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안 '가족 납골묘'를 소개합니다

장남이 무조건 조상 제사 책임지는 관행도 개선해야

등록 2003.04.06 17:54수정 2003.04.1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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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앞으로 150여년 정도는 묘지걱정 안해도 될 우리가족 납골묘 전경이다.

앞으로 150여년 정도는 묘지걱정 안해도 될 우리가족 납골묘 전경이다. ⓒ 윤도균

우리 가정은 이미 20여년전에 두분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난후 항상 큰 형님 댁에서 조상님들의 제사를 올리고 있다. 고조부, 증조부, 할아버지, 양위분들과 그리고 부모님 두 내외분을 모두 합치면 8분의 기제사를 모시게 된다. 거기에 추석명절, 설 차례까지 합치면 1년에 10번의 제사를 올려야 한다.

이쯤 되고 보면 큰아들 큰며느리의 인고가 어는 정도일지 말을 안해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조상님들을 모시는 제례 행사도 큰 형님 두내외분께서 건강하셨을 때 가능했지 막상 큰형님 두내외분께서도 연세가 드시고 건강이 점차 노쇠하게 되고 보니 쉽지 않다.

사실상 큰 형님 내외분께서 제례 준비를 하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도 큰자식이라는 책임 때문에 두분은 아무런 불평도 하지 못하고 묵묵히 책임을 다하신다. 큰형님 내외분의 이러한 무언의 고통을 줄곧 측면에서 지켜봐온 나로서는 두분에게만 힘이든 제례대물림을 시켜드린다는 것이 늘 마음에 부담이 되고 신경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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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5-30여평의 묘지에 두분이 일반묘에 매장이 되셨다.

25-30여평의 묘지에 두분이 일반묘에 매장이 되셨다. ⓒ 윤도균

삼남인 내 입장에서 생각을 해봐도 큰 형님 내외분이 너무 많은 고생을 하신다. 말로는 형님 내외분의 고통을 이해하는 척 하면서도 정작 큰형님 두내외분께서 힘들게 제례 준비를 하시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제례준비를 도와 드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서도 체면은 중하게 생각하여, 아니면 벼룩도 낯짝은 있다고 제사 시간 다되어서 간신히 코빼기를 비추며 염치없으니 주머니에서 몇 푼 안 되는 성의를 보태고 나름대로는 할 일 다했다는 식으로 돌아오곤 했다. 심지어 제사후의 설거지도 변변히 도와드리지 못하고 돌아오려 하면 맘씨 좋은 형님 내외분은 오히려 더늦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라고 재촉을 하신다.

참으로 큰형님 두내외분께 면목 없는 뻔뻔한 동생이었다. 다 똑같은 부모의 자식인데, 특별히 부모님으로부터 무엇하나 변변히 물려받으신 유산도 없으신데도 오로지 장남이라는 이유 때문에 힘든 일을 감당 하시면서도 누구에게 말 한마디 못하시는 형님 내외분에게 나는 늘 죄를 진 것 같았다.

장남에게 시집온 팔자 때문에 똑같은 며느리 입장인데도 조상님을 섬기셔야 하는 형수님은 무슨 운명이란 말인가? 어떤 때는 형님 두 내외분의 가족 사랑 희생 정신에 눈시울이 젖어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늘 맘속으로 우리 가정에 축제 분위기 속에 진행될 수 있는 제례문화는 없을까하는 생각에 유교적인 제례문화를 개선할 궁리를 하게 되었다.


a 어린 손자들도 조상님 납골묘 복토작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땀을 흘리는 모습

어린 손자들도 조상님 납골묘 복토작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땀을 흘리는 모습 ⓒ 윤도균

그러던차 지난해 1차 계획으로 고향 선산 사방팔방 11곳에 산재되어 있는 조상님들의 묘를 개장하여 화장을 모셔 납골묘를 조성하기로 계획하고 추진하였다. 의외의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하여 몇 번의 중도포기 위기를 무릅쓰고 드디어 고향 선산에 우리 가족 납골묘 48기용을 조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는 2차계획으로 거의 매월 가정의 큰 행사로 전해 내려오는 조상님들의 기제사를 가능하면 하루에 모실 수 있도록 제례문화를 개선했다. 청명, 한식절 양일중 택일한 뒤 현재 납골묘에 모신 11분의 기제사를 현지에서 합동춘향제로 올리기로 생각하고 형제들과 긴밀한 의논을 하여 실천에 옮기게 된 것이다.


제례 준비도 항상 큰 형님 내외분께서만 힘들게 준비하시는 수고로움을 덜어 여러 가족이 다함께 준비하기로 했다. 시간적으로 약간의 여유가 있으신 형님 댁은 2-3가지의 전과 부침종류를 책임지시고 늘 시간에 쫓겨 사는 나는 제물과 육류 준비를, 동생은 현지에서 가족들이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식사 준비를 분담키로 했다.

이렇게 철저한 제례 준비를 하여 지난 5일 납골묘가 있는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마산리 선영을 찾기 위하여 가족들이 각자의 집에서 출발하였다.

a 마을 어르신들께서 우리 조상님들의 묘에 배례를 하시는 모습

마을 어르신들께서 우리 조상님들의 묘에 배례를 하시는 모습 ⓒ 윤도균

형님의 고향마을인 그곳에는 우리 가족이 가족납골묘를 조성해 춘향제를 모신다고 하니 많은 어른들이 구경하러 나와있었다. 내가 지난번에 올렸던 납골묘 기사를 보고 우리가족의 납골묘를 견학하고 하신 독자분들도 상당수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요즘처럼 봄철에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산세가 야트막하고 관망이 좋아 보이는 곳은 어김없이 묘지가 차지하고 있다. 묘지 자체도 대부분 호화 묘지로 꾸며져 묘지 강산이 따로없다. 우스갯말로 어쩌면 우리나라 애국가를 다시 써야 할 판이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아니라 묘지 삼천리 화려강산으로 말이다.

우리 가족들은 서둘러 준비하여간 제물을 제상에 차려놓고 조상님 수대로 열 한잔의 술을 따라 놓고 우리 가족이 새로 마련한 제례순서에 의해 제례를 올렸다. 구경을 오신 어른들께서는 이구 동성으로 납골묘를 참 잘 모셨다고 하셨다. 마을에서 우리 가족 납골묘에 대한 관심이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추후 자문을 구하겠다는 말씀도 덧붙이신다.

a 나

ⓒ 윤도균

고향마을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고 난 후 우리 형제들과 가족들은 작년에 심은 납골묘 잔디에 뗏밥(복토)을 하기 위해 흙을 퍼날랐다. 어린 손자 아이들까지 나서서 힘든 줄도 모르고 땀을 흘리며 일손을 돕는다.

천진스런 아이들의 모습에서 가족 납골묘를 조성하고, 수도 없이 많은 기제사를 춘향제 한번으로 갈음하기로 한 일련의 일들에 대해 새삼 보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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