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민방공훈련 때 나는 죽는 줄 알았다

학교 뒤 논두렁에 엎드려 보낸 2시간

등록 2003.02.27 16:53수정 2003.02.2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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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북면동국민학교 15회로 입학한 나에게는 나만 아는 비밀이 하나 있다. 2학년이었으니 10살 때다. 1977년 2월 봄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날. 2교시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선생님 말씀에 열중하느라 수업이 끝나 가는 줄도 몰랐다. 그 때였다. 일제히 아이들이 교실을 박차고 튀어나가 질컥거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무 밑으로 숨어 버렸다. 다른 학년도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 때 나는 신발장 앞에서 두리 번 두리 번 내 고무신을 찾다가 포기하고 훌쩍거렸다. 아이들이 급히 빠져나가면서 내 신발을 손에 쥐고 뛰고, 다른 아이 신발로 바꿔 신고 간 아이도 더러 있었다. 마음을 수습하고 보니 뒤뜰과 운동장 주변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큰일 났다. 마침 '큰 건물을 중심으로 적들이 무차별적으로 공습을 하니까 얼른 나무 그늘이나 지하대피소에 몸을 숨겨야 한다'는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다. 더 이상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나일론 양말만 신은 채 맨발로 학교 뒤쪽으로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촘촘히 잘 만들어진 측백나무 울타리 개구멍을 간신히 빠져 나와 우리마을 쪽으로 200여 미터를 더 뛰었다. 숨을 몰아 쉬고 간신히 숨을 곳을 찾았다. 높이가 족히 1.5미터나 되는 높은 논두렁 아래에 바짝 달라붙어 납작 엎드리고 코와 귀를 막고 한참을 보냈다.

a 김규환이 숨어 있던 그곳의 논두렁 높이도 이 만큼 되었습니다.

김규환이 숨어 있던 그곳의 논두렁 높이도 이 만큼 되었습니다. ⓒ 김규환


그 시각! 운동장 한 켠에서는 여느 때처럼 민방공 훈련이 벌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싸이렌 소리가 더 급하게 경계경보에서 공습경보로 바뀌자 방화수(防火水)는 양동이에 담아, 방화사(防火砂)는 들것에 실어 옮기고 소화기를 흔들어 적들의 공습으로 활활 불타고 있는 현장을 끄느라 2~30명이 몰려 있다.

나머지 선생님과 아이들은 은행나무 옆을 더 비집고 들어가 측백나무 향을 맡을 틈도 없이 눈만 골똘히 뜨고 잔뜩 긴장된 상태에 돌입해 있었다. 양손을 벌려 엄지손가락은 귀를 막고 약지(藥指)로 코를 막아 화학전 까지 대비 수차례 반복 훈련된 학생들은 선생님 지시에 잘도 따랐다.

때맞춰 "슁-" 초고속 전투기 두 대가 귀청이 찢어져라 갔으니 아이들은 겁에 질려 땅 속으로 기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줌을 싸는 아이, 마냥 훌쩍거리며 우는 아이, 더러는 '응가'를 한 아이까지 있었다. 학교를 뛰쳐나가 마을로 내뺀 아이도 있었다.

무등산 쪽에서 시작하여 백아산 마당바위를 지나 차일봉 까지 이어지는 20여 km 반경 안에는 저속 비행기가 뜨고 헬기가 낮게 날아 주위를 경계하며 공수부대원 낙하산이 하얗게 떴다. "둥둥 두둥실" 떠다니다 백여명이 낙하산을 접고 내려와 우리마을 방리 앞을 지나간다. '독수리훈련' 때가 아니어도 늘상 그랬다.

홀로 내팽개쳐진 나는 공포 그 자체였다. 선생님도 없는 곳에 혼자 버려지다니! 엄마, 아버지, 형제 들 생각에 얼마나 하염없이 울었는지 내가 응달져 덜 녹은 논두렁을 녹이고 있었다. 간첩이 백아산에서 발견됐다는 이야기가 작년에도 발표되어 나를 더 엄습했다.


얼마나 엎드려 있었을까? 주변은 조용했다. 아무 소리도 없었다. 눈을 들어 공중을 봐도 비행기도, 헬기도 사라지고 없었다. 용기를 내서 일어났다. "휴~"하고 살아났다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갈아 둔 논흙이 발바닥에 덕지덕지 붙어서 쉬 움직이기 힘들었지만 되돌아오는 수 밖에 없었다. 다시 교실로 들어서자 벌써 5교시가 시작되고 있었다. 벌써 두 시간을 까먹은 것이다. 무심한 선생님도 따로 없다. 정년퇴임을 앞둔 노인네 선생님께선 코흘리개 제자가 없어졌는데도 2시간 동안이나 찾지 않다니! 아직 살아 계신다면 언제고 한 번 따질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하니리포터, 조인스닷컴, 뉴스비젼21에도 송고할 계획입니다.

덧붙이는 글 하니리포터, 조인스닷컴, 뉴스비젼21에도 송고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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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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