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크크크! 어떠냐? 지낼 만하지?"
"에구, 에구…! 대인, 어디를 가십니까? 소인들을 살려주고 가십시오. 더럽고 냄새나서 더 이상 못 있겠습니다요."
지나치던 옥졸을 본 비접나한은 또 다시 소리쳤다. 벌써 목까지 차 오른 오물 때문에 미치고 환장하겠다며 지나치는 옥졸들을 볼 때마다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다.
"크크크! 더럽고 냄새난다고? 그렇지. 아암! 더럽고 냄새나고 말고… 크크크! 무지하게 더럽고 냄새가 나지. 허나, 그건 다 네놈들이 자초한 것이야. 여기 처음 왔을 때 분명히 가르쳐줬지? 탈출하다 잡히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에구, 에구…! 잘못했습니다요. 여기서 풀어만 주시면 뭐든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요. 그러니 제발 풀어만 주십시오."
비접나한의 말을 농담처럼 들었는지 피식피식 실소를 머금던 옥졸의 안색이 갑작스럽게 싸늘해졌다.
"흥! 어림도 없는 수작! 네놈들을 탈주하다 잡힌 놈들이다. 따라서 거기서 죽고, 거기서 썩고야 말 것이다."
"에구, 에구…! 대인, 그러지 마시고 제발 이놈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그러면…"
퍼어억―!
"우읍! 퉤퉤, 퉤에! 우우우우욱!"
알아듣게 말을 한다고 했는데도 비접나한이 계속하여 주절대자 옥졸은 발을 들어 가죽포대를 힘껏 걷어찼다. 그 바람에 오물이 출렁이다 입안으로 들어갔는지 연신 퉤퉤거리던 그는 뱃속의 모든 것을 토하고 있었다.
냄새만 맡아도 죽을 것 같던 그것이 입안까지 들어 왔으니 그럴 만도 하였다.
"대, 대인!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소인을 살려 주십시오. 에구, 에구! 그냥 가시지 말고 소인을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세요. 제발! 아아아아악! 살려 달란 말이에요."
비접나한은 발악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옥졸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제 갈 길을 갔다.
"그러게 내가 뭐라고 그랬어? 작작 먹으라고 그랬지? 어지간히도 먹는 것을 밝히더니… 에이, 시끄러워서 살 수가 있나…"
"형님! 사돈 남 말하지 마슈. 형님도 가슴까지 차 올랐다면서… 가슴이나 목이나 한 치 아니면 두 치 차인데…"
비접나한은 자신을 바라보는 냉혈살마를 보며 눈을 흘겼다. 현재 냉혈살마는 오물이 가슴까지 차있었고, 이회옥이 있는 가죽포대는 허리까지 오물이 차 있는 상황이었다. 비접나한보다 덜 먹었기 때문이다.
냉혈살마는 피거형에 처해진 이후 첫 번째 배설을 한 순간부터 삶의 의욕을 잃었다. 이제 꼼짝없이 이렇게 살다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모든 것을 체념해 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다소 냉소적으로 변해 버렸다.
하지만 이회옥은 아니었다. 비록 허리까지 오물이 차 있지만 이렇게 살다 비참하게 죽을 것이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가급적이면 먹는 것을 덜 먹으려고 애썼다.
나중에라도 살 기회가 왔는데 오물이 먼저 차 올라 죽어버리면 너무도 억울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며칠 후, 냉혈살마와 이회옥은 하루 종일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눈물만 흘렸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면서 엄청나게 먹어대던 비접나한이 갑자기 죽었기 때문이다.
봄이라 그런지 먹기만 하면 전신이 노곤해지면서 졸음이 쏟아졌다. 이른바 춘곤증(春困症)이었다.
잔뜩 먹고 주절주절 떠들던 비접나한은 되게 졸립다면서 한 잠 자야겠다고 하고는 잠시 후부터 코를 골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댈 때 내는 소리를 내다 잠잠해졌다.
냉혈살마와 이회옥은 적어도 한 시진은 동안 큰 소리로 비접나한을 불렀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가 자신이 배설한 오물에 빠져 죽은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 걸린 시간치고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다시 며칠 후 이번엔 냉혈살마가 죽었다. 비접나한이 죽은 이후 마치 걸신(乞神)들린 아귀(餓鬼)처럼 음식을 먹더니 죽어 버린 것이다. 아마도 의제인 비접나한의 비참한 죽음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홀로 남겨진 이회옥은 세상이 무너져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하여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어쩌면 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생각하였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자신도 이제 며칠 후면 냉혈살마의 뒤를 이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회옥의 안색은 마치 죽은 사람의 그것처럼 창백해져 있었다. 생에 대한 집착과 희망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 * *
"사부님! 약 달여 왔어요."
