옮겨진 석탑의 내력

등록 2003.02.17 09:46수정 2003.02.25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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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5월 1일, 그날 군사정권이 만들어낸 '접근금지구역'의 하나로 묶여 있었던 왕릉 한 곳이 마침내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의릉(懿陵)이 그곳이었다. 장희빈의 소생으로 조선 제20대 국왕인 경종(景宗), 그리고 계비 선의왕후(宣懿王后)가 모셔진 능침이다.

a 의릉 내에 놓여진 석탑 하나. 원래는 오층석탑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사층까지만 남아 있다. 왕릉에 석탑이라니, 그건 정말 아니다.

의릉 내에 놓여진 석탑 하나. 원래는 오층석탑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사층까지만 남아 있다. 왕릉에 석탑이라니, 그건 정말 아니다. ⓒ 이순우

이웃하는 동네와 경계선을 넘나드는 탓에 흔히 여기를 '이문동'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고 보니 이곳을 '안기부'가 있던 곳, 더 거슬러 올라가 '중앙정보부'가 있었던 자리라고 대뜸 기억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런데 이곳에는 여느 왕릉과는 다른 풍경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조선시대 왕릉의 형식구분에 대하여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가 모셔진 의릉은 왕릉의 형식으로 보면 쌍릉(雙陵)이기는 하지만 특이하게도 왕과 왕비의 봉분이 앞뒤로 배치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곳으로 효종(孝宗)과 인선왕후(仁宣王后)를 모신 영릉(寧陵)이 있으나 여기에는 왕과 왕비의 봉분이 엇비슷하게 배치된 것이 약간 다르다.

한편 조선시대 왕릉은 봉분의 배치에 따라 대략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구분한다.

먼저 왕이나 왕비의 봉분을 따로 조성한 단릉(單陵) 형식이 있는가 하면, 한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마련한 쌍릉(雙陵) 형식, 한 언덕에 왕과 왕비와 계비의 세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삼연릉(三連陵) 형식이 있고, 하나의 정자각(丁字閣) 뒤로 한 언덕의 다른 줄기에 따로 봉분(封墳)을 배치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형식이 있으며, 그리고 왕과 왕비를 하나의 봉분에 함께 모신 합장릉(合葬陵) 형식이 있다. / 이순우
우선은 왕과 왕비의 봉분이 특이하게도 앞뒤로 배치된 것부터가 그러하고, 여기가 왕릉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으리만치 큼직한 연못이 정자각(丁字閣)의 턱밑에 자리잡은 것이 그러하며, 명색이 왕릉이라는데 연못 주변을 따라 난데없이 석탑들이 놓여 있는 것이 또한 그러하다. 그것도 둘씩이나 놓여 있다.

어쩌다가 왕릉이 이렇게 별스럽게 개조된 것일까? 조선시대 왕릉은 모두 국유지이니만큼 주무부처인 문화재관리국 즉 지금의 문화재청이 직접 관리한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 하지만 의릉(사적 제240호)은 아주 특이한 사정으로 전혀 그러하질 못했다. 이른바 무소불위의 국가권력기관이었던 중앙정보부, 그리고 나중의 국가안전기획부가 그곳에 자리잡았던 탓이다.

1995년 9월에 이르러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새로운 청사를 준공하여 옮겨간 뒤에야 비로소 관리권을 회복하였으니 이곳은 정말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느 사람들의 접근이 완전히 차단된 공간이었다. 지금은 대부분 관리위임이 회수된 상태이긴 하지만 그 시절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진 것은 아닌지 아직도 여전히 미회수된 구역이 일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a 왕릉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연못이 버젓이 만들어져 있다. 이 역시 국가권력기관이 머물다간 흔적이다.

왕릉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연못이 버젓이 만들어져 있다. 이 역시 국가권력기관이 머물다간 흔적이다. ⓒ 의릉지구관리소

제법 오래된 기록을 뒤적거려보았더니 의릉지구에 대해 이른바 '국유재산 관리위임'이 이루어진 것은 무려 30년을 훨씬 넘긴 시절의 일이라고 적혀 있다. 그때가 바로 1972년 7월 13일. 이날 개최된 문화재위원회 제1분과 제6차 회의의 회의록에는 "중앙정보부장을 위임자로 하여 의릉 주위 토지 1만 6227평, 임야 11만 4898평 등 관리위임을 원안대로 가결함"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었을 테고 실제적인 점유가 이루어진 것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였다고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일은 단순히 관리위임에 따라 일반인의 출입이 차단되었다는 사실에 그치질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기간 동안 의릉구역에 대한 대대적인 개조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문제였다.


a 의릉 내에 놓여진 또 하나의 석탑. 중앙정보부 시절에 사직공원에 있던 것을 옮겨왔다.

