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으로 몸살 앓는 프랑스 (1)

극단적 인종차별주의, 반유태주의 급상

등록 2003.04.07 05:15수정 2003.04.07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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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쓰레기를 파내라. 그들이 우리의 땅을 더럽히고 있다 로스트 비프(Rosbeefs) go home. 사담 후세인은 승리할 것이고 당신들의 피가 흐르게 할 것이다. 양키(yankees)를 죽여라. 부시, 블레어를 국제형사재판소로.'

이것은 프랑스 빠-드-깔레(Pas-de Calais) 지방, 에따플(Etaples)시에 있는 영국군 묘지의 기념비에 붉은 페인트로 그려진 그래피티(graffiti)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기념비 정면에 거꾸로 된 나치 만자십자장과 함께 펼쳐졌던 그래피티는 지난 주 목요일, 한 영국인 관광객의 신고로 당일 지워졌다.

옛 군사기지였던 이곳, 에따플시 북쪽에는 영국에서 온 1만1천여명의 병사가 일렬로 늘어선 묘비 아래 묻혀 있다. 1914-1918년 사이 프랑스 땅에서 전사한 영국의 젊은이들이 600여명의 독일군 옆에서 쉬고 있는 것이다. 그래피티의 모욕적인 문구는 지난 3월 26일 밤부터 27일 사이 쓰여졌으며 파손된 무덤은 없었다고 4월 3일자 프랑스의 일간지 리베라시옹(Liberation)은 전한다.

전진하는 인종차별주의, 증가하는 반유태주의

a 지난 3월 반전과 반미가 공존하는 빠리의 반전시위,

지난 3월 반전과 반미가 공존하는 빠리의 반전시위, ⓒ 박영신

중동에서 불어닥친 전쟁의 파장이 프랑스 사회를 휩쓸고 있다. 이미 1년여 전부터 반유태주의 폭력은 다양해지고 있으며 논쟁을 피하기 위해 권력자들은 오랫동안 이 문제를 무시해왔다. 그 결과, 유태인 지식인들이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는 반면, 프랑스의 아랍인들은 또 부당하게 오명을 썼다고 호소한다. 프랑스는 '새로운 유태인 혐오증'의 등장을 참관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3월 27일, 프랑스 국가인권자문위원회(CNCDH)의 보고에 의하면 2002년은 10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인종주의 폭력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반유태주의 행위는 2001년과 비교, 6배로 증가했는데 폭력과 인종주의 협박, 반유태주의가 이만큼 폭증한 일은 없었다고 한다.

국가인권자문위원회가 '2002년 활동보고'에서 인용한 표현들은 사뭇 놀라운 것이었다. 보고는 프랑스 문헌정보관리위원회에서 출판했는데, 총 313회의 폭력이 기록됐다. 2002년 종합평가는 1992년 이후 최고로 특히 2000년과 비교해 두 배 이상의 증가수치를 보였으며 이들 폭력사건은 부상38건, 사망 1건으로 양상도 심각해졌다고 3월 28일자 르몽드(Le Monde)는 밝혔다.


프랑스 정부의 이라크 전쟁 입장이 전쟁에 반대하는 여론의 한복판에 메아리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항의시위 속의 수많은 모순도 또한 현격하게 드러났다. 때로는 반전운동과 친아랍이라는 민족논리, 더 넓게는 반유태주의에 동조하는 이들 사이에 적대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지난 3월 22일 발생한 친팔레스타인 운동가들에 의한 유태인 학생 폭행사건은 이런 분위기에 근거한다. 정계는 나름대로 예방책을 찾느라 분주해졌고, 쟝-피에르 라파랭(Jean-Pierre Raffarin) 총리와 베르트랑 들라노에(Bertrand Delanoe) 빠리시장은 각각 '참을 수 없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라며 개탄했다.


한발 더 나아가 녹색당의 한 의원은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면서 반전시위를 할 것을 제안하기까지 했다! 녹색당의 책임자들이 만장일치로 거부했지만 말이다.

이어서 26일 낭시(Nancy)의 한 회교사원에 방화로 보이는 화재가 발생, 200평방미터의 건물을 태웠는데, 경찰은 이번 화재를 현재 이라크 사태와 연관짓지 말 것을 경고했지만 일각에서는 분개한 유태교 관련자의 소행이 아닌가 하는 섣부른 의혹도 제기됐었다. 반유태주의의 폭발은 최근의 반전시위를 장식하면서 표면상의 평화를 벗어던진 것이다.

프랑스 여론 너무 멀리 간다

미국의 이라크 공습 초반부터 프랑스의 여론은 집단적 다수가 전쟁에 반대하고 있음을 꾸준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지난주 말, 프랑스의 민영 TV 채널 TF1과 일간지 르몽드의 요청으로 여론조사기관 입소스(Ipsos)가 발표한 통계는 한계를 넘어 '질적' 추락의 추세를 그대로 보여준다.

조사에 응한 프랑스인의 33%가 '결코' 또는 '비교적' 미-영의 승리를 바라지 않으며 53%는 반대로 호의적인 반응을 표명했다. 3분의 1에 해당하는 프랑스인이 '반전'에서 '반미'의 입장으로 돌아섰음을 보여주는 이번 결과는 그 스스로가 친팔레스타인파와 친유태파로 나뉘어진 정치계에 전기충격과도 같은 것이었다.

전쟁 반대자들의 반미 정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이라크 공습 2주를 넘긴 지금, 프랑스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전쟁에 적대적이며 또 그들의 대다수가 미국에 전쟁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티아메리칸의 비난을 넘어서 프랑스의 여론은 전쟁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르몽드의 기사를 요약해보면, 단지 17%의 프랑스인이 미-영의 이라크 공습을 인정하는 반면, 프랑스인 다섯명 중 네 명(78%)은 찬성하지 않는다. 계층별로 살펴보면 35세 이하의 젊은이들일수록(84%), 직급이 높을수록(90%),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일수록(87%) 비난의 강도가 높았으며, 지역별로는 빠리가 83%로 가장 높았다.

또, 정치적 성향이 좌파일수록 전쟁에 반대하는 수치도 높았는데 85%가 그에 해당, 그러나 우파는 76%, 극우파는 48%를 각각 기록했다. 이런 결과는 이라크가 미-영군에 대해 생화학 무기를 사용한다는 가정 하에서는 다소 무뎌지는 경향을 보이지만 미국의 무력개입에 반대한다고 대답한 이들 중 52%는 의견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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