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72

북명신단 (2)

등록 2003.03.12 01:18수정 2003.03.12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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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뭐, 뭐라고요…?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추수옥녀 여옥혜는 너무도 놀라운 소리에 대경실색하였다. 그런 그녀의 앞에는 무공교두들이 서 있었다.

그녀들은 사면호협이 직위를 이용한 공금횡령이란 죄목으로 지옥갱에 하옥되었다고 하였다. 따라서 정의수호대원이 될 자격을 상실하였으므로 즉각 섬을 떠나라고 하였다.

"못 알아들었느냐? 네 아비는 중죄를 지어 지옥갱에 하옥되었다. 물론 무천장 장주 직을 박탈당했지. 그러므로 너는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자격이 없다. 당장 섬을 떠나거라!"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일이…! 뭔가 잘못 알았을 거예요. 아버님께서 공금횡령이라니요? 그리고 지옥갱에 하옥되다니요? 그럴 리가 없어요. 다시 한번 알아봐 주세요."

"몇 번이나 확인했다. 설마 무림천자성이 그런 실수를 할 만큼 허술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
"그, 그렇다면 저, 정말이에요? 정말 아버님이…?"
"흥! 몇 번이나 말해줘야 알아듣겠느냐? 당장 떠나거라!"


보타신니의 눈에 든 이후 지금껏 늘 부드럽게 대해주던 무공교두들의 얼굴에는 서릿발같은 차가움이 배어 있었다.

"흐흑! 아버님께서 죄인이 되시다니… 흐흐흑!"
"지금은 배가 없으니 내일 새벽 첫 배를 타고 떠나도록!"


말을 마친 무공교두는 더 볼 필요도 없다는 듯 횡하니 돌아섰다. 그녀들이 사라진 후 억지로 참았던 눈물이 솟는지 여옥혜는 섬섬옥수로 얼굴을 감싸 안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흐흑! 흐흐흐흑!"

그것은 하늘이 무너졌다는 통보와 다름없었다. 무공교두의 말이 사실이라면 다시는 부친을 만날 수 없다. 지옥갱은 한번 하옥되면 다시는 나올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가씨…!"
"흐흑! 흐흐흑! 나, 이제 어떻게 해요? 흐흐흑!"

지금껏 말 없이 지켜보던 왕구명의 나직한 음성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여옥혜의 흐느낌은 격한 오열로 변해갔다.

"아가씨! 마음을 굳게 먹으십시오. 그리고 사실을 알아 보셔야 합니다. 장주께서 공금횡령 때문에 지옥갱에 하옥되었다고 하는데 그런 전례는 없었습니다. 공금횡령은 파렴치범이나 흉악범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흐흐흑! 흐흐흐흐흑…!"

왕구명의 다독임에도 불구하고 여옥혜의 오열은 좀처럼 그칠 줄 몰랐다.

"이봐! 얼음귀신, 그게 사실이야? 사실이냐고?"

워낙 뚱뚱하기에 구르다시피 들이닥친 백만근 천애화의 음성에는 놀라움이 배어 있었다.

"흐흑! 언니, 나 이제 어떠면 좋아요? 흐흐흐흑!"
"그, 그렇다면 그게 정말이란 말이야? 말도 안 돼…!"

오늘은 어떻게 하면 왕구명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다가오던 천애화는 무공교두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옥혜는 보타신니의 기명제자이다. 따라서 그녀들과 접촉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이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산해각에서 나오자 뭔가 일이 터졌나 싶었던 것이다.

여자들이란 원래 궁금한 것이 많은 족속이 아니던가! 하여 담장 밖에서 고개만 내민 채 빼꼼히 들여다보던 그녀는 왕구명과 여옥혜의 대화를 듣고 대경실색하였다. 대화 내용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금릉 무천장은 무천장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큰 곳이다. 작고한 천애화의 조부가 전대 무림천자성 성주인 화롱철신 구린탄과 죽마고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림천자성이 처음 건립될 때 혁혁한 공을 세운 그는 그 공을 인정받아 태상장로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이를 거절하였다. 그리고는 금릉으로 내려와 일개 무천장주가 되었다.

천하를 경영하는 무림천자성 총단에 있으면 머리 아픈 일이 많이 발생될 것인데 그게 싫어 그런다고 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치열한 권력 암투가 벌어지는 총단에 있기 싫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성인군자인척 하면서 뒤로는 호박씨를 까는 모습을 더 이상 눈뜨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 그는 성주인 화롱철신에 이은 당당한 이인자였다. 그런 그가 권력을 탐하지 않고 스스로 낮추자 사람들은 그를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며 흠모하였다.

이후 성주가 된 철룡화존은 누구든 금릉 무천장주에게 함부로 대하는 자는 성주를 함부로 대하는 것과 같다 선포하였다. 그렇기에 무천장 가운데 금릉 무천장이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이다.

"말도 안 돼! 아버님께서 말씀하시길 천하에서 가장 청렴한 무천장주가 있다면 네 부친인 사면호협일 것이라고 하셨어. 그런데 어찌 그분이 공금횡령이란 죄목으로… 그것도 지옥갱에 보내다니… 말도 안 돼! 야, 얼음귀신! 그만 울어. 이 언니가 전서구를 띄워 사실 여부를 알아볼 테니 알았지? 그만 울어."
"흐흑! 흐흐흐흑…!"

