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56

탈출시도 (1)

등록 2003.02.22 13:45수정 2003.02.2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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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탈출 시도

와장창창! 땡그랑!
"이 자식이…? 누가 주라고 했느냐? 네놈이 먼저 뒈지고 싶어? 엉? 말해봐! 누가 주라고 했어?"
"……!"


이회옥은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있었다. 이곳 지옥갱의 불문율을 어겼기 때문이다.

지옥갱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누구도 남에게 음식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인당 배당되는 작업량은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일 해야 간신히 채울 수 있는 분량이다. 그 목표량을 달성한 죄수에게는 하루에 한 끼 식사가 제공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죄수에게는 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작업량을 채우지 못한 죄수를 굶기는 것은 다음 날이라도 혼신을 다하여 일하라는 뜻이었다. 아니면 꼼짝없이 굶어 죽기 때문이다. 남는 음식은 작업량을 채운 죄수들에게 골고루 분배되었다. 그것을 보며 반성하라는 의미였다.

오늘 한 조가 된 비접나한과 냉혈살마는 작업량을 채우지 못했다. 어제 먹었던 음식이 상했는지 하루종일 설사를 하느라 일할 시간도 부족하였지만 그 때문에 기진맥진하여 일을 하고 싶어도 할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죄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여 오늘은 작업량을 채운 자가 다른 날에 비하여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회옥을 비롯하여 작업량을 채운 자들은 다른 날에 비하여 두 배에 달하는 음식을 받았다.

늘 굶주림에 시달리던 죄수들에게 있어 오늘과 같은 날은 가히 잔칫날이나 마찬가지인 날이었다. 식사량이 부족하여 굶주리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이회옥은 혼자서만 먹을 수 없었다. 하여 비접나한과 냉혈살마에게 음식을 나눠주다 들킨 것이다.


"왜 대답이 없어…? 배가 불러서 그랬어? 좋아, 네놈 같은 놈들을 다스리는 방법이 있지. 지금부터 상의를 벗는다 실시!"
"……!"

"본좌의 말이 들리지 않느냐? 어서 상의를 벗고 벽을 짚어라!"
"알겠소."

짧게 대답한 이회옥은 상의를 벗고 벽을 짚었다.

"네놈이 감히 본 지옥갱의 규칙을 깼으므로 우선 채찍질 삼십 대에 처한다. 각오해랏!"
쐐에에에엑! 챠아아악!
"크으으윽!"

이회옥은 등으로부터 느껴지는 지독한 통증에 이를 악물었지만 나지막한 신음을 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크크크! 아직 멀었다. 받아랏!"
쐐에에에에엑! 챠아아악!
"으으으윽!"

이번에도 엄청난 통증이 전해져왔다.

이곳 지옥갱의 옥졸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들 채찍질의 댓가라는 것이다. 그들의 채찍질은 신랄하면서도 강하고 정확했다. 그렇기에 잠시 후 이회옥의 등에서는 선혈이 튀고 있었다. 살갗이 터졌기 때문이다.

"흥! 이것으로 형벌이 끝난 것은 아니다. 네놈은 앞으로 삼 일 간 독방에서 지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

이회옥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이 순간 그의 눈에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음식들만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밖에서라면 음식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구정물에 대강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넣어 끊인 멀건 죽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기름기가 둥둥 뜰 때가 있다. 그것은 옥졸들이 심심풀이로 잡은 쥐나 뱀을 넣었을 때였다. 적당히 요리를 한 것이 아니라 통째로 넣은 것인지라 이를 본 사람은 아마도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것은 가히 생명이라 불러도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못 먹으면 냉혈살마는 어찌 견딘다 하더라도 비접나한은 내일 또 굶게 될 것이 분명하였다. 그렇기에 몹시도 아까운 기분이 들어 그것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지옥갱에 들어온 이후 가장 적응을 못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비접나한이었다. 생전 손에 굳은 살 한번 박히지 않은 그로서는 곡괭이 질이 너무도 힘이 들었다.

