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57

탈출시도 (2)

등록 2003.02.23 13:56수정 2003.02.2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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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갱이 생긴 이래 수십여 차례에 걸친 도주가 시도되었다. 이곳은 지면으로부터 적어도 백 장 이상 내려온 지저(地底)이다.

따라서 도주 방법은 동혈을 뚫고 나가는 방법 외에는 없다. 그렇기에 많은 죄수들이 피곤한 몸으로 밤잠 안자고 굴을 팠지만 모두 체포되어 피거형에 처해졌다.


그러는 가운데 죄수들 사이에는 누군가 옥졸과 연결되어 있는 세작(細作: 간첩)이 있다는 소문이 번졌다. 그렇지 않고야 어찌 모두 생포되었겠느냐는 것이다.

진짜 그렇다면 동혈을 파도 다른 죄수들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생포되면 피거형이라는 무시무시한 형벌에 처해진다는 것을 모르는 죄수는 단 하나도 없다. 그렇기에 현재의 지옥갱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흐음! 독방이라… 이곳이라면…!"

벽면을 더듬던 이회옥의 뇌리로 무언가 상념이 스치자 그의 손길은 점점 빨라졌다. 독방은 아무나 들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웬만한 잘못 가지고는 절대로 독방형에 처하지 않는다.


완전한 어둠은 인간으로 하여금 극도의 공포심을 유발시키기에 오래 두면 실성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죄수를 가두되 절대 사흘을 넘기지 않았다. 미치면 일을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귀찮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만으로도 늘 말썽을 피우던 자들이 완전하게 변모한다는 것을 경험상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죄수들은 독방형에 처해지지 않으려 가급적이면 말썽을 피우지 않았다.

사실 그들로서는 말썽을 피우고 싶어도 피울 시간적 여유도, 기력도 없다. 매일 매일 할당된 목표량을 채우기에도 급급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옥졸의 말대로 삼 년만에 처음 독방이 열린 것이다.

이곳에서 무제한 공급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 한 가지, 철광석을 캐내는데 사용하는 곡괭이였다. 부러지거나 닳아서 못쓰게 되는 경우 그것을 가져가면 즉각 새 것이 지급되었다.

얼마 전, 이회옥은 일부러 곡괭이를 분질렀다. 그리고는 잘려나간 부분을 보관해 둔 바 있었다. 그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까지 탈출에 실패한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한결같이 동혈을 뚫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업 때 사용하던 곡괭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물론 조금의 내공도 없는 형편이었기에 곡괭이가 없다면 동혈을 뚫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그들이 곡괭이를 사용한 이유는 급한 마음 때문이었다.

사실 죄수들 가운데에 옥졸의 끄나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에 있었다면 벌써 발각이 되었을 것이다.

죄수들이 혹여 자신들 사이에 섞여 있을지도 모르는 세작에 대하여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도 탈출에 성공하지 못한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소리였다.

제아무리 은밀히 동혈을 뚫는다 하더라도 곡괭이 소리를 감출 수는 없는 법이다. 소리를 내지 않고는 굴을 전혀 뚫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두가 잠든 야밤에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면 어디선가 굴을 뚫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옥졸들은 작업 시간이 끝나면 일제히 밖으로 향한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밤에는 잠을 자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통로는 군데 군데 적어도 이 장 이상의 틈이 벌어져 있는 곳이다. 따라서 내공이 없는 죄수들로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길인 셈이다.

아무튼 하루 이틀만에 굴을 뚫을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옥졸들로서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어디에서 굴을 뚫는지를 파악해내므로 지금껏 단 한번도 탈출에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곡괭이보다 작은 망치나 정을 사용할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진동음 자체가 작은 망치나 정 소리를 듣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굴을 뚫고 있다하더라도 쉽게 발각 당하지 않을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이회옥이 부러진 곡괭이를 보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급한 마음을 품지 않고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뚫어나가면 언젠가는 나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아무튼 독방 내부를 샅샅이 만져본 이회옥은 이곳 역시 다른 곳과 다름없는 곳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여 품에 지니고 있던 곡괭이 조각을 쥐고 힘껏 내리 찍어 보았다.

