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월급 달랬더니 가압류 '보복'

임금체불 하고도 노조원에 손배 청구하는 사업주들

등록 2003.02.21 04:41수정 2010.06.30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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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는 것이 죄입니다. 기물을 때려부순 것도 아니고 사장이 갑자기 학원 폐업한다니까 오히려 폐업 철회하라고 농성했는데 손해배상이 무슨 말입니까."

 

광주시 남구 송하동에 위치한 한국자동차운전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 허주현(62)씨. 작년에 환갑을 맞은 그는 지금 3년째 부동산 가압류에 하루하루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있다.

 

a 소송과 관련한 자료가 쌓여있다. 왼쪽이 허주현씨.

소송과 관련한 자료가 쌓여있다. 왼쪽이 허주현씨. ⓒ 이국언

허씨의 집(남구 주월동 393-18)은 현재 광주지방법원으로부터 4600여 만원의 채권가압류가 된 상태. 채권자는 구 한국자동차학원의 사업주인 김모(51)씨로 김씨는 지난 2001년 2월 허씨 등 당시 조합원 5명의 파업으로 인한 영업손실과 정신적 위자료 명목으로 2억6백여 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

 

허씨는 이 부동산 가압류 외에도 전 사업주가 허씨 등 조합원 18명을 상대로 제기한 업무방해 건으로 이미 광주지방법원으로부터 500만원의 벌금처분을 받은 상태다. 이 업무방해 건으로 당시 노조위원장인 김용화(42)씨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허씨를 포함한 조합원 3명은 각각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은 것이다.

 

허씨 등은 최근 고등법원에서 항소 기각 판결을 받고 마지막으로 대법원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보고 있는 상태다.운전학원 강사들은 지난 2000년 노조를 결성, 산재 등 4대 보험 적용과 3년째 동결된 임금인상 등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사업주는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 바로 다음날 폐업 공고문을 붙여 놓고 그때부터 아예 사무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학원은 현재 새 사업주가 임대해 운영하고 있다.

 

사업주, 오히려 임금 체불

 

조합원들에게 2억여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전 사업주는 확인 결과 오히려 조합원들에게 연월차 수당과 퇴직금 등 총 7천여 만원을 체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지방노동청은 지난 2000년 8월 이들이 퇴직금과 기타 각종 수당 등 7천여 만원이 체불되어 있다는 사실 확인서를 광주지방법원에 제출했지만 이 사건은 아직 1차 심리도 이뤄지고 있지 않는 상태다. 이들은 정작 자신의 체불임금을 아직까지 돌려 받고 있지 못하면서도 가압류라는 올가미에 시달리고 있는 것.

 

전 사업주는 조합원들의 부동산과 통장에 가압류한 것은 물론 학원이 폐업한 뒤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긴 사람의 임금 통장에까지 가압류를 붙인 것으로 밝혀져 비난을 사고 있다. 전 사업주는 지난 폐업 후 1년 뒤인 2001년 8월 광주지방법원을 통해 직장을 옮긴 이재윤씨의 임금통장에 1천만원의 가압류를 붙인 것.

 

이씨는 한국자동차운전학원이 폐업하자 구 광주자동차운전학원으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씨는 "그동안 너무 시달려 더 이상 거론하고 싶지 않다"며 더 이상의 인터뷰를 피했다. 업무방해 등 형사사건으로 사업주와 맞고소에 놓인 일부 조합원들은 1심에서 유죄가 확정되자 가압류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은 퇴직금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소를 취하하기도 했다. 이씨도 마찬가지였다.

 

가압류된 집 강제경매 시도

 

a 주월동에 위치한 허주현씨의 주택. 강제경매를 막기위해 3천만원의 공탁금을 걸었다.

주월동에 위치한 허주현씨의 주택. 강제경매를 막기위해 3천만원의 공탁금을 걸었다. ⓒ 이국언

허씨의 집은 현재 가압류 4600만원 외에도 4천만원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다. 전 사업주는 가압류에 그치지 않고 허씨의 집을 아예 강제 경매 처분하려 했기 때문이다. 허씨는 지난 2001년 8월 광주지방법원으로부터 강제 경매신청이 들어와 집이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부랴부랴 자신의 집을 담보로 공탁금 3천만원을 빌려 막았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두산중공업의 분신사태가 자칫하면 광주에서 벌어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민주노총광주전남지역본부 한 관계자는 "당시 나주의 한 학원 집회에서 노조위원장이 이성을 잃어 시너를 끼얹으려는 것을 겨우 막았다"며 "깡패들이라도 동원해 구덩이를 파 놓고 묻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당시 김 위원장의 심경을 전했다.김용화씨는 "없는 사람은 변호사 사기도 힘든데 있는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도 얼마든지 다 하고 있다"며 "없는 사람들은 억울하게 당하면서도 게임이 안 된다"고 했다.

