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42

등록 2003.03.19 17:59수정 2003.03.1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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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위염의 의심하는 말에 부분노가 절절한 목소리로 송양에게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고했다.

"신 부분노 목숨을 아끼지 않고 폐하께 천재일우의 기회를 알리러 왔건만 받아들여지기는커녕 의심만 받으니 이는 죽느니만 못하옵니다."


머리를 바닥에 찧는 부분노를 보고선 옆에 있던 협부도 통촉해달라는 말과 함께 덩달아 머리를 바닥에 찧다가 눈앞에 별이 아른거릴 지경이었다. 송양은 부분노를 말리는 한편 그의 충정을 인정하는 의미에서 최정예 병사 팔백을 주어 서둘러 고구려로 진군하게 했다.

비류수가까지 서둘러 진군한 부위염은 병사들에게 술과 고기를 나눠주며 명했다.

"내일 아침에는 고구려의 왕성까지 단숨에 진격할 것이니 오늘밤은 마음껏 먹고 마셔라! 술에 흠뻑 취하지 않는 자는 군법으로 다스릴 것이니 그리 알라!"

병사들은 너도나도 진탕 퍼마시고 웃고 떠들다가 아무렇게나 누워 잠들어 버렸다. 부위염과 협부는 마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다음날 아침, 처음으로 일어난 병사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선 서둘러 동료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이거 봐! 우리 무기와 말이 전부 다 없어졌어!"

병사들이 부위염의 막사로 달려갔지만 그곳에는 송양 앞으로 보내는 서찰 한 통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저길 봐라! 고구려의 병사들이다!"

병사가 가리키는 곳에는 고구려 병사 십 여명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무기는커녕 옷조차 제대로 입지 못한 비류국 병사들은 서둘러 달아나기 시작했다.

부분노가 송양 앞으로 남긴 서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비류국이 고구려의 영토를 자주 침범하는 바 이를 능히 힘으로 억누를 수 있으나 이는 양국간의 신뢰에 흠을 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해서 신묘한 계책으로 그대를 한 수 가르치려는 것이니 차후 이러한 일이 없도록 하라.'

송양은 거의 반 미친 사람처럼 손에 잡히는 물건을 집어던지며 화를 내었다.

"이놈들이 어찌 이리 날 모욕할 수 있는가! 전력을 다해서라도 고구려왕 주몽의 뼈를 씹고야 말리라!"

흥분한 송양 앞에 부위염이 나서서 침착한 어투로 달래었다.

"고정하시옵소서. 이미 상당한 병량을 힘 한번 못써보고 저들에게 빼앗긴지라 병사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옵니다. 게다가 민심도 동요하고 있으니 이때 병사를 일으킨다는 것은 무리 옵니다."

송양은 분했으나 부위염의 말이 틀린 것이 없기에 속으로 삭힐 수밖에 없었다. 이때 전령이 와 송양에게 보고했다.

"고구려의 사신이 왔습니다."

"뭐라? 어서 들라고 해라!"

송양앞에 대령한 사신은 묵거였다. 송양은 얼굴이 붉어진 채 묵거에게 소리질렀다.

"네 놈들이 간교한 수작을 부려 날 모욕했으니 네 놈이라도 목을 쳐서 분을 풀어야겠다!"

송양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묵거는 전혀 동요되지 않았다.

"고정하시옵소서. 대(大)비류국의 왕께서 이만한 일에 제 목을 원하시다니오. 전에 가져간 병량은 고스란히 도로 가져왔습니다."

송양은 묵거의 말에 화를 잠시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 고구려에서 원하는 바는 비류국과의 우호입니다. 비류국에서 고구려의 영토를 침입하는 일이 잦으나 이를 병사를 내어 물리치는 것이 온당치 않다고 여겼기에 서로한번 웃어 나볼까 하는 심정으로 속임수를 부려 본 것뿐이옵니다. 진상품으로 담비가죽 10장과 호피 1장을 가지고 왔으니 받아주십시오."

웃는 낯에 침을 뱉을 수 없다는 심정으로 송양은 이를 받아들이며 답례로 비단 20필을 주어 보내었다. 그렇다고 고구려와 비류국의 긴장관계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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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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