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52

등록 2003.03.31 17:52수정 2003.03.3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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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틴다니, 무모한 희생만 낼뿐일세."

왕의가 답답하다는 듯 채진에게 말했다.


"그냥 이대로 허무하게 현도와 임둔을 내준다면 조정에 할 말이 없게 됩니다. 하지만 시도라도 하면 최선을 다해 수를 써 보았으나 어쩔 수 없다란 식으로 얘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럼 조정에서도 무조건 태수님에게 죄를 물라고 의견이 모아지진 않을 겁니다. 그런 다음 눈치를 보면서 환관이나 외척들을 적당히 뇌물로 구워삶으면 될 일입니다."

"과연 그렇군. 그대 말이 맞으이."

채진은 지체 없이 장수들을 보내 임둔군의 방비를 단단히 하라 일렀다.

반면 주몽은 현도군의 민심을 얻는 데에 주력해 임둔군으로의 진출이 늦어지고 있었다. 재사는 '속히 군대를 진군시켜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묵거의 말을 환기시키며 주몽에게 서두를 것을 종용했지만 주몽은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민심을 얻어 뒤를 든든하게 해야 이 땅의 진정한 주군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 묵거의 말도 맞지만 요동 태수가 흩어진 군사들을 모아 요수를 건너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오. 그동안에 우리는 천천히 임둔군을 치고 요수를 경계로 요동을 견제하면 될 일이오."


재사는 주몽 앞에서 물러서며 묵거가 주몽의 옆에 있지 않음을 아쉬워 할 수밖에 없었다. 묵거는 오녀산성에서 몸져누워 있었지만 한시라도 주몽의 일을 걱정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 왕비를 보좌하는 시녀가 약사발을 들고 들어왔다.

"왕비마마께서 약을 올리셨습니다."


묵거와는 물과 기름의 관계와도 같은 월군녀이지만 태대형이란 고위관직을 맡은 묵거가 병들어 누워 있다는 데에 왕비로서 무심할 수 없었던지 매일 약을 지어 올렸다. 묵거는 일어나서 정중히 두 손으로 약사발을 받아들고선 죽 들이켰다. 묵거는 일어난 김에 바깥으로 나가 깨알같이 별들이 빛나는 밤하늘을 보며 점을 쳐보았다.

'허! 무슨 일인지 점괘가 좋지 않군. 주군에게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터인데.'

묵거에게 약사발을 가져다 준 시녀는 매번 그러했듯이 묵거의 상태를 알리러 월군녀에게로 갔다. 월군녀는 비류국의 신하였다가 주몽에게 대형의 벼슬을 받고 충성을 맹세한 해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 묵거의 상태는 어떠하느냐?"

"별 다른 점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 그만 물러가 있거라."

시녀가 물러간 뒤 월군녀는 계속 해위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지금 고구려를 지탱하고 있는 힘은 소노부가 기반이 되어 받혀줬기 때문이오. 그런데 이번 출정에 소노부의 욕살인 소조를 남겨두고 간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요."

월군녀는 여러모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주몽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것도 그가 불안하게 생각하는 바이기도 했다. 이런 월군녀의 기분이 상할까 해위는 비위를 잘 맞춰주어 금세 월군녀의 신임을 받게 된 터였다.

"이 모든 게 묵거가 꾸민 짓입니다. 소노부가 전쟁에서 공을 세우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어야 되는데 그렇게 되면 계로부의 위상이 흔들릴까 싶어 잔꾀를 부려 주군의 시야를 흐리게 한 것이옵니다."

월군녀는 해위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렇소. 그 자는 사사건건 내 말에 반대를 하며 나와 폐하과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만 했소. 폐하도 그러하오. 동부여에 있는 예모라고 하는 여자를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 같아 섭섭하기 짝이 없소."

"설마 주군께서 그러하겠습니까? 하여간 묵거는 이제 명이 얼마 안 남았으니 모든 일은 저절로 잘 풀릴 것입니다."

월군녀는 해위의 말에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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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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