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밀사설'은 북측 오해의 산물?

[김당 기자의 정치 톺아보기 ⑩] '북풍' 시시비비 <3>

등록 2003.03.18 22:24수정 2003.03.18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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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지난 2002년 대선 전에 '북풍'(北風)을 차단하기 위해 평양에 밀사를 파견했다는 '밀사설'은 지난 2월18일께 발행된 <신동아> 3월호에 처음 보도되었다. 그러나 "한나라당, 대선 '북풍' 차단 평양밀사 파견설 전모"라는 기사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월간지는 스스로 기사 내용을 확인되지 않은 '설'(說)로 규정했다.

'북한정보에 정통한 한 남한 소식통'을 인용한 이 기사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 이렇다.

"이 소식통은 '첫 번째 밀사가 평양에 다녀간 것은 지난 해 9월 일본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부친 이홍규(李弘圭)씨가 황해도 해주지법 검찰서기로 근무할 때의 전력을 폭로한 직후'라며 '그 밀사는 조선신보의 추가보도를 중지시켜달라고 요청했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북한측에서는 조총련 언론은 우리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는 게 이 소식통의 설명이다."

<신동아> 기사는 여러 정황상 가장 대북 특사의 조건에 들어맞는 인물로 '전략적 상호주의' 개념을 정립한 송영대 전 통일부차관과 이회창 후보의 핵심 브레인으로 꼽힌 백진현 서울대 교수 그리고 김대중 정부에서 통일부장관을 지낸 박재규 경남대총장을 꼽았다. 그리고 3인으로부터 직간접으로 해명을 들었다. 송영대 전 차관과 백진현 교수는 기사에서 그런 가능성을 일축했다. 또 두 사람 다 지난해 방북한 적이 없으니 사실관계도 어긋난다.

박재규 전 통일부장관이 대북특사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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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방북 때 평양 대동강변에서 전금철 내각참사과 함께 '망중한'을 즐긴 박재규(오른쪽) 전 통일부장관

따라서 '남는 사람'은 박재규 총장뿐인데 공교롭게도 그가 고문 자격으로 참여한 KBS교향악단 평양방문단의 방북시기(9월16∼22일)와 소식통이 전한 한나라당 밀사방북 시점(<조선신보>의 9월13일 보도 직후)이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또 <신동아> 기사는 "박 전 장관이 방북기간 중 1∼2일 가량 방북단 일행과는 별도의 일정으로 움직였던 게 의심을 받게 된 배경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신동아>에 실린 박재규 총장의 서면 답변 내용이다.

- 평양 체류기간 중 하루이틀 정도 방북단 일행과 떨어져 별도의 일정을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유는 무엇이고, 그 기간에 접촉한 북한 고위층 인사는 누구인가.
"당시 방북단의 참관지는 이전에 모두 가 보았던 곳이었다. (별도의 일정을 잡은 것은) 북한의 소위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에 의한 변화상을 직접 목도하기 위해서였다. 평양시내를 비롯한 대동강변과 보통강변 등에서 시민들의 생활상을 관찰했고 평양시내 가판대(포장마차 등)와 백화점 진열대 품목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그리고 판매점원들과 대화를 하면서 이들의 경쟁적인 판매 모습을 지켜봤다.

그때 만난 북측 고위 인사는 지난 1998년 경남대 총장시절 그리고 정상회담과 남북장관급회담시 평양을 방문해 서로 안면이 있는 인사들이다. 김용순 비서와 전금진(전금철로도 불림) 내각 책임참사, 리종혁 아태부위원장, 안경호 조평통 서기국장, 홍서헌 김책공대 총장 등이 그들이다."

"북풍은 남북관계에 전혀 도움 안된다"

- 그들과 나눈 주요 대화내용은 무엇인가.
"정상회담 이후 서로의 추억담과 회고 그리고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교환했다. 구체적으로 밝히면 당시 KBS와 북측간에 사전 합의한 사항들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 일례로 합동연주회의 서울-평양 동시중계에 문제가 있었다. 이에 대해 북측 관계자와 협의해 해결했다. 또 당시 남북이 각각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 동시 착공식 행사를 열기로 했는데, KBS를 통한 북측 착공식 행사지역 현지실황 중계방송 건 등을 논의했다.

