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TOP5' 지향한다던 현대차의 이상한 주총

등록 2003.03.14 19:29수정 2003.03.1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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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 열린 현대자동차 정기주주총회
3월 14일 열린 현대자동차 정기주주총회현대자동차

총수일가의 초고속 승진문제와 관련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현대자동차의 주총은 별다른 논쟁 없이 시작한지 1시간만에 싱겁게(?) 끝이 났다.

매출액 26조3369억원, 경상이익 1조9835억원, 당기순이익 1조4435억원 등 창사이래 최고 실적을 낸 현대자동차 회장단에 대해 주주들이 손을 쉽게 들어준 것이라는 평가다.

현대자동차(대표 정몽구 회장)는 14일 오전 10시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제35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임기 만료된 박정인 현대모비스 회장을 등기이사로 재 선임했다. 또 사외이사인 박병일 신일세무사무소장과 미야모토마사오 미쓰비시상사 집행이사 자동차본부장 등도 임기가 만료돼 이날 재 선임했다.

'짜고 친' 2003년 현대차 주주총회

현대차의 제35기 정기 주주총회는 한마디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물론 창사이래 최대실적을 낸 현대차의 경영실적에 주주들이 문제를 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그 뒤에는 직원들의 눈물겨운 조력이 숨어 있었다.

이날 주총장 700여 좌석은 오전 10시 개회되기 이전에 이미 가득 메워졌다. 물론 이들의 대부분은 현대차 직원들이었다. 뒤늦게 행사장에 참석하기 위해 먼길을 달려온 소액주주들은 앉을 자리가 없자 선물(후라이팬)만 받고 주총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현대차 직원들의 활약은 '부의 안건'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김동진 사장이 안건을 상정하기가 무섭게 이들은 재청을 신청해 이견 없이 안건들을 무사히 통과시켰다.

특히 2호 의안인 '이사 선임의 건'과 3호 의안인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건'에서 이러한 촌극은 극에 달했다. 사외이사와 감사위원회 위원으로 재 선임된 박병일 씨에 대한 재청 부연 설명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던 것.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주총에 참가한 몇몇 주주들은 "니들 끼리 다 해먹어라" "짜고 치는 고스톱이냐"며 불만에 섞인 말들을 쏟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주총장의 무거운 분위기에 압도돼 이러한 말들은 전혀 호응을 얻지 못했다.

현대차의 2003년 주총장의 풍경은 실제 주주들의 참여가 거의 없이 일방적으로 끝이 났다. 주총이 끝나자 가짜 주주들은 각자의사무실로 흩어졌다. 2010년까지 세계 TOP5를 지향하는 거대기업 현대차의 주총은 우울하기만 했다. / 공희정 기자
현대차는 이날 주총에서 액면가 기준 보통주 17%, 제1, 3 우선주 18%, 제2 우선주 19%의 배당률을 확정, 총 2431억원을 배당키로 결의했다. 또 김동진 사장 등 임원 145명에게는 총 159만7000주(주당 2만6800원)의 주식매입선택권(스톡옵션)을 부여키로 했다.

이날 김동진 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지난해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내수 79만대, 수출 92만9000대, 해외공장 생산분 18만3000대 등 총 190만2000대의 차량을 판매, 27조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며 "올해 내수 84만대, 수출 100만대, 해외공장 생산 판매분 29만대 등 총 판매 213만대, 매출 30조1000억원의 사업목표를 달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속적인 수익 향상과 주주 가치 증대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 2010년에는 반드시 세계 5대 자동차 메이커로 도약할 방침"이라며 "환경경영 추세에 발맞춰 '그린 비즈니스'를 기업의 핵심경영전략으로 승격시켜 자동차산업 환경부분에서도 글로벌 '톱5' 진입을 이룩하겠다"고 덧붙였다.

일사천리로 순조롭게 진행되던 현대차 주총도 잠시 긴장국면에 돌입하기도 했다. 이번 주총의 1호 안건인 재무제표 승인의 건에 대한 통과를 선언하기 직전 현대차 하부영 우리사주조합장과 김강희 노조부위원장이 이의를 제기하면서부터다.

(하부영 조합장)- 자기자본이 1조4765억원에 불과한 현대차가 3조원 이상을 계열사에 투자했다는 것은 과당 투자가 아닌가.
(김동진 사장)"계열사 투자는 모두 자동차 관련 산업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는 첨단 부품이나 비밀보장이 요구되는 제품개발 분야 등을 외주화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위아, 위스코, 본텍 등에 투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부영 조합장)- 지난 2000년 양재동 사옥에 이어 942억원 가량의 계동 사옥을 추가로 매입한 것은 부동산에 대한 과당 투자 아닌가.
(김동진 사장)"현대차그룹의 계열사는 과거 여러 군데 흩어져 있다보니 시간의 낭비와 업무효율성이 떨어졌다. 계열사를 한 건물에 입주시켜 업무협조를 원활화하고 계열사 상호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계동 사옥을 매입한 것이다. 비싼 임대료를 물고 거주하는 것보다 구입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다."

(하부영 조합장)- 창사이래 최고 실적을 거두고도 현대차 노동자들에게는 성과금을 150% 수준밖에 주지 않았다.
(김동진 사장)"지난해 성과급을 지급한 것은 실제로 200%다. 일시금 150만원, 지난 설 연휴 때 80만원 지급하는 등 3500억원 가량을 종업원들에게 분배했다. 주주들에게 지급하기로 결의한 배당액 총액인 2400억원 보다 많다. 현대차 종업원들에 대해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김강희 노조부위원장)- 경기가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공장을 건설한다든지 한다는 것은 무리한 투자가 아닌가.
(김동진 사장)"이라크 전 발발 가능성 등으로 세계 경기가 불투명한 상황이나 위기가 오히려 기회라는 판단아래 지난해 중국과 미국 등지에 현지 진출했다. 세계 경기 침체 등으로 자동차 판매 및 생산량이 줄어든다면 해외 생산기지부터 생산량과 고용을 줄여나가겠다."

현대차 '자사주 매입' 해프닝

한편 이날 현대차 주총에서는 '자사주 매입 여부'를 밝힌 최고경영자의 발언을 회사측이 공식 부인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현대자동차 김동진 사장
현대자동차 김동진 사장현대자동차
한 주주가 '창사이래 최대실적을 낸 만큼 주식발행의 초과금을 이제는 주주들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김동진 사장은 "현대차는 보통주가 2억1800만주에 달할 정도로 유통 주식수가 너무 많고, 사내 유보금도 충분한 상태다. 현재 회사의 재경본부에서 자사주를 매입하는 방안을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으며 매입 규모와 시기는 추후 이사회를 거쳐 최종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의 이러한 발언은 연합뉴스, 머니투데이 등 인터넷 신문을 통해 곧바로 기사화가 됐고, 증시에 즉각 방영됐다. 현대차 자사주 매입소식이 전해진 직후인 오전 10시 46분 주가는 전일보다 6.74% 상승한 2만4550원에 가격을 형성했다. 물론 조회공시 요구도 들어왔다.

현대차 측은 즉각 "원론적인 차원의 발언일 뿐 자사주 매입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바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이어 김 사장의 발언에 대한 조회공시 요구에 대해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나 자사주 매입 방안에 대해서는 현시점에서 구체적으로 검토한바 없다"고 부인공시를 냈다.

결국 주주총회라는 공식석상에서 회사를 대표하는 최고경영자가 주주들을 상대로 `공언'한 내용이 회사측이 공식입장을 통해 완전히 뒤집은 결과를 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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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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