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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보일배의 대장정을 내딛은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 ⓒ 이주원
갯내음이 났다. 바다는 손님을 맞을 때마다 항상 비릿한 갯내음부터 풍긴다. 새만금을 품고 있는 변산 앞바다도 다를 바가 없었다. 바다는 언제나 어머니의 품 같은 넉넉함으로 사람들을 반긴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바다는 나지막하게 말한다.
"아느냐고, 새만금의 생명이 지금 이 순간 죽어가고 있는 걸."
바다는 자식을 품어 키우는 어미의 본능처럼 수많은 생명들의 예정된 죽음을 경고한다. 바다가 품은 생명은 일용할 양식이 되어 인간을 키우는데, 바다의 젓줄에 생명을 이어온 인간은 오히려 제 어미를 죽이고 있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한반도에서 21세기 최대의 학살을 피할 수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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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창사의 해맑은 부처님 ⓒ 이주원
새만금에 자리잡은 해창사(海倉寺). 세 평 남짓이나 될까. 인간들의 개발 야욕에 헛되이 스러진 바다생명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색다른 조그만 절이다. 규모가 가장 큰 사찰의 신자 수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해창사에 비교할 수 있으랴. 수백만, 수천만의 바다생명(어패류)이 모두 이 절의 신자들이다.
어느새 환경운동의 상징이 되어 버린 수경스님(52)께서 이 절의 주지이다. 해창사 주지 수경스님과 '기도의 집' 성당 주임신부 문규현 신부(57)는 환경 지킴이들이다. 그래서인지 이 두 분이 만나면 항상 사고(?)가 났다. 한국 환경운동의 새로운 시위모델인 삼보일배(三步一拜)를 최초로 시작하고 정착시킨 이들이 바로 이 두 분이다.
그런데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또 한 번 큰 사고를 냈다. 노무현 현 정부에 들어서도 여전히 개발을 중단할 여지를 보이지 않자, 새만금 간척사업의 중단을 세상에 호소하기 위해 새만금 들머리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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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만금을 지키기 위해 결의를 밝히고 있는 4대 종단의 대표들 ⓒ 이주원
3월 28일 오전 10시 <새만금 갯벌과 온 세상의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삼보일배>가 500여명의 참석한 가운데 시작되었다.
최열 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인사말에서 "21세기는 예상과 달리 희망찬 미래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미국에 의해 시작된 이라크 전쟁이다. 전쟁이야말로 가장 극단적인 환경파괴이다. 전쟁은 환경과 인간관계 등 모든 것을 파괴한다"면서 "오늘 우리는 새만금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죽어가는 바다생명을 지키고자 이 자리에 섰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 총장은 "우리들뿐만 아니라 세계시민이 이 새만금을 지켜보고 있다"면서 "우리가 이곳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더 큰 것을 잃고 재앙에 빠질 것이라"고 새만금 간척사업이 불러올 위험성을 경고했다.
굳이 최열 전 황경운동연합 총장이 경고하지 않더라도 모든 참석자는 뼈저리게 간척사업의 위험성을 느끼고 있었다. 쌀이 남아도는데, 농지확보를 위해 1억 2천만평이나 되는 바다를 메운다니. 거짓도 이런 거짓말이 어디 있으랴. 차라리 쌀 시장 개방을 안 하고 이런 주장을 한다면 믿을까. 도무지 농업기반공사의 억지를 들어줄 수가 없을 지경이다.
녹색연합 공동대표 박경서 신부는 "새만금에 설 때마다 인간이란 존재는 많은 생명들과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는 존재"라며 "새만금의 바다생명들의 울부짖음에 하나님과 부처님께서 함께 슬퍼하고 계신다"고 간척사업의 중단을 절실히 호소했다.
'바지락죽'으로 유명했던 해창개펄. 언제나 찾아가도 갓 캐 올린 바지락으로 끓인 '죽' 맛은 계승해야할 한국 전통의 맛이었다. 그런 해창개펄이, 어느새 자갈밭이 되어 더 이상 바지락이 나지 않는단다. 길가에 보이는 '바지락죽'이라고 쓰인 간판을 보고 식당이 들어가더라도 전통의 그 맛이 아니란다. 이미 멀리서 사온 냉동 바지락을 사용해 죽을 쑨다고 한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얼마나 많은 경제적 이익을 줄지 몰라도 계승해야할 '전통의 맛'을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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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아한 어깨선이 아름다워라 ⓒ 이주원
단아한 어깨선을 타고 내려와 하늘로 흰 천이 뿌려진다. 혹시 바다생명이 다칠라 발걸음조차 조심스럽게 내딛는다. 곱디고운 여인네가 몸짓을 한다. 인간들의 야욕에 숨져간 바다생명들의 한을 풀기 위해 몸짓을 한다.
"잘 가시게. 내 이 자리에 서서 깊은 참회를 올리니, 부디 용서하게나. 더 이상 헛된 죽음 없도록 이 한 몸 으스러진대도 물러서지 않으리. 무릎이 짓물러 뭉개진대도, 헛되이 죽어간 자네들에게 용서를 빌겠네. 부디 용서하시게."
여인의 몸짓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이여…."
검은 옷 곱게 차려입은 수녀님들의 노랫소리가 새만금 해창개펄에 퍼진다. 수많은 바다생명들이 아마도 수녀님들의 노랫소리에 위안을 받지 않았을까. 합창이 끝나고 10여분이나 지났을까. 틱낫한 스님께서 일행들과 새만금 삼보일배 현장에 방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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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로움과 내 안의 깨어있는 마음을 설법하는 틱낫한 스님 ⓒ 이주원
틱낫한 스님께서는 'mindfulness'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 뒤 이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정토는 다른 어떤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자리, 우리 안에 존재한다"고 가르침을 주신 뒤 "불자들은 물론 여기 계신 타 종교인들도 '걷기 명상'을 한다면 하나님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하시면서 '걷기 명상'의 중요함을 거듭 강조하셨다.
아쉬웠다. 틱낫한 스님이 훌륭한 스님임을 부정하기도, 평화의 가르침을 전하는 수행자임을 부정하기도 싫다. 그러나 시청 앞 집회에서도 그랬듯이 새만금 현장에서도 이벤트를 하듯이 반복되는 메시지와 걷기 명상에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다.
12시 30분.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를 선두로 삼보일배, 그 대장정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삼보일배를 시작한 지 30여분이 흘렀다. 두 분의 얼굴이 벌써부터 벌그스름하게 달아올랐다. 아무래도 두 분께 이 장정은 벅차 보였다. 과연 서울은 고사하고 16킬로미터나 되는 부안까지 갈 수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다. 이미 내딛은 걸음 되돌리자고 할 수야 없지 않은가. 두 분이 무사하기만 기도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 <새만금 갯벌과 온 세상의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삼보일배>는 부안에서 서울까지 300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하루에 6킬로미터씩 두 달에 걸쳐 삼보일배로 걸어 올라오는 고난의 행군이다. 들리는 말로는 수경스님께서 무릎이 많이 안 좋다고 한다.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 두 분에게 아무 일도 없이 무사하게 삼보일배가 회향되기를 부처님과 하나님께 빌고 또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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