지금은 작업 시간이기에 제아무리 큰 소리를 내도 누구 하나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챙챙! 챙챙! 채채채채채채챙!……

곡괭이 조각이 닿을 때마다 불꽃이 튀기에 주변을 살필 수 있었다. 손으로 만져본 느낌대로 독방은 사방 일 장 가량 되는 꽉 막힌 작은 공간이었다.

"후후! 앞으로는 독방 신세를 자주지게 되겠군…"

이곳에서라면 근력을 아낄 필요가 없는 곳이다. 그렇기에 전력으로 작업을 해나가자 불과 한 시진만에 반 장 가량을 파 들어갈 수 있었다.

"후후! 내려 온 게 백 장 정도지? 하루에 열 시진씩 일을 하면 오 장 씩은 팔 수 있겠군. 후후! 이 속도대로라면 이십 일 정도만 작업하면 되겠군. 좋았어! 사흘 있다 나가면 먹을 것 대충 챙겨 먹고 다시 들어와야지."

이회옥은 지옥갱에 내려온 이래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한참 작업하던 이회옥은 문득 떠오르는 상념에 잠시 손을 멈췄다. 문을 열었을 때 동굴이 보이면 만사휴의가 되기 때문이다.

"가만 있자! 이렇게 할 것이 아니군. 문을 열면 희미하게 나마 안이 보이니까 입구를 감춰야 하는군. 제길! 그럼 다시 해야 하나? 좋아, 그깟 한 시진쯤은 버리지."

나직이 투덜댄 그는 다시 여기저기를 더듬었다.

"흐음! 여기라면 괜찮겠지…"
채챙! 채채채채챙! 채채채채채챙!……

이회옥이 있던 독방에서는 삼 일 내내 소리가 났다. 죄수들이 작업하는 시간에는 곡괭이질 소리가 들렸고, 모두가 잠든 시간에는 작은 망치질 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심장 박동소리를 계산하여 규칙적으로 두들겼기에 멀리서 들으면 갱도 여기저기에서 한 방울씩 떨어져 내리는 낙수(落水) 소리와 유사하였다.

철커덕! 철커덕! 끼이이이익!
"삼천이십칠견, 석방이다. 나와라!"
"으읏!"

이회옥은 독방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밖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빛을 감당할 수 없다는 듯 손으로 눈을 가렸다.

"뭐해? 나오라니까…"
"아, 알겠소. 그런데 벌써 사흘이 지난 것이오? 난 하루밖에 안 지났는 줄 알았는데…"

"뭐야?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그럼 더 있을래?"
"후후! 여기 있어보니 일을 안 해도 되고 있을 만합디다. 며칠 더 있어도 된다면 더 있을 테니 문을 닫아 주시오."
"뭐라고? 이런 미친 놈…! 까불지 말고 어서 나와."

옥졸은 별놈 다 본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껏 독방에 있었던 놈 치고 이런 놈은 처음이었다. 다른 자들은 잔뜩 겁에 질려 있거나 반쯤 실성한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특별히 음식을 주나 내일부터는 작업량을 채워야 먹을 수 있다. 알겠느냐?"
"후후! 알겠소."

옥졸은 이회옥이 겉으로는 여유 있는 척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냉소를 머금고 있었다.

며칠 후 이회옥은 성공적으로 독방행을 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음식을 다른 죄수에게 주다가 들킨 것이다. 채찍질을 당해 등이 욱신거렸고, 그의 의복은 누더기가 되어 있었다.

사흘 후, 독방 생활을 하고 나오는 이회옥의 얼굴은 죄수의 얼굴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환했다. 못 먹어서 약간 수척해진 것을 제외하면 오히려 얼굴빛이 더 환해진 것이다.

"어찌 되었느냐?"
"후후! 제법 뚫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멀었어요."

"으으음! 너 혼자만 너무 고생하게 해서 미안하다. 이번엔 내가 독방으로 갈까?"
"후후! 독방은 아무나 가는 줄 아십니까?"
"으으으음! 그, 그건 네 말이 맞아. 난, 못 간다."

냉혈살마는 긴 침음성을 터뜨리면서 한 걸음 물러앉았다. 혼자 있다는 적막감을 이길 자신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살인마가 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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