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열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사랑을 테마로 하기에 오래 회자되는 강한 생명력을 지녔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 작은 연극계에서도 매년 올려지고 있다. 이번에 극단 가변이 지난해에 선보였던 동일 극을 변주해 올린 <트랜스 십이야>(박재완 연출, 창조콘서트홀)또한 셰익스피어의 <십이야>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지난 극과의 차이점은 전편을 보지 못한 관계로 잘 알 수 없지만 <트랜스 십이야>는 원작의 성 역할을 '트랜스'하여 극을 꾸몄다. 바꾸면서 극중 인물의 이름도 일부 다르게 가져갔다. 그리하여 남장 여인 게임은 여장 남자 게임으로 바뀌어 사랑의 장난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 채비를 갖추었다.
하리수가 대중적 사랑을 받는 이 시점에 <트랜스 십이야>가 택한 원작 설정 바꾸기는 단순한 시술이 아닌 사회적 이슈의 연극적 수용 및 성의 긍정적인 기운을 재미나게 체험케 하는 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극은 전적으로 원작을 접하지 않았을 사람들 수준에 맞추어진 터라, 그러니까 <십이야>의 기본 스토리 골격과 일부 대사만을 취했기 때문에 해프닝에 기초한 재미는 있지만 성을 가장한 데서 벌어지는 셰익스피어극 특유의 운명의 아이러니 등은 많이 살지 못했다. 또 여장 남자라는 설정이 주는 '아슬아슬함' 또한 크게 느낄 수 없으며, 동성애 장난으로 비치기도 한다.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도 볼 수 있듯, 여자는 무대에 설 수 없는 당대의 현실이 반영되어 있을 <십이야>의 남장 여자 에피소드에는 단순 성 역할 바꾸기 재미 이상의 무엇이 있다.
한편 <트랜스 십이야>는 세바스(홍수진)의 역할을 적게 둠으로써 극 후반 커플 짝짓기에서 완벽한 교통정리를 시키지 못한다. 봐이크(유승일)에 목매던 올리(오동식)가 봐이크의 성의 실체를 알고는, 극적 기능이 미비했던 세바스와 냉큼 맺어지는 건 아무리 사랑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여도 매끄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아무래도 <트랜스 십이야>가 대중성에 너무 목맨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연극은 드라마보다는 볼거리에 많이 치중하고 있다. 토끼와 마리스(연보라) 등의 출연 빈도가 잦아 코미디와 뮤지컬적 재미가 많이 보여지는 것이 그것이다.
상업적 재미를 위해서 드라마를 뒷전에 두는 것은 큰 잘못이다. 잠깐 즐겁게 할 순 있어도 돌아가는 관객의 길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 극은 재밌으면서도 오래도록 묘한 사랑의 감정과 밀어가, 가슴 그리고 입가를 떠나지 않는다. <트랜스 십이야>를 보고나서 무얼 되새김질 할 수 있을까? 노란 스타킹이라도 신어보고 싶어지는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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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가 좋아할까? 연극 <트랜스 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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