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사회, 꿈꾸는 아이들

서울 남부교육센터 ‘꿈꾸는 아이들의 학교’

등록 2003.03.17 13:43수정 2003.03.1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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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녀들은 매일 아침 학교에 가는가? 해마다 7만여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

당신의 자녀들이 학교수업에 흥미를 느끼고 즐거워하는가? 질병과 사고, 유학이나 이민 등의 이유로 학교를 그만둔 학생을 제외한 ‘순수학업 중단학생’만 해도 5만5천여명으로 전체의 1.4%에 이른다.

당신의 자녀들은 오늘도 학교에서 잘 버텨내고 있는가? 한 일간지에서 설문조사 내용을 보면 10명 중 3명이 자퇴나 휴학을 생각해봤다고 답했다.

어떤 이유로든 동무들이 다 학교에 가버리고 난, 텅 빈 놀이터나 동네골목길에서 서성거려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면 이들이 느끼는 정신적 공황에 쉽게 동감할 수 있으리라. 이들은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주유소나 카페, 패스트푸드점 등 최저임금의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학생이 아닌 청소년에게는 냉담하기만 하다. 사회는 고요한 놀이터마냥 이들의 존재에 대해 “질끈”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서울 관악구 난곡에서 “탈학교 아이들”이라 불리는 청소년들의 쉼터를 자처하며 교육의 ‘대안’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곳이 바로 “꿈꾸는 아이들의 학교”다. 비록 10여명의 상근자와 자원교사들, 그리고 비슷한 숫자의 아이들로 이루어진 작은 울타리지만 서울에서 채 열 개도 되지 않는 도시형 대안학교 중 한 곳이다. 난곡을 중심으로 한 남부야학에 뿌리를 둔 남부교육센터 부설로 2001년 설립된 이곳은 지금 4월 7일 있을 3기 입학식 준비에 여념이 없다.

“아이들은 소외감과 열등감에 젖어있어요. 다시 학교에 돌아가도 곧 그만두게 되는 악순환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아이들을 둘러싼 가정환경이나 여건이 변화하지 않으니까요”라며 김은임 교사는 아이들이 처한 현실을 차분히 짚어 나간다.

그런 아이들이 “인터넷 게시판이나 홍보물을 보고, 또는 입소문을 통해” 이곳으로 모여든다. 그렇지만 학교에 비해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와 수업내용에도 불구하고 잘 나오다가 몇 달씩 나타나지 않는 아이들이 생기는 까닭도 바로 같은 이유에서다.


아닌 게 아니라 김 교사와 이야기하는 중에도 얼마 남지 않은 검정고시 때문에 모인 아이들의 교실은 어수선하다. 이내 수업이 끝났는지 한 아이가 축구공을 몰고 교실을 나왔다. 넉넉치 않은 교육센터 공간이라 교실 밖은 학교로 치면 교무실인 셈이다. 여기서 장난 삼아 선생님을 향해 공을 패스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그렇지만 여느 학생들과 다를 바 없이 밝기만 하다.

작년 여름 수련회에서 아이들을 향해 뭐라고 소리치고 있는 김은임 교사. 무슨 이야기였을까?
작년 여름 수련회에서 아이들을 향해 뭐라고 소리치고 있는 김은임 교사. 무슨 이야기였을까?
물론 예전에 비하면 대안교육, 대한학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은 대안학교에 대한 관심조차 외국 명문대 입학, 또는 특수한 성공사례 등의 제도적 관점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틀이 깨어지지 않는 한 “탈학교”는 계속 이어질 것이며 그들은 학교 밖에서 여전히 소외될 수밖에 없다.


김 교사는 “무엇보다 아이들 스스로가 자기 길을 찾아 나아가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있는 무기력을 이겨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무기력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힘든 까닭이다. 또한 “타협점을 찾기 힘든 집단성을 보이는 아이들, 나를 표현하는 방법의 미숙함을 보이는 아이들도”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남을 이해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으리라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랑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사회에 나가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이곳 교사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믿음에 비롯한 것이다.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이해가 없다면 ‘대안’은 없다며 “학교에 남아있는 아이들도 상위 몇 %만 제외하면 이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고 현실교육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김교사. 하지만 “무기력만 이긴다면 아이들은 힘든 성장기를 보냈고 지금 어려운 시절을 이겨나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들 보다 훨씬 잘 살 것”이라며 이제 행복한 관계를 넘어 교사들과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을 기대하는 그에게서 아이들의 파릇한 꿈이 살짝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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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에 관심이 많다. 함께 쓴 책으로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여기 사람이 있다>,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재난을 묻다>,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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