 

이 일로 작년까지 법원을 자기 집보다 더 드나들었다는 김씨는 "요즘도 마음이 무거워 일 손도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체불임금 요구에 '보복성' 가압류

 

사업주에 의해 가압류로 시달리고 있는 또 다른 사업장은 광주시 각화동에 위치했던 구 광주자동차운전학원 노조.조합원 채행윤(35)씨 등 조합원 16명의 통장과 승용차에는 현재 총 7700만원의 가압류가 걸려 있다. 사업주 이모(67)씨는 그 동안 이들이 연장근무 시간을 허위로 보고해 7700여 만원이 추가로 부당하게 지급돼 왔다며 이들을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전형적인 보복성 소송'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지난해 3월 사업주가 수년간 시간외 수당 등을 지급해 오지 않자 광주지방노동청에 사실조사를 의뢰했다. 광주지방노동청이 확인한 18명의 체불임금은 총 9300여 만원이었다. 오히려 사업주는 직원들에게 1억에 가까운 임금을 체불하고 있었던 것. 사업주는 일체의 협상을 기피하더니 급기야 지난해 9월 폐업신고를 내고 말았다.

 

사업주는 이에 그치지 않고 이들 조합원들에 대해 뒤늦게 1년 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2000년 5월을 시점으로 7700여 만원에 달하는 부당이득금 반환을 주장하고 나섰다.

 

노동청 체불확인서도 무용지물

 

a 채행윤씨는 소송에 대응하느라 정상생활이 안된다고 말한다.

채행윤씨는 소송에 대응하느라 정상생활이 안된다고 말한다. ⓒ 이국언

조합원들이 보복성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업주가 이 반환소송을 비 조합원을 뺀 조합원들한테만 선별적으로 적용하고 있기 때문. 조합원들은 "손해배상 꼬투리를 잡을 수 없다보니 수당을 더 줬다는 식"이라고 말한다. 채씨는 "모르고 수당을 더 줬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그러면 그 동안 회사는 뭐 했냐"고 어이없어 하고 있다. 한 조합원은 "노동청의 체불임금 확인서까지 있는데 오히려 우리보고 더 내놓으라고 한다"며 "이런 말하면 남들이 다 웃는다"고 했다. 그는 "이런 법도 있느냐"고 오히려 반문하고 있었다.

 

한편 사업주는 이 과정에 이미 퇴직한 사람의 통장과 승용차에도 가압류를 붙인 것으로 드러나 비난을 사고 있다. 체불된 임금을 못 받고 퇴사한 김모(33)씨는 노조에서 체불된 임금을 돌려 받기 위해 사업주에 소송을 제기하는데 자신도 함께 했다. 김씨는 지난 2001년 퇴사해 개인사업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김씨는 이 일로 다른 조합원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통장과 승용차에도 7700여 만원이라는 가압류 딱지가 붙고 말았다. 밀린 임금을 받아보려다가 가압류라는 올가미에 걸린 것이다. 김씨는 "노동청의 사실확인을 믿고 한 것"이라며 노동청의 확인도 무용지물이 되고 있는 것에 분개를 표시했다. 초대 노조 지부장이기도 했던 김씨는 전 직장의 일로 '이혼'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돈 없는 사람은 못 버텨"

 

가압류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이모(31)씨는 졸지에 차가 2대가 되고 말았다. 지난해 12월 수명이 다한 승용차를 폐차시킬 생각으로 중고차를 구입했는데 가압류된 차는 폐차가 안 된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았기 때문.

 

이씨는 "차는 쓰지도 않는데 보험금과 세금은 계속 들어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보험과 세금은 의무적 사항으로 이씨는 가압류가 풀리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이 돈을 쏟아부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중고자동차 판매업을 하는 오광옥씨는 직업적 관계로 수시로 차를 매입했다 팔기도 해야 하지만 가압류로 어떻게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오씨는 "판결이 길어질수록 돈 없는 사람만 손해"라며 "돈 없는 사람은 버티고 싶어도 힘이 없어 결국 떨어지는데 그것을 이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채행윤씨는 전 사업주가 소송에 이기면 조합원들한테 다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하는 것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그는 "진실은 어떻게 가려지든 그 동안 고통이나 받아보라는 식"이라며 사업주의 태도를 나무라고 있었다.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손배 가압류를 일일이 대응하느라 드는 소송비용도 이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이들은 변호사 수임료와 인지대 등으로 이미 7백여 만원이 들어갔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법원 일로 언제 어떻게 쫓아가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채씨가 비교적 시간을 낼 수 있는 직업훈련 교육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중의 하나다. 채씨는 "나마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고 했다. 이날도 그의 손에는 노동자를 외면하는 한 뭉치의 서류가 무겁게 들려 있었다.

2003.02.21 04:41ⓒ 2010 OhmyNews
#가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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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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