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생체실험
"아, 아얏! 아파, 아프단 말이야! 좀, 잘해 봐!"
"아, 알았어. 미, 미안해! 조, 조심할게!"
"허허! 녀석, 그러게 내가 뭐라 하였더냐? 정신통일이 중요하다고 했지? 지금 네 녀석은 수전증(手顫症)에 걸린 늙은이보다도 더 떨고 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기에… 흐음! 그러고 보니 너희들 혹시 나 몰래 사귀는 것은 아니겠지? 혹시…?"
"어멋, 할아버지!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욧?"
"험험! 아, 아니다."
호옥접의 다소 앙칼진 음성에 남의는 멋쩍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슬쩍 물러나 앉았다.
장일정은 그동안 남의 호문경으로부터 침술을 전수 받았다.
처음엔 인체에 있는 혈도의 위치와 명칭을 외우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연후에 십이중루(十二重樓)와 기경팔맥(奇經八脈), 그리고 임독양맥(任督兩脈)과 생사현관(生死玄關)에 대한 것도 알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그런 대로 쉬웠다.
전에 북의로부터 웬만큼은 배운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웬만한 의서(醫書)에서는 찾아 볼 수도 없는 세맥(細脈)과 잠맥(潛脈), 그리고 은잠혈(隱潛穴)과 유동혈(流動穴)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에는 머리에서 쥐가 나는 줄 알았다.
세맥은 너무 가늘었고, 잠맥은 어디에 숨었는지 찾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은잠혈과 유동혈은 앞의 둘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은잠혈은 글자 그대로 숨겨져 있는 혈도이며, 유동혈은 시각에 따라, 체질에 따라 움직이는 혈도라 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별다른 이유 없이 사람이 죽었을 때 흔히들 급살(急煞)을 맞았다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편작이 남긴 팔십일난경(八十一難經)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에 대한 단초가 있다.
분명 무언가 원인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남의는 그것을 읽던 중 의문이 솟았다. 이유 없는 결과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따라서 급살이라는 것도 분명한 원인이 있다 생각한 것이다.
다만 전설의 신의인 편작조차 그것을 발견하지 못 하였을 뿐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여 인체를 연구하던 중 알려지지 않은 여러 혈도들을 찾아내는 개가(凱歌)를 올릴 수 있었다. 이것에 각각의 특성에 따라 은잠혈과 유동혈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은잠혈은 보통의 혈도들이 피부 아래에 있는 것에 반하여 인체 깊숙한 곳에 위치한 혈도이다. 그리고 유동혈은 시시각각 움직이는 혈도이다. 따라서 급살이란 이러한 은잠혈이나 유동혈이 불시에 가격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결과라는 것이다.
아무튼 인체의 모든 혈도에 대한 공부는 나무를 깎아 만든 것으로 익혔다. 그 다음엔 아홉 가지 침에 대한 공부를 하였다.
대침(大鍼), 장침(長鍼), 호침(毫鍼), 원리침(員利鍼), 피침( 鍼), 봉침(鋒鍼), 시침( 鍼), 원침(圓鍼), 참침( 鍼)이 그것이었다.
이것들은 증상에 따라 침을 놓을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르게 쓰인다 하였다. 이것을 익히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그러고 나서야 실제로 침을 잡아 볼 수 있었다.
다음에 익힌 것은 침을 놓는 자침법(刺鍼法)이었는데도 여러 가지가 있었으며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침을 놓을 때에는 침관(鍼管)을 사용하는 관침법(管鍼法)과 침관 없이 놓는 염침법(捻鍼法)이 있는데, 관침법은 다시 양수삽관법과 편수삽관법으로 나뉘어진다 하였다.
그리고 침의 굵기에 따라 회전시키면서 침을 밀어 넣는 염침자입법(捻鍼刺入法)과 그냥 조금씩 밀어 넣는 송입자입법(送 刺入法)이 있다 하였다. 이외에도 침을 놓는 방법은 일곱 가지나 더 있었다.
일정 깊이로 침이 박혀들면 곧바로 뽑아내는 단자법(單刺法), 침을 찌르거나 뺄 때에 침을 회전시키는 회전법(回轉法), 침을 목적한 깊이까지 밀어 넣은 뒤 새가 모이를 쪼듯 콕콕 찌르는 작탁법(雀啄法), 그리고 침을 박은 뒤 일정한 시간 동안 놔두는 치침법(置鍼法)이 그것이었다.
이외에도 침을 놓을 때 중도에서 잠시 멈췄다가 다시 밀어 넣는 간헐법(間歇法), 침을 목적한 깊이까지 밀어 넣은 뒤 침두(針頭)를 손으로 퉁기는 진전법(振顫法), 그리고 침을 박지 않고 침 끝으로 피부만 자극하는 접촉법(接觸法)이 있었다.
여기에 침을 놓는 세 가지 방법이 더 있는데, 곧바로 박아 넣는 직자법(直刺法)과 비스듬하게 박아 넣는 사자법(斜刺法), 그리고 피부 아래에 살짝 박는 피하자법(皮下刺法)이 그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침을 놓는 위치에 따라 깊이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배웠다. 이것을 익히는 동안 장일정은 머리에서 쥐가 나도 여러 번 나서 중도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사부인 북의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중도에서 포기하였다는 것을 알면 무척이나 실망할 것만 같아서였다. 아무튼 이러한 과정을 모두 거친 장일정은 오늘 처음으로 진짜 인체에 침을 놓게 되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사람이라곤 딱 셋밖에 없다. 남의 호문경과 그의 손녀 호옥접, 그리고 장일정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침을 놓는 대상은 자연스럽게 호옥접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장일정이야 직접 시침(施鍼)을 하여야 하기 때문이고, 남의는 제대로 박는지 여부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호옥접은 몹시 불안하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여 소매를 걷고 자리에 누웠다. 팔에 있는 혈도에 침을 놓는 연습을 하려는 것이다.