천애화의 말에도 불구하고 여옥혜의 봉목에서는 옥루가 연신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지금껏 이곳에서 고생한 이유가 무엇이던가! 원대한 계획을 세운 부친이 뜻한 바를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 생각하여 온 것이다. 그렇기에 꽃다운 방년임에도 불구하고 비파나 바늘 대신 검을 쥔 것이 아니던가!

"흐흑! 흐흐흐흑! 아버님…!"
"야, 울지 말라고 했잖아. 전서구를 보내면 사흘 안에 돌아와. 그러니 사흘만 기다려. 알았지?"

"흐흑! 언니, 내일 새벽에 떠나래요. 흐흐흑!"
"뭐라고? 이런 인정머리 없는 것들 같으니… 여기 가만히 있어 내가 가서 알아볼게."
"흐흑! 흐흐흐흑!"

천애화가 사라진 후에도 오열은 좀처럼 그칠 줄 몰랐다.

"아가씨 이제 그만 고정하세요. 그러다 원기가 상하기라도 하면 큰 병에 걸립니다. 아가씨!"
"흐흑! 흐흑! 흐흐흐흑!"

추수옥녀 여옥혜의 오열이 멈춘 것은 저녁나절이었다. 다음 날 새벽, 짙은 해무(海霧) 속에서 왕구명과 여옥혜는 쫓기듯 배를 타고 보타암을 떠나고 있었다.

이 날, 백만근 천애화는 지금껏 미뤘던 관문 도전을 신청하였다. 그리고 최단 시간만에 관문을 돌파하였다. 그리고는 자청하여 산해관 무천장에 배속되기를 희망하였다.

사면호협이 지옥갱에 보내진 연유를 알아보려는 의도와 어떤 방법으로든 왕구명과 다시 만나고 싶은 집념의 결과였다.

* * *

"우와…! 대, 대단하다!"

이회옥은 너무도 엄청난 문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그것을 처음 본 순간 과연 천하를 경영할만한 능력을 지닌 무림천자성이라는 느낌이었다.

오는 동안 정의수호대원들로부터 무림천자성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무림천자성에 몸담고 있는 것에 대하여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하여 대체 어떻기에 이런가 싶었는데 과연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었다.

무림천자성을 처음 축조할 때 화롱철신은 은자를 아끼지 않고 솜씨 좋은 장인들을 선별하여 불러들였다. 덕분에 불과 이 년 만에 난공불락(難攻不落) 철옹성(鐵甕城)을 축조할 수 있었다.

성곽은 둘레가 무려 팔십 리에 달하는데 기단부의 두께만 십 장에 달한다. 올라가면서 차츰 좁아지는데 그 높이 역시 십 장에 달한다. 위에는 마차 세 대가 동시에 다닐 수 있는 길이 있다.

모두 네 곳에 문이 있는데 각기 청룡문(靑龍門), 백호문(白虎門), 주작문(朱雀門), 현무문(玄武門)이라 칭했다. 현재 이회옥이 보고 있는 것은 남문인 주작문 앞이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목재인 자단목(紫檀木)으로 짜여져 있는데 좌우 폭이 십 장, 높이가 오 장이었다. 실로 엄청난 크기의 문이었다. 그런 문에는 두 마리 주작이 그려져 있는데 어찌나 생생한지 잠시도 가만 못 있고 꿈틀거리는 듯하였다.

"하하! 녀석 뭘 그렇게 놀라느냐?"
"세상에 저렇게 큰문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녀석! 겨우 문 하나 가지고… 자, 어서 들어가자."

동행하던 정의수호대원은 이회옥의 어깨를 툭툭 쳤다. 오랫동안 동행한 덕에 제법 친밀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성문이 열리자 이회옥의 입은 또 다시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엄청난 전각군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림천자성의 상주 인원은 삼만여 명에 달했다. 따라서 그들을 수용하여야 했기에 엄청난 수효의 전각들이 있는 것이다.

"자, 저쪽이 철마당으로 가는 길이다. 모르면 가다가 물아 봐라. 자, 그럼 다음에 또 보자!"
"예? 아, 예에…! 예, 다음에 뵈어요."

정신 없이 전각들을 구경하다 얼떨결에 대답한 이회옥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철마당이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흐음! 네가 바로 이회옥이라는 놈이냐?"
"그, 그렇습니다."

"좋아, 너는 오늘부터 망아지들이 있는 마굿간의 말똥을 치우는 일을 해라. 알았느냐?"
"……!"

"알았느냐고 물었다."
"예! 아, 알았습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저기 가서 말똥을 치워라."

이회옥이 내민 서찰을 받아 든 장한은 퉁명스런 어투로 말을 한 후 턱으로 마굿간을 가리켰다. 손을 들어 가리키는 것조차 귀찮은 모양이었다.

덧붙이는 글 | < 알리는 말씀 >

갑작스럽게 상(喪)을 당하는 바람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지난 2 일간 연재를 하지 못한 점 깊이 사과 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알리는 말씀 >

갑작스럽게 상(喪)을 당하는 바람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지난 2 일간 연재를 하지 못한 점 깊이 사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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