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 열흘째 무사 수행

성직자들만의 '고행'이 아닌 모두의 비폭력 직접 행동

등록 2003.04.07 01:33수정 2003.05.2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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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라크 공격 중단과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

이라크 공격 중단과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 ⓒ 마용운

자신이 빼앗기는 권리를 찾고, 잘못된 행정의 책임 소재를 따져 묻고, 목소리 높여 투쟁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런데 이것으로도 부족하다며, 내가 가진 것 모두 내놓고, 나부터 속죄하고 참회하겠다고,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만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말하는 바보같은 사람들이 있다.

보길도 댐 증축을 막기 위해 28일째 무기한 단식농성 중인 강제윤 시인, 핵폐기장 건설을 막기 위해 열흘째 무기한 단식농성 중인 김성근 교무, 그리고 역시 열흘째 새만금 살리기와 이라크 전쟁 중단을 위한 삼보일배 중인 4대 종단 성직자들.

삼보일배 수행자들의 원칙: 1)인터뷰 안 함 2)노숙 3)어떤 경우에도 차 안 타기

세 걸음 걷고 두 팔, 두 다리와 머리까지 땅에 닿는 절을 하면서 땅과 뭇 생명들에게 속죄하고 독기어린 죽음의 문명을 반성하겠다는 삼보일배는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이 목숨을 내걸고 하는 수행이다.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가는 내내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모두 길에서만 하겠고, 차는 절대 타지 않겠고, 인터뷰도 사양하겠다는 것이 원칙이다.

a 왼쪽부터 이희운 목사, 김경일 교무, 김숙원 교무

왼쪽부터 이희운 목사, 김경일 교무, 김숙원 교무 ⓒ 마용운

수경스님의 숨소리는 며칠 전부터 거칠었는데, 오늘은 더욱 가쁘게 들린다. 문규현 신부는 걸음을 걸을 때 발바닥으로 땅을 스치듯이 하는 게 매우 이채롭다. 자그마한 체구에 얼굴을 덮는 긴 수염과 두툼하고 넓은 테의 안경을 쓴 이희운 목사는 무릎은 꿇지만 절은 하지 않고 손에 쥔 십자가를 이마에 댄다.

절을 하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동작이라고 한다. 김경일 교무는 다리에 울긋불긋한 상처가 났다. 원광대학교 도서관의 김숙원 교무는 짧은 기간 참여하는 자신의 건강은 아무래도 괜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보약을 사양했다.

드문드문 푸릇푸릇한 보리밭이 녹색바둑판을 깔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 들판을 가로지르며 지나가는 새로 닦인 4차선 도로는 개발론자들의 동맥처럼 느껴졌다. 삼보일배 수행자들은 이 동맥을 세 걸음 걷고 한 번 이마를 땅에 댔다. 이들을 따르는 사람들은 허리를 숙였다. 생명에 대한 경외의 표시였다.

지난 30일에는 불교환경연대의 대절버스가 다녀갔다. 그 속에 장선우 영화감독이 끼어 있었고, 그는 두 손 모아 합장하고 붉어진 눈으로 삼보일배의 뒤를 따라 사람들 속에서 함께 고개를 숙였다. 수경스님의 무릎을 주무르며 착잡한 표정을 짓고, 다시 찾아오겠다고 밝혔다.

수경스님은 왼쪽 다리를 계속 절었고 "무릎은 좀 어떠세요?"라는 사람들의 물음엔 "아주 좋습니다"라고 하면서 "휴우~"하고 긴 숨을 내쉬었다. 문규현 신부는 쉬는 시간에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다. 찾아온 사람들을 맞으며 어깨를 껴안고, 손을 잡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땀을 많이 흘려서 어쩌나..."하는 사람들에게 문규현 신부는 "먹은 건 나와야할 거 아니야..."하고 답한다.

국제환경단체 '지구의 벗' 의장 리카르도 나바로가 찾아왔다. 두 팔을 벌려 나바로를 끌어안는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그들은 형제처럼 보였다. 수경 스님은 나바로 의장이 찾아와서 새만금 문제가 잘 해결될 거라고 한다. 나바로 의장은 삼보일배가 너무 놀랍고 세계를 바꿀 만한 일이라고 말한다.


햇볕이 뜨거워졌다. 진행팀에게는 밀짚모자가 지급되었다. 수경 스님은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낀 모습으로 사람들 모두가 웃음보를 터뜨리게 만들었다. 문규현 신부는 검은색 야구모자를 거꾸로 뒤집어썼는데, 마치 수염난 소년의 모습 같았다.

a 잠깐 휴식을 취하는 수경스님

잠깐 휴식을 취하는 수경스님 ⓒ 마용운

계화도 주민 염정우씨가 이희운 목사의 다리를 주물렀다. 이희운 목사는 기독생명연대의 공동대표로 소외받은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작은 교회인 전주의 나실교회를 맡고 있다. 작년 2월부터는 해창갯벌에 놓여 있는 컨테이너의 새만금 생명교회에서 일요일마다 목회를 주재한다.

