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흑인 혼혈인에게 쉼터를

미군클럽 전전... 동네 주민들에게 밥 얻어 먹으며 생계 유지

등록 2003.03.05 15:43수정 2003.03.0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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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한 ‘혼혈인’를 위해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선유4리 자율방범대(대장 오영인) 대원들이 작은 ‘쉼터‘를 마련해 준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훈훈함을 전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군 주둔지의 피할 수 없었던 ‘희생’인 ‘혼혈아’들에 대한 우리들의 무관심에도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오영인 자율방범대장과 대원들은 지난해 11월, 외할머니와 함께 살다 9년 전 홀로돼 미군 벙커와 빈집을 전전하며 ‘부랑아’로 생활해 오던 혼혈인 김경철(41·가명)씨를 자신들의 초소 옆에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했다.

김경철씨는 미군 흑인 병사와의 사이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학업은 초등학교 중퇴가 전부. 이후 미군부대에서 구두닦이를 하는 등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9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의지할 혈육조차 없었던 김씨는 동네 빈집이나 미군 벙커를 전전해야 했다. 그러나 벙커에 촛불을 켜놓고 잠을 자다 불이 나면서 함께 잠을 자던 ‘부랑인’ 할아버지가 불에 타 숨지자 벙커에서 나와 마을의 빈집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a 선유리 자율방범대원들과 함께. 맨 오른쪽이 오영인 대장.

선유리 자율방범대원들과 함께. 맨 오른쪽이 오영인 대장. ⓒ 김준회

김씨의 일과는 아침을 얻어먹으러 다니면서 시작된다. 하루 종일 동네를 돌아다니다 저녁 무렵, 몇 남지않은 미군 클럽 주변을 맴돌다 새벽이 돼서야 초소로 돌아온다. 밥은 주로 동네 주민들이 챙겨준다.

특히 이 마을에 있는 미군클럽인 컨추리클럽과 선유분식을 운영하는 바비아줌마(경철씨가 부르는 이름)가 김씨를 많이 챙겨 줘 이곳을 집처럼 드나든다고 한다. 또 술 박스를 날라주는 등 잔 심부름도 해주며 용돈도 얻어 쓴다.


김씨는 어릴 적 본국으로 들어간 친아버지로부터 몇 차례의 편지가 오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김씨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 답장을 못하자 그나마 친부로부터 오던 편지도 끊기고 말았다.

40대 임에도 김씨는 정신연령이 초등학생 수준으로 보일 만큼 순수하다는 것이 주민들의 말이다.


때문에 단순한 잡일로 끼니를 이어가고 있으며 간혹 주민들이 막노동을 시키고 몇 푼의 돈을 쥐어주기도 하고 용돈을 건네기도 한다.

자율방범대원들이 초소 옆에 잠자리를 마련해 준 것도 지난 화재를 떠올려서였고 외톨이로 생활하는 그가 안타까운 마음에서 십시일반 대원들의 마음을 모았다.

이들은 작지만 초소 옆 창고를 수리해 도배를 하고 전기온돌을 깔아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전기세도 납부해 주고 있다.

그런 탓인지 거리를 두고 다가오지 않던 김씨가 대원들의 따뜻한 관심에 이제는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기동대 행사 때는 잔일을 도와주기도 한다.

그러나 대원들에게 요즘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김씨에게 건강이 안 좋은 징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불규칙한 일상과 술을 많이 마신 탓인지 각혈을 하기도 한다.

김진철 자율방범대 부대장은 “잘 먹지도 못하고 매일 술을 마셔서 건강이 많이 나빠졌을 것”이라며 “진찰이라도 받게 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대원들의 마음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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