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뼘의 땅도 물려주지 않았던 아버지의 유산

“노루야 다 먹지말고 우리 식구 먹을 것도 남겨다오”(2)

등록 2003.04.01 11:43수정 2003.04.0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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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밭을 통해 몸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까지 챙깁니다. 도시 생활을 할 때는 술집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또한 스포츠나 영화관람 등 이러저러한 문화 활동을 통해 기분을 전환 시켰지만 이제는 산행이나 밭작물을 통해 기분을 전환시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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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작물들의 새싹이 올라오고 커 나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살맛 납니다. 죽어 가는 뇌 세포들이 밭에서 솟아오르는 새싹들만큼이나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 듭니다.

“작년에 농약을 안쳤더니 노루가 콩밭을 다 망쳐 놓았는데, 올해는 농약을 많이 치면 괜찮을 거유...”

옆집 희준네 외할머니 말씀이 노루들은 농약을 친 콩을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도 나는 농약을 치지 않을 작정입니다. 노루도 먹지 않는 오염된 작물을 어떻게 우리 자식들에게 먹일 수 있겠습니까?

노루가 밭을 다 망쳐도 우리는 노루보다 훨씬 더 살만 합니다. 우리 식구가 아무리 노루와 친한 척을 해도 그런 마음과는 상관없이 노루는 우리 식구, 특히 ‘갑돌이’와 ‘돌진이’, 두 마리의 개 때문에 늘 생명의 위협을 느낄 것입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노루가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빚더미에 눌려 농촌 생활이 아사 직전인데 또 뭔 싸가지 없는 소리를 자꾸만 주절거리고 있냐고 욕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나는 그냥 농약을 주지 않는 밭에 나가면 기분이 좋습니다. 흙을 만지는 게 너무나 좋습니다. 나중에 칡 넝굴이나 잡초 때문에 고통을 겪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주 좋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 10여 년을 시골에서 살았고, 또 지금은 어른이 되어 6년째 시골에서 살고 있지만 농사를 업으로 하여 의식주를 해결하는 농부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도시 사람도 아닙니다. 생활비의 반은 도시를 통해 충당하고 그 반쯤은 텃밭을 통해 해결해 나가는 어정쩡한 반거충이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농사꾼이셨습니다. 한동안 땅을 일궈서 우리 7남매를 먹여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은 있습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농가 빚 때문에 늘 성난 황소가 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 분들은 농가 빚 때문에 뿔다구가 나도 농사일을 계속합니다. 목돈을 만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농사를 짓지만 때로는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농사일에 손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 나는 어릴 때부터 그게 늘 궁금했습니다. 의문이었습니다. 먹고사는 일이 농사일 밖에 없어서? 단지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농사일을 전부처럼 알고 살다 가셨던 우리 아버지께서는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수확기가 돌아오면 한바탕 벌여야 할 춤판은 고사하고 시름에 겨워했던 날들이 더 많았던 아버지, 그럴 망정 밭에서만큼은 미소가 번졌던 아버지였습니다. 새벽 밭에 나가 솎아 온 무녀리 배꼽참외들을(상품가치가 없는) 기분 좋게 자식들에게 내밀던 아버지...

신작로가 생기고 점점 마을이 도시화 돼가면서 농사일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께서는 도시에 맞는 일을 통해 더 많은 돈벌이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아버지의 손아귀에는 삽 대신 술병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농사일을 하실 때는 감기 한번 제대로 앓아 본적이 없었다는 아버지께서는 결국 건강마저 잃고 돌아가실 때까지 병마와 싸워야 했습니다.

나는 밭에 나가면 늘 미소가 번졌던 그런 가난한 아버지의 참모습만을 떠올릴 것입니다. 뱃속 편하게 이런저런 골치 아픈 생각은 다 접어두고 그저 내게 밭을 갈아 씨를 뿌릴 수 있게 해준 땅에게 감사 할 것입니다. 농약을 거부하는 댓가로 수북하게 솟아오를 잡초며 병충해 등, 골치 아픈 일들은 그때 가서 생각 할 것입니다. 최소한 없던 땅이 생겼으니 지금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할 것입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산비탈 밭을 매만지면서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가만히 느껴 봅니다. 평생 땅과 함께 살았던 농투성이 아버지, 하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단 한 평의 땅도 소유하지 못했던 아버지. 이 너른 세상에 손바닥만한 땅 한 평 남기지 않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을 잠언처럼 떠올려 봅니다.

“너희들 7남매에게 땅 한 평 남기지 않고 죽을 수 있어서 오히려 내 맘이 편하구나...”

남길 땅이 없으니 재산 싸움이 벌어질 염려가 없다는 뜻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속뜻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땅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도사였던 아버지, 아버지의 유언은 단지 형제들간의 우애만을 강조 하셨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는 땅의 진실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단 한 뼘의 땅이라도 물려 주셨다면 나는 아마 지금처럼 땅에 대한 애정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땅을 단지 돈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생명을 자라게 하는 땅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본래 땅은 어느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라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땅 욕심보다는 자식 욕심(교육)이 더 컸던 아버지, 아버지께서 그랬던 것처럼 나는 여전히 내 소유로 된 땅은 단 한 평도 없습니다. 단 한 평의 땅도 없지만 나는 얼마든지 땅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땅에서 별 탈 없이 온갖 것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아내가 그럽니다.

“이제 아예 아침부터 밭에서 사네, 밭에서 사셔... 당신 도시락 싸 줄까?”
“좋지!”
“이제 원고는 안 써? 뭘루 먹구살려구...”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노루도 지 새끼 잘도 먹여 살리는데, 다 먹구 살게 돼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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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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