잠시 후 장일정은 심각한 표정으로 침을 일일이 화로의 불에 넣었다 뺐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간혹 덧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연후 잔뜩 긴장한 얼굴로 침상으로 다가섰다.
거기엔 백설처럼 희면서도 포동포동한 호옥접의 팔뚝이 있었다. 살결이 워낙 희었기에 청백지신(淸白之身)임을 증명하는 수궁사(守宮絲)가 유난히도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장일정은 왠지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증상은 며칠 전 우연히 폭포 아래에서 노래를 부르며 수욕(水浴)하는 호옥접을 본 이후에 시작된 증상이었다.
며칠 전이었다. 장일정은 너무도 복잡한 시침 방법에 머리가 쥐가 날 것 같았다. 외우고 또 외웠건만 자꾸 뒤엉켜 이게 저것 같고, 저것이 이것 같았던 것이다. 하여 머리를 식힐 겸 오랜만에 수욕이나 할까하여 산길로 접어들었다.
남의가 머무는 거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자그마한 폭포와 사람이 들어가 수욕을 즐길만한 소(沼)가 있었다. 스스로 월하빙녀(月下氷女)라는 외호를 지은 호옥접은 그곳을 월하천지(月下天池)라 명명한 바 있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허락이 없으면 아무도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날 호옥접은 약초를 캐러 간다 하였다. 그렇기에 허락을 구할 수 없던 장일정은 그냥 월하천지로 향했다. 그러던 중 어디에선가 들리는 아름다운 선율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산새들 지저귀는 소리와 폭포수 소리를 제외하면 늘 적막만이 감돌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소리의 근원은 월하천지 쪽이었다. 하여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조심스럽게 접근하였다. 혹여 외지인이 왔나 싶었던 것이다.
평상시 호옥접은 전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의 음성인 줄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접근한 것은 남의가 자신의 처소가 알려지는 것을 지극히 꺼리기 때문이었다. 하여 약초를 캐러 갔다가도 다른 사람의 인기척이 있으면 즉각 수풀 속에 은신하곤 하였었다.
아무튼 조심조심 수풀을 헤치고 전진한 장일정은 폭포수 아래가 훤히 보이는 곳에 당도한 후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 천상에서 하강한 천상옥녀(天上玉女)나 월궁항아(月宮姮娥) 같은 여인이 발가벗은 채 수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미인을 결정할 때 흔히 삼백(三白), 삼흑(三黑), 삼협(三峽), 삼홍(三紅)을 따진다.
삼백은 여인의 신체 가운데 세 군데가 희어야 한다는 것이다. 삼흑은 세 군데가 검은 것을 의미하고, 삼홍은 세 군데가 붉은 것, 마지막으로 삼협은 세 군데가 좁거나 작은 것을 뜻했다.
백설처럼 흰 피부와 길고 갸름하면서도 하얀 섬섬옥수(纖纖玉手), 그리고 흰 치아가 바로 삼백에 해당되었다.
그리고 별빛처럼 영롱한 눈빛을 빛내는 눈동자와 비단결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삼단 같은 머리카락, 그리고 진한 눈썹은 삼흑에 해당되었다.
잘 다듬어진 아름다운 손톱과 앵두 같은 입술, 그리고 밝으레한 두 뺨은 삼홍에 해당되었다.
마지막으로 개미허리처럼 잘록한 세류요(細柳腰), 날씬한 종아리로부터 이어진 발뒤꿈치, 그리고 입이 작다는 것이 삼협을 의미하였다.
역사적으로나 문헌상으로도 이런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킨 여인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절세미녀들은 이런 것들을 충족시켰다고 한다.
흔히들 아름다운 여인을 지칭할 때 침어낙안(沈魚落雁)이니 폐월수화(閉月睡花)니 하는 말을 쓴다. 물론 경국지색도 있고, 말하는 꽃이라는 의미를 지닌 해어화(解語花)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말이 만들어진 데에는 그만한 연유가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알리는 말씀]
풍자무협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도 풍자는 없다는 어떤 독자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여 앞으로 연재될 부분 중 일부를 미리 발췌하여 보았습니다.
풍자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뒷부분이 이러하니 지금은 재미없더라도 꾹 참고 읽어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이것을 보시려면 메인화면 좌측 아래쪽에 있는 "<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항목을 클릭하십시오.
문화면 연재란에 있는 것을 누르셔도 됩니다.
연재글 목록이 주르륵 나오면 제 연재실에 도착하신 것입니다.
거기서 오른 쪽을 보시면 게시판이 있습니다.
거기서 맨 위 항목을 클릭하십시오.
앞으로 연재 될 내용 가운데 일부를 미리 보실 수 있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제 글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과 문파명 등은 실제로 존재하였거나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나 단체, 국가 등과 전혀 무관합니다.
참, 앞에서부터 천천히 읽고 계시는 중이시지요?
이제부터 등장인물들이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앞 부분을 안 보시면 뭐가 뭔지 알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천천히 앞 부분부터 읽어 주십시오.
제갈천 배상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