이와 함께 남북 국회간 교류 차원에서 당시 남측 국회의원 참가단과 북측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간의 만남 건과 문화예술인 교류 및 학술교류 활성화 건, 김대중 정부 임기까지 경의선 연결 및 육로관광 이행 건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마지막으로 남측은 대선정국이므로 과거 북풍(北風)과 같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은 남북관계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북측은 '북남교류협력을 하자는데 요즘 남측 정치권에서 북풍, 신(新)북풍으로 부르면서 논란을 야기시키고 있는데, 이는 정치적 음모가 아닌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 (대화 과정에서) 이회창 후보 부친 이홍규씨와 관련된 비난보도에 대해 자제를 요청하지는 않았는가.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

또 <신동아>는 박 전 장관의 비서실장이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박 전 장관이 당시 북한측 관계자들과 만나면서 느꼈던 점이라며 추가로 답변을 전해왔다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실었다.

"(박 전 장관이 느끼기에) 북한측 관계자들은 남한 대선 후보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회창 후보가 중국에서 대북정책에 대해 설명한 내용을 매우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측면도 보였다. 심지어 한 북측 인사는 이 후보의 정책대로만 된다면 사업이나 교류협력 등을 계속할 것이라는 의사를 내보이기도 했다. 북측에서는 남측의 대통령이 누가 되더라도 화해와 협력을 지속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이회창 후보 방중 때도 '특사 파견설' 유포

"북한측 관계자들은 남한 대선 후보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거나, "이회창 후보가 중국에서 대북정책에 대해 설명한 내용을 매우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측면도 보였다"는 표현은 다소 오해를 살 만한 여지가 없지 않다.

실제로 같은 시기 이회창 후보의 중국 방문을 놓고도 비슷한 설이 유포됐었다. 당시 이회창 후보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 등 이른바 '신(新)북풍'을 우려해 북한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개별적으로 만나 북한을 달래달라고 요청하려 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지난해 9월 이회창 후보의 방중 및 박재규 총장의 방북 이후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의 '대북밀사 파견설'이 그럴 듯하게 나돌았다. 그러나 사안의 성격상 사실 확인이 어렵고 의혹의 당사자인 박재규 총장이 이를 부인함으로써 '대북 밀사설'은 그때나 최근 <신동아>가 보도했을 때도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다.

'확인되지 않은 설'(說)에 '천만근의 무게'를 실어준 것은 '뜻밖에도' 북한 당국이었다. 북측의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김용순 위원장)는 3월10일 이례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상보'를 발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한나라당이 국민의 정부 출현 이전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고위급접촉을 제안하면서 자기들의 청원을 들어준다면 수백억 달러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한 바 있다. 특히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우리측에 밀사를 보내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면 현 정부보다 더 적극적으로 통이 큰 대북지원을 할 것을 담보했다."

아태평화위는 한나라당이 당시 "대북정책을 절대적 상호주의에서 신축적 상호주의로 수정하는 과정에 있다"면서 "정부와 여당을 공격하는 것은 집권을 위해서라고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북측은 "한나라당의 밀사 파견 문제는 북남 사이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하여 현재로서 그 비밀을 공개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여 '여운'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아태평화위는 노무현 대통령이 대북 송금 관련 특검법안을 원안대로 공포한 14일에도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한나라당이 지난해 7월과 10월 세 차례에 걸쳐 베이징 등지에서 '대북밀사'를 통해 대북 협력 메시지를 보냈으며 지난해 9월과 12월, 12월 중순 '대북밀사'를 보내왔다고 연거푸 주장했다. 아태평화위는 또 "우리가 실상의 일단을 상기시켜 준 것인 만큼 이제는 밀사의 이름은 스스로가 밝히는 것이 그들 자신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고 은근히 '협박'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박 총장은 98년 이후 5회 방북 김정일 2회 만난 북한통

박재규 총장은 98년 이후 북한을 다섯 차례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두 번 만났다. 북한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을 독대한 외부 인사는 조금 과장해 '국빈' 대우를 받을 만큼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박 총장은 특히 7·1 경제관리 개선조처 및 9·12 신의주 특별행정구 발표 이후 방북했기 때문에 몇몇 매체와의 인터뷰와 기고를 통해 방북 소감과 북한의 경제 변화상을 소상히 밝힌 바 있다.

또 박 총장이 <한겨레 21>(2002년 11월 27일자)과 인터뷰하면서 공개한 대동강변에서 한가롭게 전금철 내각참사와 함께 찍은 사진 등을 보면 '평양 체류기간 중 하루이틀 정도 방북단 일행과 떨어져 별도의 일정을 보냈던 것'은 사실 이를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다음은 <한겨레21>과의 일부 인터뷰 내용이다.