일하는 요령을 몰랐기 때문에 힘으로 해결하려 하였던 탓이다. 하여 첫날부터 손바닥 전체에 물집이 잡혔고 그것이 까지는 바람에 무척이나 고생했다.

다음날엔 아예 곡괭이를 잡지도 못할 상황이었다. 목표량을 채우지 못한 자에게는 음식이 분배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대로 놔뒀다가는 꼼짝없이 굶어 죽을 판이었다.

그러나 지옥갱의 어느 누구도 일하는 요령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가 굶으면 자신이 먹을 음식의 양이 조금이라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편 다른 갱도에서 일하던 이회옥은 곡괭이 질을 몇 번 해보고는 이내 요령을 깨달았다.

그는 태극목장에 있을 때 부친으로부터 일이란 힘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요령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었다. 그렇기에 신경 써서 살핀 결과 쉽게 요령을 깨우친 것이다.

그날 밤, 이회옥은 쫄쫄이 굶은 비접나한에게 일하는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힘든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그가 목표량을 달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다음 날, 이회옥은 슬금슬금 이동하여 비접나한의 곁에서 일을 하였다. 이날 비접나한은 오랜만에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물론 이회옥 덕분이었다. 이날 이후로도 같이 일하는 날은 늘 그랬다. 하지만 매일 그럴 수는 없었다. 옥졸들이 수시로 작업 장소와 조(組)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지옥갱에서는 탈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세 사람 이상이 뭉쳐 다니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잠도 한 군데서 잘 수 없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자야 하였다. 그리고 같은 사람과 계속하여 작업할 수 없도록 하고 있었다.

작업은 이인일조(二人一組)로 하게 되어 있다. 한 사람이 곡괭이 질을 하여 광석을 캐내면 나머지가 이를 운반한다.

그것은 최종적으로 갱도 밖으로 나가게 되는데 그것을 하는 사람들은 지옥갱에 가장 오래 수감되어 있는 죄수들이 하게 되어있다. 이미 지칠대로 지치고 아무런 희망도 없는 자이기에 탈주를 기도할 우려가 없다고 판단되는 자들이었다.

아무튼 이회옥과 냉혈살마, 그리고 비접나한은 차츰 지옥갱에 적응하여 갔다.

지옥갱에 수감되어 있는 거의 대부분은 악질 중에서도 악질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일이었다. 극도로 피곤한 죄수들은 타인의 일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틈만 나면 쓰러져 자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회옥은 별 신경 쓰지 않고 비접나한과 냉혈살마를 도울 수 있었다. 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산해관으로부터 키워온 막강한 근력덕분이었다. 물론 청룡갑을 벗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노련한 광부가 적어도 백 번은 곡괭이 질을 하여야 캐낼 수 있는 광석을 불과 십여 번의 곡괭이 질로 캐낼 정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옥갱의 어느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비밀이란 모르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그렇기에 가급적이면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으려고 일부러 감춘 때문이다.

삼십 번에 달하는 채찍질로 등판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이회옥을 본 비접나한과 냉혈살마의 눈에서는 미안하다는 빛이 흘러나왔다.

자신들 때문에 매를 맞은 것으로도 부족하여 악명 높은 독방으로 끌려들어 간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철커덩! 철커덩! 끼이이이이익!
"크흐흐! 보아하니 어지간히 재수도 없는 놈이군. 삼 년만에 처음으로 독방에 왔으니… 크흐흐! 들어 가!"
"……!"

등을 떠밀린 이회옥은 칠흑처럼 어두운 어둠 속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 또 다시 요란한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철문이 닫혔다. 그러자 실내는 완벽한 암흑에 잠겼다.

"휴우…! 제기랄!"

이회옥은 긴 한숨을 내쉬며 털썩 주저앉았다.

"젠장! 젠장! 하필이면 그때… 에이…! 그나저나 마냥 이러고 있을 수는 없지.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안 돼! 여기서 반드시 나가야 해. 나가서 어떤 놈이 죄를 덮어 씌웠는지 알아볼 거야."

잠시 투덜거리던 이회옥은 나직이 중얼거림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이내 벽면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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