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22일째.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합니다.
모든 국민의 눈과 귀가 이라크 전쟁에 쏠려 있는 사이 남해의 외딴 섬에서 벌어지고 있는 또 다른 전쟁은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보길도 주민 700여명이 부둣가에 나와 부용리 댐 백지화를 위한 주민 궐기대회를 갖던 날, 완도군은 보길 면민 모두에게 공문을 보내 공사를 강행할 뜻을 알려왔습니다. 주민들을 무시하는 행태가 극에 달했습니다.
도대체 완도군이 보길도 전 주민이 반대하는 댐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미친 듯이 날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궐기 대회가 열린 지난 27일, 아침부터 큰바람이 불더니 기어이 폭풍주의보가 내렸습니다. 하지만 집회에 참석한 주민들은 모두가 감격에 겨워했습니다. 주민들은 누구나 보길도에 이런 날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어떤 분은 역사적인 날이라고 했고, 어떤 분은 이제 우리도 눈 좀 뜨고 사는 세상이 오나보다 했습니다. 어떤 분은 우리도 이제 세상에 눈을 떠가고 있으니 걱정 마라고, 매일 기도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나 또한 설움에 복 바쳐 눈물을 흘렸습니다.
" 저렇게 크게 만들어 놓고 지금도 물 못 먹는디, 댐 올린다고 먹는다냐..."
" 정말 보길도 사람들 죽어 살었어,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여"
" 이렇게 마을 주민이 다 모인 거 첨이랑께 "
" 우리 말을 왜 안든는디야, 일단은 우리 말을 들어보고 뭐든 했어야제"
" 우리도 머리 깍장게"
" 그래도 정말 집회 신사적으로 하네"
" 군청 앞에 가서 뒹굴어 삐리야 돼는디"
" 근디 사람이 죽어가는디 일단 말려야 할 거 아녀"
" 댐 공사고 물이고 머가 그렇게 중요허다냐, 사람이 죽어가는디, 말려야제"
" 우리가 머라고 해서 들어준 적 있능가, 다 즈그들이 알아서 했제"
" 군청으로 가삐리야 된당게"
보길도 주민들의 뜻이 이러한데도 완도군은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합니다. 참으로 대책 없고 염치없는 집단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본인이 싫다면 먹이지 말아야 합니다. 억지로 먹은 음식은 살이 아니라 독이 되고 병이 됩니다.
주민들은 모두가 싫다는데 굳이 댐을 만들겠다는 심사는 어떤 심사일까요. 댐 공사 추진 과정에서도 주민 여론을 철저히 무시했던 완도군이 그토록 지탄을 받고도 잘못을 바로잡지 않으니 이를 어째야 할까요.
김종식 완도군수는 최근 보길도 윤선도문화축제 추진위원회에서 펴낸 '보길도와 윤선도'(도서출판 한림)란 책의 축간사를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길도는 남해의 조그마한 한 점의 섬이지만 우리 국문학사에 화려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고산 윤선도 선생께서는 이 보길도 부용동에서 노년을 보내시면서 시가문학의 백미인 저 유명한 '어부사시사'를 창작하셨습니다.
우리 군에서는 이러한 역사의 현장인 보길도를 자연 그대로 보존하면서 문학과 예술이 어우러진 관광 명소로 가꾸어 나가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있습니다. 동천석실 복원, 낭음계 주변 부지 휴식 체험 공간 조성, 낙서재 터 복원 등 고산선생의 유적지 복원과 선양 사업에 363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2005년까지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여 나갈 것입니다. 문화유적과 전통 문화는 선인들의 혼이 살아 숨쉬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조상들의 숨결이 어린 소중한 자산을 지키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길도와 윤선도>라는 책자 발간은 문화유적 보존과 전통문화 계승의 시금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의 현장인 보길도를 자연그대로 보존하면서 문학과 예술이 어우러진 관광명소로 가꾸어 나가고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한 완도 군수가 부용동 유적지를 훼손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댐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굳이 댐을 증축하지 않더라도 60%가 넘는 누수율을 먼저 잡고, 중수도를 설치하거나 담수화 시설을 도입하거나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는데 왜 댐만을 고집하는 걸까요.
이제는 분노할 기력조차 잃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어려서 고향을 떠났다 20여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 왔습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지 말라고 붙드는 것을 뿌리치고 돌아 왔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고향은 상처받아 무참했습니다.
선창리 망월산이 송두리째 깎여 나가 버렸고, 보길도 앞 바다 무인도 멍섬은 완도군의 허가를 받은 건설업자의 토석 채취로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내 고향 마을 부용리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어차피 고향에 뼈를 묻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보길도 주민만이 아니라 보길도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완도군은 미동도 없습니다.
완도군이 회개하길 기다리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인 듯합니다. 건설업자와 완도군, 환경부로 이어지는 전 완강한 토목 마피아들의 완력 앞에 우리의 주민들의 힘은 너무나 미약합니다.
더는 시간이 없습니다. 조만간 완도군은 다시 댐 공사를 시작하려 들겠지요. 하지만 완도군은 결코 댐 공사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절대로 댐은 올라갈 수 없을 것입니다.
댐 제방 위에 나의 무덤을 만들고 난 다음에야 둑을 쌓을 수 있을 것입니다. 40일이든 50일이든 나는 결코 단식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단식 40일째 되는 날 나는 물 마저 끊겠습니다.
사람에게 고향이란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할만큼 소중한 곳입니다. 고향이 곧 조국이며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를 위해, 조국을 위해, 고향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들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이제 작별의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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