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의 언론정책이 난맥상으로 인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사진은 송경희 청와대 대변인이 청와대 소회견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주간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정부와 언론계 사이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청와대 브리핑의 혼선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정부차원의 새로운 취재시스템 방안이 발표되었고, 이를 둘러싼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서동구 KBS 사장의 임명에 대해 KBS노조는 강력 반발하며 파업 찬반투표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여기에 불을 지른 것이 노무현 대통령이 29일 행한 언론관련 발언이다. 노 대통령은 "언론은 구조적으로 대단히 집중된 권력을 갖고 있지만 국민으로부터 검증이나 감사받은 적이 없다"며 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고, "우리는 일부 언론의 시샘과 박해에서 우리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문제의 발언이 있은 이후 언론들은 강한 반발을 보였다. 노 대통령이 '일부 신문'이라 표현한 바로 그 신문들이 사설을 통해 노 대통령의 언론관을 일제히 비판하고 나선 것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그러나 반발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노 대통령에 대해 중립적 혹은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다고 평가되는 <한겨레> <경향신문> <문화일보> 등도 사설이나 기사를 통해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우려를 표하였다.
1일자 <경향신문>의 기사는 “대부분의 정상적인 기자들은 공술 바라고 기사 쓰지 않는다. 왜 언론 전체를, 허물어내야 하는 주류와 기득권의 아성으로만 몰고 가느냐. 왜 우군들마저 등을 돌리게 만드느냐”고 안타까워하는 어느 소장파 기자의 말을 싣고 있다.
이같은 기류는 현재 조성되고 있는 노무현 정부와 언론간의 '긴장'관계가 흔히 말하는 '조중동'과 노무현 정부간의 대립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우군으로 생각되던 매체들도, 언론개혁에 공감하던 소장기자들도, 언론노조와 KBS노조도 노무현 정부의 언론정책을 비판하며 긴장관계로 들어가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노무현 정부는 언론계 전체와의 대결을 감수해야 할 지 모르는 상황까지 예견되고 있다. 언론개혁이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현정부가 언론개혁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엉뚱한 쟁점들을 계속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청와대 브리핑제의 혼선이 계속되어도 이를 심각하게 여기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현정부가 시도한 브리핑제는 일단 신뢰를 상실하였다.
그런 상태에서 정부는 브리핑제가 낳고 있는 일방적 정보유통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채, 그보다 더 문제가 많아보이는 취재시스템 방안을 발표하였다. 거기에는 업무시간중에는 기자들의 사무실 출입을 금지하고, 인터뷰취재는 공보관을 통해 신청하도록 하는가 하면, 취재에 응한 공무원은 자율적으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등의 이른바 '독소조항'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거의 모든 기자들은 자유로운 취재의 제한으로 이어질 것을 크게 우려하였고, 그같은 반응이 단지 기우가 아니었음이 노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드러났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3급이하 직원을 별정직에서 계약직으로 전환하려 한다'는 일부 보도를 "나가서는 안될 정보"라고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같은 '정보'를 언론에 내보낸 사람에 대한 '배신감'을 표현하였다. 국가예산의 사용과 관련된 내용이, 더욱이 며칠후면 국무회의에 상정될 내용이 어째서 '나가서는 안될 정보'로 분류되는지 의문이다.
물론 청와대 행정관들의 낮은 보수를 조정해줄 필요가 있는 것도 분명하고, 계약직 전환을 급여인상을 위한 편법으로만 몰아붙인 일부 언론의 악의적 보도에도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노 대통령이 그러한 내용이 언론에 나가서는 안될 청와대 내부의 기밀처럼 생각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정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언론에 나가도 될 정보와, 나가서는 안될 정보가 규정될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KBS 사장 선임 문제만해도 그렇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언론정책고문을 지냈던 서동구 사장이 임명될 경우 KBS 안팎의 반발이 거셀 것임은 이미 예고되었던 일이다. 그럼에도 결국 '내정설'이 현실로 나타나버렸다. 물론 청와대는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았고 KBS 이사회의 결정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만 하기에는 이미 현정부의 의사가 언론계 안팎에 너무 많이 알려져 있었다. 특정인의 기용문제를 가지고 지금 언론계의 공격을 받는 것이 언론개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음을 생각했다면, 해법은 충분히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다보니 상황이 이상해지고 있는 것이다. 언론계가 자유로운 취재와 알권리, 그리고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고 있고, 현정부가 이를 제약하거나 침해하고 있는 것으로 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현재 노무현 정부가 언론계와 조성하고 있는 긴장은 언론개혁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소모적인 긴장이 되고 있는 셈이다.
정기간행물법 개정작업이야 여소야대의 국회현실 때문에 당장에는 도리가 없다 하더라도, 현행 법의 테두리 내에서도 언론시장의 정상화와 개혁을 위해 할 일은 많다. 그런데 그같은 일은 젖혀두고 언론에 대한 적대감, 취재제한, 방송의 정치적 중립 훼손...... 이같은 쟁점들이 전면에 부상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런 내용들을 가지고 언론과 정부가 다투면 다툴수록 결국 정부의 상처가 커지게 되어있음을 왜 내다보지 못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언론정책의 총체적인 난맥이다. 앞에 소개한 어느 기자의 말처럼 '우군'까지도 등을 지게 만드는 좌충우돌식 언론정책이다.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언론정책의 난맥은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일까. 혹자는 거대 신문들로부터 박해를 당해온 노무현 대통령의 체험이 지나친 피해의식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말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이 깔려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정서가 그렇다 해도, 청와대 내부에서 현재의 언론정책에 대한 별다른 문제제기가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권이 출범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청와대내에는 일사불란함만 있지, 서로를 평가하고 견제하는 모습은 발견하기가 어려운 것인가.
청와대에서 일하는 분들이여, 한번 생각해보시라. 지금이 취재제한이니 아니니 하는 문제따위로 언론과 전선(戰線)을 형성하고 정권의 힘을 소진하고 있을 때인가. 도대체 지금 청와대의 언론정책은 누가 만들고 책임지고 있는 것인지, 한번 속시원히 답이나 들어봤으면 좋겠다.
이렇게 가면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언론개혁 = 취재제한으로 나타나는 현실에서는, 언론개혁의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그같은 언론정책에 가세하는 것으로 해석되게 되어있다.
굽어져있던 봉을 바로 펴려다가 다시 반대쪽으로 굽어지게 만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상황을 조금 더 무겁고 심각하게 봐야 한다. 언론개혁의 대의를 갖고 하는 일들을 곡해해서는 안된다는 식으로 넘어갈 일들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이후 지금까지의 언론정책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돌아보기 바란다. 정부와 언론 사이의 긴장은 소모적인 긴장이 아니라 생산적인 긴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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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군'들마저 등 돌리게 만드나 지금이 언론 맞서 힘 소진할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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