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15

등록 2003.02.18 17:46수정 2003.02.18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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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하시옵소서 폐하. 지금 당장 소란스럽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일 아침 오이와 주몽이 궁궐에 들면 그때 잡아서 죄를 물으면 일은 간단할 것입니다."

"그건 그렇군."


"그리고 오이와 관련된 인물들이 함부로 날뛰지 못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바깥에서는 유화부인이 금와왕과 저여가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금와왕과 함께 있었던 유화부인이 잠시 나가있는 동안 저여가 왔고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유화부인은 안으로 들어서지 않고 시종들도 모르게 숨어서 대화를 엿들었던 것이다. 유화부인은 주몽의 안위가 걱정되어 적절히 채비를 갖출 틈도 없이 혼자서 궐 밖의 주몽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주몽은 집에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필시 오이의 집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유화부인의 발걸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그 시간, 주몽의 품에 안겨 누워 있는 예주는 천천히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어디 가는 것이오?"

"이미 밤이 늦었습니다. 전 떠날 차비도 안 되어 있는데다가 아침에는 부모님의 얼굴을 뵈어야지요. 이대로 있다가 밤을 새우면 정말로 집에 묶여 있을 지도 모릅니다."


예주는 아쉽다는 눈초리로 주몽을 보았다. 주몽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 내가 나중에 데리러 나가리다."

문을 열고 나가는 예주의 뒷모습을 보며 주몽은 왠지 가슴 한구석이 덜컥 내려앉았다. 예주도 어쩐지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것은 첫날밤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서운함이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묻어버리고 있었다.

예주를 보낸 주몽은 몸을 뒤척이다가 살풋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주몽은 자신을 잉태한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길을 떠나는 어머니 유화부인의 모습을 보았다. 유화부인은 끝없이 '미안하구나 얘야'를 되뇌며 정처 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꿈속의 목소리가 현실적이라고 느껴진 순간 주몽은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났다. 옆에는 유화부인과 오이가 앉아있었다.

"아니, 어머니가 여기 웬일이십니까!"

"무슨 일로 여기 있는지는 오이공에게 다 들었단다. 하지만 지금은 그 보다 빨리 여기를 떠나야 한다."

"무슨 얘깁니까?"

유화부인은 금와왕과 저여가 나누었던 밀담을 모두 주몽과 오이에게 전해주었다. 오이는 너무 놀란 나머지 옅은 달빛 아래서도 창백해진 모습이 보일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빨리 예주낭자에게도 알려야 합니다. 같이 떠나기로 약조했으니까요."

주몽이 급하게 일어서며 나가려 하자 유화부인이 말렸다.

"곧 있으면 동이 틀텐데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어머니부터 오이공과 함께 떠나십시오. 곧 뒤를 따르겠습니다."

유화부인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난 이곳을 떠나지 않는단다. 왕께서 날 의지하고 있고 내가 이곳에 있는 한 널 끝까지 추적하진 않을 것이다."

"어머니......"

주몽은 비통한 심정으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유화부인의 모습을 보다가 절을 올렸다.

"저희는 주몽공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먼저 떠나라는 주몽의 말에도 불구하고 오이는 기다리겠다고 버텼다. 주몽은 감사함을 표하고 서둘러 말을 타고선 예주의 집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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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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