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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꾸러기뉴스>에 '몽당은 물건의 끝이 닳아서 몽톡하게 무디어지거나 무디어지게 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로 표현되어 있고 이어 말의 쓰임새도 보인다. "연필이 몽당해지면 볼펜 빈 몸체에 끼어(끼워) 쓰는 알뜰 절약 재활용 정신이 필요합니다"라며 한마디 한 글이 보인다.
'몽당빗자루'가 빗자루 끝이 다 닳아져 거의 자루 가까이 만 조금 남은 상태를 뜻하고 '짜리몽당' 하면 키 작은 것이 연상되니 하여튼 오래 써서 짧아진 물건을 두고 이르는 말이라는 짐작은 간다. 그래서 그런지 '몽실언니' 마저도 키가 작고 통통하고 아담하고 마음씨 착한 여자로 내게 남아 있다.
정리하자면 '몽당연필'은 <다 써서 거의 못 쓰게 된 짧은 연필 도막>이다. 마지막 한 마디 남아 볼펜대에 끼워 줘야만 제 노릇을 하는 연필 도막이 추억의 몽당연필이다. 연필은 나무 한가운데 '흑연'이 길게 박혀 있음은 누구나 안다. 가는 연필이야 '샤프펜슬'이라고 부르니 관심 밖이다.
예전 필통(筆筒) 속으로 들어가 보면 짧고 도툼한 연필 칼 하나에 색연필 빨강 하나, 몽당연필 두 개, 짤막한 뿔 자, 지우개가 들어 있다. 각도기는 책이나 공책 사이에 끼워 뒀으니 여기에 낄 처지가 아니다. 그야말로 허전하기 그지없는 다 채워지지도 않은 쇠 필통을 지고 뛰면 등교 때는 딸랑딸랑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마치 레일 달린 '굴착기'(굴삭기는 일본식 한자말임, 포크레인)가 돌길을 달릴 때 내는 굉음과도 닮았다. 하교 때는 도시락 안에 든 수저 흔들리는 소리에 필통소리가 조금 작게 들릴 뿐이었다.
미술 시간이 있는 날에나 심지 두껍고 짙게나오는 4B 연필은 집에 두고 다녔으므로 필기할 때는 HB 연필을 썼는데 추운 겨울 손이 곱아 있을 때나, 누렇게 바랜 오래된 공책에 쓰게 되면 여간해선 글자가 써지질 않았다. 연필 길이가 짧아지면서 흑연의 노출 시기가 길수록 더 그렇다.
이 때는 대개 연필심을 혓바닥에 갖다 대 수분을 보충해주면 짙고 또박또박 잘 써졌지만 서너 글자를 넘기지 못하니 다시 수분 재충전 작업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필기한 것을 보면 몇 글자는 짙었다 몇 글자는 작고 옅어서 더 꾹꾹 눌러 쓴 자국이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로 혀가 정상이 아니었다. 다들 연필을 입에 물고 있는 이상한 버릇을 달고 있었다. 이러다 보니 혀 가운데로 두껍고 길게 쫙 갈라져 패어 있었다. 혹 아이가 책상 앞에 앉아서든 배를 깔고서든 연필을 물고 있다면 2-30년 전 자신을 돌아 보라.
손은 또 어떤가? 오른 손 가운데 손가락은 얼마나 연필을 꼭 잡고 글자를 썼는지 그 이쁜 손이 지금은 기형이 되어 있다. 유심히 왼손을 쳐다보면 매끈하게 잘 빠져 있는데 오른 손가락은 푹 패이고 일그러져 있다.
'몽당연필'은 자신의 전 생애를 몽땅 어린 학생을 위해 희생하고 몸뚱아리를 간신히 보존하였다가 마저 다 쓰이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봉사정신을 갖춘 시대의 산물이었다. 이후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몽당연필을 쓰는 아이는 눈 씻고도 찾기 힘들었다.
| | | 몽당연필(동시) | | | | 다른 연필보다 훨씬 작지만
연필 중에서는 형님이시죠
키 큰 연필들이 놀려대지만
나이 많은 어른한테 누가 덤벼요? / 정윤진 1990년 생 | | | | |
한 때 몽당연필의 사촌 격인 '몽당볼펜'도 등장했다. 100원 하던 볼펜을 아끼려고 볼펜심만 따로 5개나 10개씩 비닐에 압축하여 팔았던 적이 있다. 하지만 나와 이 몽당볼펜은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재생 심을 사는 것까지는 좋은데 망각의 선수라 곧 어디다 뒀는지 기억하지 못해 한 번도 찾아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볼펜을 사서 2시간도 안되어 잊어 먹는 명수가 어찌 볼펜심을 보관하고 있을까 말이다.
아이들에게 몽당연필 이야기를 꺼내면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 부모로 취급될 게 뻔한데도 한 번쯤은 얘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절약 정신을 강조하기 위해서나 못 살았던 때를 들춰 보이는 의미보다는 단지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서. 우리에겐 그것도 잊기 어려운 추억이라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하니리포터, 뉴스비젼21, 조인스닷컴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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