삼보일배 9일째 아침, 실무자를 찾아 수행자들을 위해 가져온 보약 경옥고를 건네니 대뜸 말한다. "이거 경옥고죠? 경옥고는 벌써 있는데... 한의사들이 줄줄이 한약을 지어와서 순서 기다리는 한약들 많아요. 일단 넣어놓고요, 순서 돌아오면 드시게 하죠."

김제시에서 갖다놓은 이동 간이화장실에 들렀다가 천막을 접고 정리하는 일을 도왔다. 난방도 되지 않는 천막에서 또 하루밤을 잔 수행자들은 아침 체조로 몸을 풀었다. 수경 스님은 그냥 걸을 때도 다리를 절어서 사람들이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오전 8시가 약간 지나서 삼보일배 일정이 시작되었다. 오른쪽에 해를 두고 왼쪽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북쪽으로 나아갔다.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이희운 목사님, 김경일 교무, 김숙원 교무가 서고 그 뒤에 플래카드가 놓이고 사람들이 따랐다. 경찰차가 앞뒤로 에스코트했다. 며칠 전에 경찰차가 졸음운전을 하다가 삼보일배 행렬이 다친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비폭력 직접행동 - 뒤에 따르는 무리가 해야 할 몫

원광대 학생인 '짤씨'는 하루 참가를 위해 왔다. 전북 지역 대학에서 반전 활동 때문에 새만금 이슈는 좀 소강 상태지만 학생대중운동 단위에서 삼보일배에 결합하려고 오늘 왔다고 한다. 전북인권의정치학생연합 양혜진씨도 반전, WTO 교육개방 등의 굵직한 이슈 때문에 새만금이 학내에서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지만, 전북을 벗어나기 전에 삼보일배에 참여하는 것이 도리라고 여겨 달려왔고 1998년부터 해마다 새만금으로 갔던 환경현장활동을 올해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요일에는 군산 구시청 앞에서 새만금 사업 반대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a 9살 강빈이와 정명이의 삼보일배 부분참가

9살 강빈이와 정명이의 삼보일배 부분참가 ⓒ 마용운

그렇지 않아도 장난꾸러기처럼 생겼는데 앞니 네 개가 빠져서 더 개구쟁이 같은 9살 강빈이는 아버지를 따라서 삼보일배에 왔다. 처음에 말을 걸 때는 새만금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아빠가 끌고 왔다고만 딴청을 피우더니, 잠시 후 '새만금 갯벌을 살려 주세요'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떼고 있다. 그리고 삼보일배(실제로는 오보일배, 칠보일배)에도 직접 참여했다.

강빈이의 아버지 이원식씨는 원광대 사회복지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강의 때에도 워낙 새만금 반대, 반전 등의 이야기를 많이 해 왔다 한다. 인간만 소중한 것이 아니고 우리 민족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우주 속의 모두가 소중하다면서, 새만금 간척은 자연에 대한 국가적 폭력이라고 규정짓는다.

수원의 다산인권센터 상용씨는 새만금 반대 여론이 시들해진 것이 사실이라면서,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삼보일배 수행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한다. 성직자들의 수행은 그 뒤에 따르는 무리가 비폭력 직접행동을 어떻게 해나가느냐에 따라 의미가 증폭될 것인데, 대안언론조차도 '고행'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기자'들도 심심찮게 많이 만나게 되었다. 우석대 교지 '우석문화'의 새내기 기자인 '캔디'는 "행운의 오렌지예요"라며 오렌지를 건넸다. 우석대 역시 새만금이 큰 이슈가 되지 못한다고 전했다. 군산대 교지편집위원회의 장지연씨는 학교 여론이 더욱 좋지 않다고 말한다. 사업단이 학교에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사업 찬성이 주류이고, 교지의 검열이 있는데 새만금 기사를 쓰면 압력을 받는다고 한다.

자신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새만금 사업에 대한 환상이 있었으나 수습기자 때 새만금 갯벌과 운동을 취재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소외된 쪽에 서는 언론을 지향하기 때문에 교지편집위는 새만금 사업을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해마다 비판적인 기사를 내면 교수들이 우르르 몰려와 항의하기도 했단다.

새만금 사업이 거의 다 진행되었는데 이제 반대해서 뭐하냐는 의견에 대해 '전체 공정은 20%도 진행되지 않았으므로 기본적으로 틀린 전제이고, 설령 99%, 100% 완성되었다 해도 잘못된 것이면 되돌려야 하는 게 옳다, 생명은 %의 숫자 놀음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삼보일배에 대해 묻자, 처음에는 싸움이 아닌 비폭력 행동이 투쟁력을 저하시키는 것이 아닌가 거부감이 들었지만 지금은 내면의 성찰없이 남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감동... 새로운 도약의 계기

풀꽃세상의 수정씨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운동이 사람들에게 더 큰 반향을 줄 것이다, 새만금 사업 반대 운동은 지금까지의 운동과 다르게 보상권이나 이익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자연이 없으면 인간도 없다는 새로운 인식에 닿아 있다는 점에서 감동적이었다, 처음에는 며칠 못 넘기고 수행자들이 쓰러지지 않을까 우려가 많았지만 이제는 무사히 서울까지 갈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게 되면 새만금 살리기도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맞지 않을까, 하고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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