의릉 내에 놓여진 또 하나의 석탑. 중앙정보부 시절에 사직공원에 있던 것을 옮겨왔다. ⓒ 이순우

제아무리 국가안보가 최우선이고 문화재 따위야 전혀 씨알도 먹혀들지 않던 시절의 얘기이겠거니 치부하더라도 멀쩡한 왕릉 앞을 파헤쳐 연못을 설치하고 한적하게 산책할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바꾸어 놓는 것은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일이었다. 게다가 제법 근사한 정원으로 다듬을 생각이었든지 어쩐지 뜬금 없이 석탑까지 둘씩이나 여기에 옮겨다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러한 일은 언제쯤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그 석탑들은 어디에서 옮겨온 것이었을까? 워낙 외부와 차단된 공간인지라 이 대목에 대해 정확히 확인할 방도는 없으나 알아본즉 이후락 부장 시절의 일이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중앙정보부의 이후락 부장이 재임한 것은 1970년 12월 21일부터 1973년 12월 2일까지 대략 3년간.


a <고고미술>에 수록된 '사직공원 석탑'의 모습. 그 후 의릉으로 옮겨졌으나 안타깝게도 원위치가 어디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고고미술>에 수록된 '사직공원 석탑'의 모습. 그 후 의릉으로 옮겨졌으나 안타깝게도 원위치가 어디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니까 얼추 그 시기를 짐작할 만하다. 그렇다면 의릉 안의 석탑은 언제 어디에서 옮겨온 것이란 말인가? 몇 가지 자료를 뒤적거려 보았더니 <고고미술> 1968년 9월호에 그 석탑들의 흔적이 보인다. 김희경 선생이 정리한 '서울 시내에 이건된 석탑 삼기'라는 제목의 짤막한 보고서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당시 사직공원에 놓여 있던 석탑 두 기(삼층석탑과 오층석탑)와 대한극장 앞에 놓여 있던 삼층석탑 하나에 대한 실측자료와 더불어 한 장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데, 가만히 보아하니 그건 틀림없이 의릉 내에 배치된 석탑의 모습과 일치한다. 말하자면 의릉 안에 남아 있는 석탑들은 사직공원에 놓여 있던 것을 옮겨온 게 분명하다. 비록 구체적인 시기를 확인할 방도가 없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 시절의 형편에 비추어 보아 제대로 절차를 갖추어 석탑을 옮겨온 것 같지는 않는데, 그렇더라도 적어도 1968년 9월까지는 사직공원에 있었던 것은 틀림이 없다. 그리고 이후락 부장의 재임시기와는 그다지 큰 편차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후락 부장 시절에 석탑을 옮겨온 것"이라고 하는 풍설이 완전히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으로서는 사직공원 내에 그러한 석탑들이 있었던 때를 제대로 기억하는 이들이 거의 없을 테고 또한 그 석탑들이 중앙정보부 시절에 의릉으로 다시 옮겨졌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할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지만, 이보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하나 더 있다. 그 동안 이 석탑의 존재가 거의 세상에 드러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만큼 이것의 원위치가 어디였는지를 거론하거나 조사할 만한 기회는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의 은밀한 곳에 숨어 있는 것에 대해 누가 그 존재를 알기나 했을 것이며, 더욱이 설령 그 내막의 한 토막을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누가 감히 권력기관의 심기를 건드려가면서까지 제대로 입을 뗄 수 있었을 것인가 말이다. 그러니까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석탑들의 정체를 알아내는 일은 한층 더 어려워진 셈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라고는 김희경 선생의 조사에서 "모두 전라도 지방에서 반입하였다고 하나 확실하지 못하다"라고 적어 놓은 것이 고작이다. 그렇게 한번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가 제자리로 돌아가기도 어려운 것이거니와 설령 돌아갈 기회를 얻었다 할지라도 정작 제가 돌아가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것은 정말 이처럼 흔한 일이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이다.

일이야 어찌 됐건 왕릉 내에 석탑이 더 이상 머물러야 할 명분은 이제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머지 않아 의릉지구에 대한 복원계획이 진행될 모양이다. 어색한 몰골의 연못이야 아닌 말로 되메우면 될 일인데, 한 번 잘못 옮겨진 석탑들은 또 어디로 가야하는 것인지? 그것도 제자리가 어딘지도 정말 모르는 석탑들이 말이다.

a 의릉(사적 제240호) 전경. 정자각의 턱밑에 파놓은 연못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의릉(사적 제240호) 전경. 정자각의 턱밑에 파놓은 연못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 문화재청


덧붙이는 글 | 이렇듯 원위치를 벗어난 문화재이면서도 정작 그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문화재들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수두룩하다. 혹시라도 본 기사의 석탑들이 원래 어디에 있었던 것이라든지, 언제 사직공원으로 옮겨진 것이랄지, 거기에서 다시 중앙정보부 관할구역인 의릉으로 넘겨진 때의 경위랄까 이러한 것들에 대해 기억의 한 토막이라고 갖고 있는 이들의 제보가 있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이렇듯 원위치를 벗어난 문화재이면서도 정작 그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문화재들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수두룩하다. 혹시라도 본 기사의 석탑들이 원래 어디에 있었던 것이라든지, 언제 사직공원으로 옮겨진 것이랄지, 거기에서 다시 중앙정보부 관할구역인 의릉으로 넘겨진 때의 경위랄까 이러한 것들에 대해 기억의 한 토막이라고 갖고 있는 이들의 제보가 있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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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전부터 문화유산답사와 문화재관련 자료의 발굴에 심취하여 왔던 바 이제는 이를 단순히 취미생활로만 삼아 머물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습니다. 알리고 싶은 얘기, 알려야 할 자료들이 자꾸자꾸 생겨납니다.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버린 얘기이고 그것들을 기억하는 이들도 이 세상에 거의 남아 있지는 않지만, 이에 관한 얘기들을 찾아내고 다듬고 엮어 독자들을 만나뵙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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