- 북한은 오는 12월의 남쪽 대선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선 결과에 따라 지금의 남북관계나, 북한의 경제개혁 조처들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북쪽에서 대선 결과에 신경을 쓰는 것은 사실이다. 북쪽의 지도층 인사들은 남쪽의 대선 관련 보도를 꼼꼼히 보고 있었다. 따라서 각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대북정책 내용도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남쪽에서 먼저 적대정책을 펴지 않는 한 지금의 교류협력정책을 유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최근 남북관계가 급물살을 타는 것과 관련해 일부 인사들은 '신북풍 운운하는데 이는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강한 어조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대선 후보들 모두가 대북 화해협력정책의 기조에 공감하기 때문에 약간의 우여곡절은 있을 수 있으나 지금의 남북관계 흐름을 거스르지는 않을 것이다."

- 통일부 장관이 아닌 민간인으로서 평양 땅을 다시 밟은 감회는… 북한 당국자들도 상당히 반겼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이 남쪽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뜻밖의 환대를 받았다. 특히 나와 함께 정상회담 뒤 양쪽 장관급회담의 수석대표로 4차례나 만나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전금진 내각 책임참사와의 재회는 색다른 감회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고맙게도 내 생일을 기억해 9월17일(음력 8월11일) 생일상을 따로 차려주기도 했다. 평양시내의 한 선술집에서 마주앉아 지난 회담에 얽힌 뒷얘기부터 시작해, 서로 얼굴을 붉히면서 목소리를 높인 당시를 회상했다. 모두 다 좋은 추억으로 돌리고 남북화해와 공동번영을 위해 노력하자며 손을 굳게 맞잡았다.

내가 만난 북쪽 고위인사들 모두 비료와 쌀지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남쪽 국민에게 전해달라고 하더라. 그리고 지금의 화해협력 관계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라며, 누가 남쪽의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협력하기를 원했다. 또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하자고 여러 번 강조했다."

북풍은 '적대적 의존관계'의 산물

"지금의 화해협력 관계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라며, 누가 남쪽의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협력하기를 원했다"는 박 총장의 방북 소감은 <신동아> 인터뷰 내용이나 다를 바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 대선 후보들 모두가 대북 화해협력정책의 기조에 공감하기 때문에 약간의 우여곡절은 있을 수 있으나 지금의 남북관계 흐름을 거스르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대목은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또 박 총장의 개인적인 의견이더라도 박 총장은 통일부장관을 지낸 북한통인 데다가 한나라당측에도 친분이 있는 학자들이 많다. 정기적으로 북측 인사들과 접촉해온 한 대북 소식통은 그 때문에 박 총장이 '대북 밀사'라는 오해를 살 만한 여지가 컸다면서 그 배경을 이렇게 추정했다.

"북측 고위 인사들은 오랜만에 방북한 박재규 전 장관의 일정을 따로 정해 남한 사정을 탐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 더구나 12월 대선을 앞두고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이면서도 상대적으로 북한에 적대적인 이회창 후보가 중국을 방문해 유화적인 대북정책을 설명했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다.

따라서 이런저런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박 장관이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의 기조가 '전략적 상호주의'로 바뀐 점과 이회창 후보가 집권해도 교류협력사업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 등을 강조한 것이 저쪽에는 박장관이 이회창 후보의 대북 메시지를 갖고온 밀사처럼 비치게 된 것 같다."

이 대북 소식통의 분석이 사실이라면, 한나라당 대북밀사 파견 의혹은 박재규 전 장관의 '오버' 발언과 북한측의 '넘겨짚기'가 결합되어 빚은 '오해의 산물'인 셈이다.

사실 한나라당은 지난 97년 대선 전에 당시 정재문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이 베이징에 가서 북측 인사들을 접촉한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일부 언론에 한나라당의 '대북 뒷거래' 의혹이 폭로되는 등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이 때문에 정재문 의원 본인도 불구속 기소되었다. 따라서 97년 여당일 때도 대북 비밀접촉 사실의 보안유지가 안 되어 그 때문에 홍역을 치른 한나라당이 그로부터 5년 뒤인 2002년 야당 시절에 '간 크게도' 대북 밀사를 파견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최근 정치권에서 여야 공방으로 제기되고 있는 2002년 북풍 의혹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북한 변수를 이용하려는 공수(攻守) 관계가 반전된 것을 의미한다. 97년에만 해도 대북접촉을 통해 북풍을 일으키려는 신한국당(한나라당)과 이에 맞서 북풍을 막으려는 국민회의(민주당)측이 정보전을 펼쳤는데 2002년의 경우 민주당보다는 한나라당측이 '평양발 북풍'을 막으려고 애쓴 정황들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북풍공작은 기본적으로 남북한 사이에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적대적 의존관계'의 산물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한 관계가 '평화적 공존관계'로 바뀐다면 선거 때면 불어닥치는 이 '이상한 바람'(북풍)은 더 이상 발을 못 붙이게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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