"누구냐? 사라냐?"
"아니에요. 유라예요."
"허허! 너희들은 목소리까지 너무 똑같아서 구별할 수 없구나. 어서 안으로 들거라."
"예!"
조심스럽게 모옥의 문을 연 유라는 행여 소반 위에 올려져 있는 탕약을 쏟을 새라 조심조심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은 황산 가운데서도 가장 절경이라 할 수 있는 주사천(朱沙泉)이 훤히 보이는 야트막한 구릉에 지어진 모옥이었다.
인근에 도화계(桃花界)와 소요계(逍遙界)가 있어 가히 도원선경(桃園仙境)인 곳이다. 게다가 근처에는 인자폭(人字瀑)이 있고 삼첩천(三疊泉)과 단정(丹井), 그리고 취석(醉石)이 있다. 따라서 절경이 즐비한 황산이었지만 이곳만큼 아름다운 곳은 아마 없을 것이다.
보달기 일당에게 쫓기던 사라와 유라는 얼어붙은 발에서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점점 움직임은 둔해져갔다. 그러는 동안 보달기 일행과의 간격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제 불과 이 각 정도면 생포될 그런 상황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추워 촌보도 옮길 수 없던 둘은 흔적이 남던 말던 물 밖으로 나와 움푹 파인 바위 아래에서 서로를 껴안고 정신 없이 비비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추위가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둘은 연신 이빨을 부딪치며 덜덜 떨었다. 그 정도 가지고는 추위를 몰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였다.
갑작스럽게 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눈앞이 온통 뿌옇게 보일 정도로 쏟아지는 눈은 삽시간에 무릎까지 차 올랐고, 불과 반 시진만에 허리 높이로 쌓였다.
이럴 즈음 추위와 허기, 그리고 끝없는 도주에 지칠 대로 지친 사라와 유라는 바위 아래에서 잠이 들었다. 그대로 놔둔다면 틀림없이 동사(凍死)하게 될 것이다.
같은 시각, 보달기 일행은 추격을 멈춘 채 투덜대고 있었다. 자신의 손가락조차 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추격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추적의 달인이라 할지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눈발이 줄어들면 얼른 사라 자매를 생포하여 더 이상 지긋지긋한 추격을 끝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대략 두 시진 정도 지나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눈이 멈춘 직후 비취곡을 스치듯 지나는 노인 하나가 있었다. 그의 어깨에는 사라와 유라가 얹혀져 있었다. 그는 한쪽 다리가 없는데도 멀쩡한 사람보다도 더 능숙하게 계곡을 빠져나갔다.
같은 시각, 협곡의 아래에는 보달기와 이십여 졸개들이 길게 뻗어 있었다. 노인의 급습에 반항 한번 못하고 당했기 때문이다.
노인의 성명은 초인악(草仁岳)이라 하였다. 세상사람들은 전혀 모르지만 그에게는 쌍둥이형이 있다. 도법에 관한 한 천하제일인이라 불리는 한운거사 초지악이 바로 그였다.
무림천자성의 장로인 그는 태산에서 강호의 정의를 수호할 정의수호대원을 양성시키는 책임을 맡고 있기도 하다. 대단한 존경을 받는 형과는 달리 초인악은 세상의 명리에 관심이 없기에 이처럼 깊은 산중에 살고 있다 하였다.
그는 왜 한쪽 다리를 잃었는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튼 초인악에게 구함을 받은 사라 자매는 그의 제자가 되었다.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하다 판단하여 제자로 거둔 것이다. 무공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던 사라와 유라였지만 초인악의 가르침은 그녀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하도록 하는데 조금의 어려움도 없었다. 너무도 상세하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초인악이 갑작스럽게 선혈을 토하며 쓰러졌다. 놀란 사라와 유라가 당황하고 있을 때 초인악은 태연한 기색으로 몇 가지 약초를 꺼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달이라 하였기에 달여서 들여가는 것이다.
쯔읍! 쯔읍! 쯔으으으읍!
"커어어…! 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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