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마음속엔 이데올로기가 없다

작가 윤정모 첫 장편동화 <전쟁과 소년> 펴내

등록 2003.02.19 16:14수정 2003.02.19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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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윤정모 장편동화 <전쟁과 소년>

윤정모 장편동화 <전쟁과 소년> ⓒ 푸른나무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겪은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것은 결코 게임이 아니며 그 장면들 또한 절대로 가상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때 우리 민족도 280만이나 생명을 잃었고 전 국토는 폐허가 되었으며 특히 우리의 고유한 사찰이나 문화유산이 거의 파괴되었다는 것, 그 파괴자 역시 지형에 어두운 미군의 폭격기였다는 것을"

지난 해 8월, 한국전쟁에서부터 IMF까지 격동기를 살아낸 삼촌의 이야기를 그린 장편소설 <꾸야삼촌>을 펴낸 작가 윤정모가 이번에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언뜻 떠올리게 하는 첫 장편동화 <전쟁과 소년>을 푸른나무에서 펴냈다.


이번 동화는 특히 한국전쟁 휴전협정 50년이 되는 해이자, 대북 송금문제로 인한 남북 간의 미묘한 갈등, 북핵 문제로 인한 북미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시기에 펴낸 책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쟁과 소년>을 통과하는 물줄기는 남한 소년과 북한 소녀의 따스한 사랑이다. 하지만 동화 속에 나오는 남한 소년과 북한 소녀에게는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이데올로기가 없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서로를 어른들처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만 이내 그 색안경은 동심 속에서 저절로 벗겨져 버린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전쟁이란 어른들의 위험한 불장난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그 어른들의 불장난으로 인해 아이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수많은 상처를 입는다.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다름 아닌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러한 상처 속에서도 서로의 마음을 여는 데 꺼리낌이 없다.

삶과 죽음이 순식간에 엇갈리는 전쟁터. 하지만 그 전쟁터에서도 남한 소년과 북한 소녀의 마음은 지극히 평화롭고 순수하기만 하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피난을 가지 못하고 마을에 남은 남한 소년의 운명이나 고아가 된 북한 소녀의 운명이 어찌 보면 하나도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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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나무

만약 그 아이들에게 다른 게 있다면 잠시 바뀐 환경의 차이일 뿐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남한 소년은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고향에 그대로 있다는 것이고, 북한 소녀는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고 낯선 군인들을 따라다니다가 남한 소년의 마을에 정착한 것뿐이다. 다시 말해 전쟁의 상처를 입기는 서로가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필동이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도 모두들 서둘러 피난을 떠난다. 하지만 필동이네는 피난을 갈 수가 없다. 하필 그때 엄마가 동생을 낳으려고 막 진통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동무들과 함께 피난길을 떠나고 싶었던 필동이, 필동이는 군대에 끌려간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마침내 폭격이 시작되고 필동이가 사는 마을로 낯선 군인들이 들어온다. 그로 인해 집안에서 꼼짝할 수 없게 된 필동이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마을이 다시 조용해지자 할머니는 필동이에게 밖에 나가지 말 것을 신신당부한다. 하지만 필동이는 마을의 동정을 살피러 나간다.


여기 저기 기웃거리던 필동이는 친구 호야네 빈 집에 홀로 있는 삽살이를 발견하게 된다. 필동이는 가엾은 삽살이에게 먹을 것을 주기 위해 탑골 절로 향한다. 탑골 절에서 필동이는 낯선 군인들과 스님이 나누는 이야기를 엿듣는다. 절을 비워 달라는 대장과 그럴 수 없다는 스님의 얘기를.

얼마 후 탑골 절의 스님이 여자 아이 한 명을 데리고 필동이의 집으로 찾아온다. 그런데 그 여자 아이는 낯선 군인들이 탑골 절에서 철수하는 조건으로 스님에게 맡긴 아이다. 그 사실을 들은 필동이는 갑자기 어른들처럼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렇다면 나쁜 군인의 딸인데..."

그때부터 필동이는 자신의 집에 맡겨진 그 여자 아이가 괜히 미워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필동이와 그 여자 아이의 사이가 점점 가까워지게 되고, 두 아이는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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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나무

<전쟁과 소년>은 <꾸야 삼촌>에서 1950년대 다섯 살이었던 여자 주인공 '나' 와 맥이 닿아 있다. 이 책에서 나오는 필동이와 여자 아이는 어찌 보면 전쟁 당시의 꾸야 삼촌과 주인공 '나'의 또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전쟁 당시 울기만 하는 나를 업어 키웠던 꾸야삼촌의 주변에는 또 다른 꾸야삼촌과 '나'가 수없이 있었으므로.

최근 신임 문예진흥원장으로 취임한 <순이 삼촌>의 작가 현기영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를 오래 지켜보았습니다. 왜곡되고 어두운 사회 현실의 모순에 항거하던 그를. 그리고 이제 새로운 '윤정모'를 만났습니다. 화해와 희망을 전하는 강한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덧붙이는 글 | 이 책에 그림을 그린 김종도씨는 1959년 정읍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너 먼저 울지 마> <내 이름은 나답게> <엄마 마중> <까치와 소담이의 수수께끼놀이> <빈 집에 온 손님> 등에 그림을 그렸다.

덧붙이는 글 이 책에 그림을 그린 김종도씨는 1959년 정읍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너 먼저 울지 마> <내 이름은 나답게> <엄마 마중> <까치와 소담이의 수수께끼놀이> <빈 집에 온 손님> 등에 그림을 그렸다.

전쟁과 소년

윤정모 지음, 김종도 그림,
푸른나무,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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