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저녁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열린 촛불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이 반전 구호를 외치고 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라크전 파병을 둘러싼 초기의 논점이 대체로 '명분'과 '국익'에 있었다면, 최근에는 파병과 국익의 상관관계로 좁혀지고 있다. 여전히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명분있는 전쟁이라며 파병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일부의 목소리가 있긴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부당하고 명분없는 전쟁이라고 보는 여론이 70-80%에 달하는 것은 이를 국민들의 반전 여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라크전 파병이 '정당성'은 없지만 '불가피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인식은 파병 반대 여론 못지 않게 높은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는 북핵 문제, 한미관계, 경제 문제 등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특히 "이라크 다음에는 북한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한편으로는 강력한 반전 여론의, 다른 한편으로는 파병 찬성 여론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전략적 실수
그러나 정부와 보수 언론, 그리고 여야의 상당수 의원들이 파병의 불가피론의 근거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연계시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이는 "침략전쟁에 파병을 할 경우, 미국이 이라크 다음에 북한을 같은 명분과 논리로 공격하려고 할 경우 이를 막을 수 있는 명분과 논리를 상실하게 된다"는 지적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노무현 정부가 '논리적으로 관계가 없는' 이라크전 파병과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연계시킬 경우, 뜻하지 않은 근본적인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일단 두 가지 문제를 연계시켜 놓은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전 파병을 '대가'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발언권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 만큼 미국을 지원해야 한다는 '이상한 등식'에 빠져들게 되기 때문이다.
세계전략 차원에서 대 이라크, 대북한 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에게 있어서 한국의 이라크전 파병은 '고마운 일'이 될지 모르지만,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즉, 노무현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부시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이라크전 파병과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사이에 '거래의 등가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래의 등가성이 없는 문제들을 무리하게 연계해 주고받기식 외교를 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하고, 이는 곧 파병의 규모와 성격, 그리고 전비(戰費)를 점차 부시 행정부의 구미에 맞게 늘려나가야 한다는 '함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