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55

등록 2003.04.03 17:52수정 2003.04.0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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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입니다!"

해위와 담소를 나누고 있는 월군녀 앞에 허겁지겁 사람이 달려와 부복하며 아뢰었다.


"이곳으로 한(漢)나라의 대병이 요수를 건너 진군해 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묵거가 몸져누워 있는 지금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이는 월군녀였고 이번 일은 일종의 시험이 될 판이었다.

"적의 숫자는 얼마나 되며 지휘관은 누구인가?"

"그게 저...... 알 수가 없습니다. 혹자는 만명이라고도 하고 천명정도라고도 하고......"

"멍청한 것! 그런 것쯤은 알아와야 하지 않느냐! 썩 내 앞에서 꺼져라!"


소식을 알린 사람은 머리를 감싸쥐며 허겁지겁 월군녀 앞에서 물러났다. 월군녀는 해위에게 어찌하면 좋겠냐며 의견을 물었지만 해위 역시 별 뾰족한 수는 없었는지 원정중인 주몽에게 사람을 보내 알리자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건 좋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군사를 돌릴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되면 대사를 그르치게 되지요. 더구나 여기서 임둔군까지는 먼 거리입니다. 사람을 보낸 다 해도 제때 올 수 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


해위는 그 말에 막막한 심정이었지만 괜히 월군녀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월군녀는 결심을 굳힌 듯 시종에게 명했다.

"소조를 부르라. 그에게 2백여명의 병사가 있으니 어떻게 막아볼 수 있을 것이다."

월군녀의 말에 해위는 더욱 걱정되었다. 적의 수가 최소 천명은 된다고 하는데 이백명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앞길이 막막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해위가 걱정하는 것처럼 월군녀가 무모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네는 군사들을 이끌고 한나라 군사들의 뒤를 찔러 괴롭혀서 진군을 늦추어라. 여기서는 지금 즉시 사람을 보내어 폐하께 도움을 청할 것이다."

같은 소노부 사람인 소조는 월군녀의 말이라면 틀림없이 이행하는 터였다. 소조는 즉시 군사를 이끌고 오녀산성을 나왔다. 병으로 앓아 누워있던 묵거가 때마침 이 광경을 보고선 병사들에게 물어보았다.

"듣자하니 한나라 병사들이 이리로 쳐들어온다고 합니다. 이를 막으러 가는 길입니다."

"뭐라고! 어째서 내게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단 말인가!"

묵거는 왕비의 처소로 헐레벌떡 뛰어가 시녀들을 제치고 인사치레도 없이 월군녀 앞에 나타났다.

"무슨 일인가? 그대는 지금 몸조리를 잘 해야 할 터인데."

이미 무엇 때문에 찾아왔는지 알고 있는 터였지만 월군녀는 짐짓 모른 채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어쩌시려고 남은 병사들을 밖으로 내보내어 싸우게 하셨습니까?"

묵거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월군녀를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월군녀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괘씸한 생각이 들어 큰 소리로 답했다.

"그대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어째서 고구려의 태대형인 제가 관여할 바가 아닙니까? 이곳 오녀산성은 한 명이 능히 만명을 당할 수 있는 천험의 요새입니다. 적들은 속전속결을 노려 왕성인 이곳을 노릴 것입니다. 여기서 버티기만 해도 충분히 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왕비마마께선 병사를 내보내어 적을 교란시켜 진격을 늦추려 하시려는 모양인데 소조는 이를 능히 감당해낼 자가 아닙니다."

월군녀는 크게 화를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묵거를 가리키며 꾸짖었다.

"내가 소노부 사람들을 어떻게 알기에 그런 소리를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냐? 내 계책만 옳고 나는 그르다는 것이냐? 어찌 이 나라의 태대형이라는 자가 윗사람의 심기를 이다지도 거슬릴 수 있단 말이냐!"

묵거는 뭔가를 더 말하려다가 급기야 입에서 피를 약간 토해내고 말았다. 보다못한 해위가 시종들을 시켜 묵거를 부축하여 밖으로 내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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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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